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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Apr 25. 2021

또 다른 봄

조각 수필(소설) #15

1.

박정희가 한 번 더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당선된 , 순영은 옆집 경묵 엄마에게 한 번 더 돈을 빌렸다


......, 경묵이 엄마또 부탁해서 미안해요애들 아빠가 한국에 들어오면 한꺼번에 정리해 드릴게요

에구또 생리대가 떨어졌구먼시아버지는 아직도 생활비를 안 줘


경묵 엄마에게 조금씩 빌린 돈이 벌써 삼만 원을 넘겼다크레인 운전 기술을 가지고 있는 남편은 둘째가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파견을 자원했다월급은 많아져서 좋았지만남편의 부재보다 더 무거운 짐이 놓여있다시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 둘네 살과 한 살의 두 아이이렇게 다섯 명의 남자들 틈에서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했다더군다나 남편의 월급은 시아버지가 관리하고 있었다직장 생활을 하는 도련님들은 자신들의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일정 금액을 주지만 그마저도 시아버지가 받아간다시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나에게 생활비를 내준다하지만 또다시 당선된 대통령의 독재처럼 시아버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시아버지의 생활비 계산법은 치밀하고 정확하다. 


여섯 식구한 달 치 세숫비누는 한 장하고 절반치약은 한 개 하고 삼 분의 일하루에 세 끼날 수를 곱하고 한 끼의 부식비는 딱 오백 원치밀하고 정확한 계산이다주판알을 튕겨 딱 맞게 생활비를 내준다너무나 정확해서 소름이 끼치곤 한다항상 부족하지만 조금만 더라는 이야기는 감히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생리대나 속옷을 사야 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더욱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남편이 떠나고 언젠가부터 시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그렇게라도 해야 시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조금 더 누르고 있을 힘이 생기는 것 같았다그마저도 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이제 겨우 스물여섯나는 오늘도 하루를 ....있다



2. 

시아버지는 아침상을 물린 후 가끔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나 첫 손자를 처음 안아보았을 의 느낌 등을 이야기해주곤 했다은 시절 던 늑염 수술로 를 다섯 개나 낸 시아버지는 그 후유증으로 기침과 가를 달고 산다이야기하다가 기침 소리가 해지면 덜컥 이 내려앉곤 한다시아버지는 가끔 라면으로 식사를 해도아침상을 치우지 않고 이야기하다가 그대로 점심 준비를 해도 그 정도는 이해해주긴 한다생활비 제만 제외하면 나와 큰 갈등은 없는 시아버지다


대통령이 부하에게 을 맞고 죽었다는 스를 보면서 나에게도 독재가 끝났으면 좋다는 생을 하고 있을 때였시아버지가 나를 불렀생활비를 받는 날은 며칠이 더 남았기에 시아버지의 살아온 이야기를 는 날인 줄 알았다


이거 받아라전부 네가 절약해서 모은 거다작은 집은 하나 살 수 있을 게다그리고 생활비는 앞으로 네가 관리해라


시아버지는 그간 내가 생활비를 아낀 것이라며 난생처음 보는 돈과 그간 정리해놓은 가계부를 내주었다. 나에게도 이렇게 독재가 나는 것인가 하는 생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무거을 느그동안 시아버지를 원망만 했이렇게 큰 선물을 덜컥 받아도 는 것인지 모르


3. 

의 이 온다고 신에서 이야기하고 있던 때작은 연립을 계약했다.
 
이 세 개나 있고 크대가 놓여있는 주이 있는 집이다도 수세식이고 여섯 가구가 공동으로 사하는 작은 마당도 있다이면 서로가 품앗이도 하고 연탄을 들이는 날이면 한꺼번에 주을 어 조금 더 게 들여놓기도 했다연립에 이름을 이자는 의견에 반상를 어 우리집이라는 이름을 물 외에 겨 넣었장면을 시킬 때면 번지 대신에 우리집연립 203라고 말하면 는 것도 기분 좋았다작은 란다에는 봉숭아도 심었고 나팔꽃도 심었아이들의 교육에 좋다길래 어항에 금어도 몇 마리 키웠


하지만 의 이 짧았던 것처럼 시아버지의 도 았다시아버지는 마지막 간에 행복하게 을 감을 수 있게 해 줘서 고다고 이야기했다그렇게 시아버지의 은 이 끝났를 치르는 안 단 한 방울의 물도 르지 않았다아니 릴 수 없물을 린다는 게 시아버지를 편하게 보내드리지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집에 아와서야 뜨개질해서 만들어 드린 즐겨 입던 터와 늘 고 아있던 방석을 정리하다가 물이 터졌다시아버지가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을 울고 나서야 세상을 로 볼 수 있었다. 


한 사의 이 나니 또 다른 이 시작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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