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풀 구구단

조각 수필(소설) #16

by 닐슨

#할애비

허허, 오늘도 이 녀석은 젓가락질을 하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며 식사를 마쳤다. 나에게 가장 큰 손주 인 이 녀석은 입이 참 짧다. 하기야, 우리 집안 내력이라 볼 수도 있겠다. 건더기 없이 국물만 떠먹는 건 나도 그러니 내 손주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식구들보다 입이 더 짧은 녀석이 조금은 걱정된다. 또래 아이들처럼 밖에서 뛰기보다는, 책을 보거나 혼자 무언가에 열중하는 걸 더 좋아하는 걸 보면 공부를 더 시켜서 의사를 만들어야 할지 아니면 성당의 신부로 키워야 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부디 건강하게만 자랐으면 싶다.


그런데 이 녀석이 매번 밥공기에 밥풀 몇 개를 남겨둔다. 몇 번 이야기했지만 알아들은 것인지 귓등으로 들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밥공기에 붙어있는 밥풀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오늘은 조금 구체적으로 잔소리를 해야겠다. 난 현명한 할애비니까.


- 얘야, 저녁은 잘 먹었느냐?
- 네, 할아버지. 오징어 젓갈이랑 김치랑 해서 아주 잘 먹었어요.


싹싹 비웠다는 밥공기에 역시 몇 개의 밥풀이 남아있다. 자, 이제 시작한다.
밥공기에 남아있는 밥풀이 몇 개인지 세봐라. 일곱 개가 남았구나. 우리 식구가 여섯 명이니 똑같이 일곱 개씩을 남겼다고 해보자. 그럼 마흔두 개의 밥풀이 남겠지. 그게 저녁 한 번이니 하루에 세 번 밥을 먹는다고 치면 하루에는 백이십아홉 개의 밥풀이 남겠지. 우리 연립주택에 여섯 가구가 사니까 모든 집에서 매일 그렇게 남긴다면 칠백칠십네 개의 밥풀이 남겠지. 그게 한 달이면 이만삼천이백이십 개의 밥풀이 될 테고, 일 년이면 이십칠만팔천육백사십 개의 밥풀이 될 게다. 대략 밥 한 공기에 이천 개 정도의 쌀알이 담기니 백사십 공기 정도 되는 밥이 매년 버려진다는 계산이 되는구나. 백사십 명이 한 끼 식사할 수 있는 쌀을 네가 버린 셈이 되는구나.


나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을 했고 정확히 기억해 두었다가 한 번에 내뱉었다. 아, 훌륭한 설명이었다. 더군다나 언성을 높이지 않고도 논리적으로 설명을 잘해주었다. 나를 닮아 머리가 좋은 녀석이니 잘 알아들었을 거다. 그러니 얘기 도중에 눈치를 채고 제 밥공기를 싹싹 긁어먹었을 테지. 이제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을 게다. 빙긋이 웃는 걸 보니 제대로 이해했구나 싶다. 나는 현명하고 자상하고 멋진 할애비임에 틀림없다.



#손주

오늘은 밥을 먹는 내내 할아버지가 계속 쳐다보신다. 이유는 모르지만 무언가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는 이야기가 시작되면 언제 끝날지 몰라 지루해진다. 가끔은 무릎까지 꿇으라고 해서 다리가 아파지기도 한다. 그걸 피하기 위해서는 시작되자마자 무슨 이야기인지 빨리 눈치채고 얼른 행동에 옮기는 게 최고다. 할아버지를 신경 쓰며 드디어 밥을 다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오징어 젓갈이 있어 밥을 먹기가 조금 수월했다. 하지만 국그릇에 남아있는 건더기는 정말로 먹기 싫다.


밥 먹기 전에 읽다가 덮어둔 <재크와 콩나무>를 마저 읽어야 한다. 재크가 땅에 심은 콩이 쑥쑥 자라는 부분까지 읽었다. 그다음이 무척 궁금하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밥을 다 드시기 전에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 다른 집에도 이런 규칙이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 집엔 할아버지가 계시니까 그렇게 해야 한다.


할아버지는 밥을 먹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 밥을 먹으면서 삼촌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데 전부를 이해할 수는 없다. 몇 개는 알아들을 수 있는데 대부분 이런 거다. 신발을 접어 신지 말라거나 길거리에 침을 뱉지 말라는 이야기인데 이건 나도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것들이다. 나는 길가에서 공놀이를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나를 향해 시작됐다.


내 밥공기에 붙어있는 밥알의 개수를 셌다. 일곱 개. 그리고 우리 가족이 여섯 명이니까 육을 곱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으니까 또 삼을 곱해야 한다고 하는데, 난 아직 곱셈을 배우지 않았다. 당연히 구구단도 모른다. 더군다나 두 자릿수의 곱셈은 다른 나라 이야기다. 그러고 보니 구구단은 이학년이 돼야 배울 수 있는 거다. 난 아직 일 학년이다. 왜 밥알의 개수에 우리 가족을 곱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빠르게 많은 숫자를 말하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할아버지는 내가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을 굶겼다고 했다. 환장하겠다.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뉴스에 서는 보리나 콩을 섞어서 밥을 지어먹는 게 건강에 더 좋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밥에 들어있는 콩을 먹으면 재크처럼 커다란 콩 나무를 타고 오를 수 있게 될까. 할아버지는 계속 밥풀 얘기를 하는데 나는 할아버지 뱃속에 들어있는 콩이 쑥쑥 자라서 할아버지 콧구멍으로 삐져나오는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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