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수필 #17
젠장, 또 그런다. 매일의 출근길에 늘 있는 일이라 이제는 무뎌질 법도 하지만 깜빡이만 켜면 내 오른편 뒤에는 없던 차가 갑자기 생겨난다. 아니 한참 뒤에 있던 차가 쌩하고 달려와 차선을 바꿀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더군다나 병목처럼 차선이 줄어드는 곳에서는 좀처럼 끼어들 수가 없다. 깜빡이를 켜고 창밖으로 손을 흔들어도 옆 차선의 차들은 좀처럼 양보할 생각을 않는다.
중고로 구매해 10년을 함께한 <아방이>라는 이름을 가진 첫 번째 차를 팔고 조금은 절약을 하자는 생각에 고민을 하다가 경차를 선택했다. 아내는 작은 차를 타면 위험하지 않겠냐고 걱정했지만 내 운전습관을 익히 알고 있기에 어렵지 않게 동의해주었다. 나의 운전에 대한 철학은 이렇다. 과속하지 않기, 정지선 지키기, 교차로 꼬리물기 하지 않기, 어린이 보호구역 정확하게 지키기 등이다. 이건 거창한 철학이라기보다는 약속에 가까운 것이라 나에게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경차를 몰고 도로에 나가니 나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졌다는 게 느껴진다.
“저 녀석을 내 앞에 끼워주면 속도가 느릴 거야.”
“조그만 녀석에게 내 앞길을 내줄 수는 없지.”
“경차는 운전을 못 해. 길 막히는 일의 주범이야.”
나도 그랬을까 싶었다.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내 기억이 완전하지 못하다. 내 앞에서 작은 차가 서툴게 운전을 하면 이내 추월을 하며 어떻게 생긴 운전자인지 확인을 했다. 고속도로 1차선에서 제한속도를 지키며 달리는 작은 차를 째려보며 지나치기도 했고, 주차를 잘하지 못해 끙끙대는 작은 차를 보며 혀를 끌끌 차기도 했다. 아아, 이제 와서 반성하고 후회해 봐야 무엇하랴. 나도 이제 작은 차, 경차 오너다. 그간 내가 경차를 대했던 것처럼 다른 운전자들도 나를 그렇게 대하겠지.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내 첫 번째 차 <아방이>는 중고차였다. 급하게 차가 필요해서 중고차 매매상을 하는 친구에게 달려가 그 자리에서 계약을 마쳤다. <아방이>라는 이름을 가진 흰색 승용차는 나와 10년을 함께 했다. 5년이 넘은 중고차를 인수해서 내가 10년을 탔으니 나이가 열다섯 살이 넘은 <아방이>는 이곳저곳 손볼 곳이 점점 많아졌다. 결국 <아방이>를 보내고 경차를 갖게 되면서 이름을 <쪼매>라고 붙였다. <쪼매>는 이름처럼 작았지만 내 키가 그에 비해 큰 탓이었을까. <쪼매>는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급하게 가속을 해야 하는데 굼떴고 조금 큰 차가 옆으로 지나가면 휘청거리기도 했다. 출퇴근 길에 만나는 커다란 화물차들 사이에서 <쪼매>는 많이 힘들어했다.
만난 지 6개월 만에 결국 <쪼매>를 보내고 차를 바꿨다. 제일 덩치가 큰 차로 말이다. 새로운 차의 이름은 <코행이>. “코란도스포츠 타고 행복하자”의 앞글자를 따서 아내가 지은 이름이다. <코행이>와 함께한 출근길은 이름처럼 행복했다. 뒤에서 득달같이 달려드는 차가 없었고 조금은 급하게 차선을 변경해도 빵빵거리지 않았다. 더군다나 제한속도에 딱 맞춰 달려도 째려보거나 옆에 와서 흘낏 쳐다보는 차도 없었다. 심지어 깜빡이를 켜지 않고 차선을 바꿀 때엔 양보까지 해주었다. 천하무적이 된 <코행이>가 신기했다.
바뀐 건 차의 종류일 뿐인데, 세상이 바뀐 것 같았다. 그제야 느꼈다. 나도 그랬구나. 나도 경차에 대해서 편견 아닌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나도 초보일 때가 있었고 운전이 서툴 때도 있었는데, 나는 그새 그걸 잊고 있었구나. 그리고 다짐했다.
“<쪼매> 친구들이 나타나면 양보를 잘해줘야지.”
오늘도 <코행이>는 <쪼매> 친구들을 배려하면서 행복하게 거리를 달리고 있다. 그나저나 내 첫 번째 차 <아방이>는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지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