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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Apr 16. 2021

'너'에게

조각 수필 #14

‘너’에게.


이해하지 못할 만큼 어렵진 않지만, 이해하고 싶지는 않은 음악.

다른 사람 것은 싫지만, 내것은 좋은 담배연기.

청소를 해야 하지만, 쓰레기가 널려 있어도 보기 싫지 않은 내 방.

구겨지고, 터져버린, 한 개비 밖에 남지 않은 담뱃갑.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싶지만 손이 가질 않는 몇 권의 시집. 그리고 내 일기장(도대체 나는 일기장에 무엇을 적어놓은 것일까).

뿌연 담배연기 사이로, 그것마저 뿌옇게 보이는 낡은 라디오의 빨간 불빛.

알지 못할 소리로 주절대는 저 음악의 노래 부르는 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현란하게 기타를 쳐대는 저 음악 하는 사람은 도대체 몇 끼를 굶어야 저렇게 기타를 칠 수 있는 걸까?

나의 세상엔 궁금한 게 너무나 많다.


서울역 천정의 부조가 무궁화다, 아니다 사꾸라 꽃이다.

소방차가 사람을 치어도 죄가 된다, 안된다.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 편지를 쓰는 나의 생각과 행동도 지금의 나에겐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 중에 하나다.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단정하기엔 그 아쉬움이 너무 많다. 그렇다고 그것을 떨쳐버리기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크다. 어릴 적부터 상상했던 인간의 삶은 영화 필름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이름이 적힌 영화 필름이 영사기에서 돌아가고, 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영화가 끝나는 부분에서 결국 나의 삶도 끝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해본다.

어쩌면 내 날카로운(?) 상상력이 정답일지도 모를 일이다.


더 이상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는 이미 정해져 있는 영화 필름 속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꼴이 너무 우습다. 그 속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나 역시 찰리 채플린처럼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에리히 케스트너라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이 쓴 시가 있다.


쾰른 대성당 십자가 꼭대기에서 떨어지든

서커스단 천정 고리에서 떨어지든

쓰레기 더미 꼭대기에서 떨어지든

그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낙서 아닌, 낙서. 편지 아닌 누구에겐가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글을 써봐도, 여전히 나는 나를 알 수가 없다.


사람을 만나 떠드는 것보다는 혼자이길 좋아하는 나.

데이트라는 것보다는 사색을 즐기는 나.

혼자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나.

사람 많은 극장보다는 비디오 보는 것을 즐기는 나.

하지만, 이제 혼자이기 싫다.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누군가를 맞이하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하나 잘 모르기에 펜을 들었을 뿐이다.


모두가 느껴보았다고 시끄럽게 자랑하는 “가슴 저림”

겉으로 떠들어 대는 Eros보다는, 내 깊은 곳에서부터 계속 터져 나옴을 참을 수 없는 Agape를…


무엇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른 것인지 몰라서…….

그보다, 말보다는 글을 더 사랑하기에…….

이렇게 싸구려 펜으로 휘갈겨 써본다.

내용만은 충실하게 전해지리라 기대하면서…….

간혹 눈에 띄는 오자는 글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세상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지만, 내 사랑만큼은 그 보다 더 오랜 시간을 두고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글을 보낸다. 너에게.


방법론에서 보면 틀렸을 수 있으나, 내 철학에서 보면 이것이 더없이 좋은 방법인 것 같아서…….

이렇게 내 개똥철학을 다시 한번 팔아먹어 본다.


1997년 1월 25일




주) 이 글은 이십 대 시절 그 언젠가 밤늦은 시간 막연한 누군가에게 썼던 편지글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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