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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Apr 06. 2021

비싼 건 맛있어

조각 수필 #13

며칠 전 아내와 외식을 하려고 식당가를 배회하다가 그동안 못 보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순대국 전문점이라는 고딕체의 간판과 메뉴와 어울리지 않는 흰색의 깔끔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오늘 외식은 순대국으로 결정했다.


순대국에 들어있는 부속고기라고 부르는 머리 고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내는 순대만 넣어 달라고 주문했고 나는 천 원이 더 비싼 ‘특’순대국을 주문했다. 순대국은 그간 인근에서 먹었던 것보다 맛이 좋았다. 아내는 갓 지은 밥맛이 좋은 걸 보니 좋은 쌀을 쓰는 게 분명하다며 가게가 제법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순대국이나 내장탕 같은 해장국을 파는 식당에서는 김치, 깍두기와 함께 빠지지 않는 반찬 구성이 있다.

바로 대충 썰어놓은 양파. 막된장에 찍어 먹는 시원한 양파는 구수한 해장국이나 순대국과 제법 잘 어울린다. 반찬으로 나오는 양파를 즐기는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 순대국을 먹으면서는 양파를 제법 많이 먹게 됐다. 두 번이나 더 더 달라는 요청을 했는데 상을 차려주는 아저씨가 양파를 참 좋아하나 보다고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양파를 먹으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자기야, 요즘 양파가 비싸? 대파는 엄청 비싸다면서?”

“양파? 아니 대파만큼 비싸지는 않아. 그런데 왜?”

“응, 양파가 맛있길래, 원래 비싼 건 맛있잖아.”


비싼 게 맛있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맛있는 게 모두 비싼 건 아니지만 비싼 건 맛있다. 소고기 스테이크가 그렇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파는 립이라고 부르는 양념 돼지갈비가 그렇다. 지금은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못하지만 킹크랩과 랍스터도 맛있는 음식들이다. 물론 비싸니까 맛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제아무리 비싸 봤자 조금만 용기를 내면 맛볼 수 있는 음식들이다. 물론 어떤 식당에서 맛보느냐에 따라 같은 재료라도 그 값은 달라지겠지만 나에게는 천하무적 신용카드가 있으니 작은 용기와 결단, 그리고 아내의 허락만 있다면 맛볼 수 있는 것들이다. 만약 그 금액이 우리 생활비를 초과한다면 할부라고 하는 인간이 만든 최고의 외상 제도가 있으니 그 역시 크게 걱정 할바는 아니다.


하지만 수백만 원 한도의 신용카드, 백지수표가 있어도 맛볼 수 없는 음식이 있다.

차림새는 투박하고 예쁜 그릇에 담겨있지도 않지만 내 입에 꼭 맞는 엄마가 차려준 밥상이다. 엄마가 차려준 밥을 마지막으로 먹은 게 언제인지 손가락을 꼽아야만 계산할 수 있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앞으로도 영원히 엄마가 차려준 밥상을 맛볼 수 없는 사람이다. 엄마가 쓰러지고 돌아가신 게 1999년 말이었으니 20년 넘게 엄마가 차려준,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보지 못하고 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한 동안은 꼭 한 번만 다시 엄마를 볼 수 있기를 소망했었다.

지금은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엄마의 푸근함에 대한 그리움의 시간은 지난 지 오래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차려준 음식을 맛보고 싶다는 또 다른 소망이 생겼다.


소망은 희망의 다른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소망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


[소망(所望) -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

[소망(消忘) - 기억에서 사라져 잊힘.]


내 미각에서 점점 잊혀져가는 엄마의 밥상은 소망(消忘)이 되었다.




[순댓국]이 맞는 표현이지만 [순대국]으로 썼습니다.

'순댓국'은 '순대'와 '국'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말로, 사잇소리 현상이 일어나므로 사이시옷을 받치어 '순댓국'으로 씁니다. 이는 한글 맞춤법 제30 항과 관련합니다. - 국립국어원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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