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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닐슨 Dec 02. 2021

오해는 징크스를 만들고

조각 수필 #30

내 이름은 돌림자가 없다. 항렬에는 “규(圭)”를 써야 하지만 내 이름에는 그 글자가 없다. 처음 이름은 “규성(圭成)”이었다. 출생신고를 하러 갔던 아버지는 “성진(成振)”으로 신고했고 그게 내 이름이 되었다.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 알지 못한다.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게 이유일까. 나는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내 이름은 조성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는 성까지 같다. 그 사람보다 내가 먼저 태어난 건 확실하니 그가 내 이름을 따라 한 거다. 함경북도 남동쪽 바닷가에 내 이름이 붙어있는 도시가 있고, 택시 회사도 있다. 어떤 레미콘 회사도 내 이름과 같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을 향하다 보면 내 이름이 붙어있는 아파트도 보인다. 그 글자들은 엄청 커다랗게 느껴진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우연히 내 이름을 보고 난 후에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하고 자질구레한 일이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동전이 사라진다던가, 넘어져 무릎이 까진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책장을 넘기다가 종이에 손 베는 것을 포함해도 되겠다. 신기한 것은 그것이 단 한 번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일회성이다. 두 번도 아니고 정확히 딱 한 가지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더 신기한 건 유효기한도 있다. 이름을 본 바로 그날까지만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내 이름에 신경이 쓰이던 어느 날, 내 이름 두 개를 동시에 마주하는 일이 생겼다. 그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택시는 트렁크에, 레미콘은 둥근 통에 내 이름을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유효기한인 하루가 지나도록 아무런 일이 없었다. 부정을 부정하면 긍정이 된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 간판에서 내 이름을 보았고 그 앞에 서 있던  택시를 마주했다. 역시 그날도 아무런 일이 없었다. 이름을 두 번 보면 좋지 않은 일이 덮어져 버리는 게 확실했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보이지 않듯 매번 두 번씩 내 이름을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이지 않으면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 찾지 못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 생선가시가 목에 걸리기도 하고, 문지방에 새끼발가락을 찧기도 한다. 뜨거운 커피에 입천장 데는 건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때부터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다. 두 번째 이름을 찾을 수 없는 날에는 눈을 감고 이름을 봤던 장면을 떠올린다. 그리고 나지막이 “안 해, 안 해, 안 해”를 읊조린다. 그렇게 하면 이름을 마주했던 장면이 기억에서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 나름의 의식이자 예식인 것이다.


이렇게 나는 이름에 대한 이상한 법칙이 있다. 이런 법칙을 `징크스`라 부른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징크스는 재수 없는 일, 또는 불길한 징조의 사람이나 물건을 뜻한다. 나는 내 이름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바로 그것이 내 이름에 대한 오해였다. 오해는 영어로 misunderstanding,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이해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려 애쓰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이름의 징크스는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 생각 속에서 ‘또 다른 나’가 만들어낸 오해일 뿐인데 말이다.

‘또 다른 나’가 만들어낸 오해를 지워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늘 내 이름이 낯설다. 지금은 아버지가 계시지 않아 내 이름에 돌림자가 없는 이유를 알 수 없다. 혹시 그 이유가 오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는 않을까. 오해가 쌓이면 곡해가 된다. 내 이름이 그리된 것이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라고 곡해하고 있었다. 곡해는 사실을 왜곡한다. 그 곡해가 내 이름을 좋아하지 않게 만들었고, 말도 안 되는 징크스를 만들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지금은 내 이름을 그냥 받아들인다. 그래도 명절에 사촌들이 모이면 나 혼자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이것 역시 내가 가진 오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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