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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정빈 Aug 17. 2020

아스팔트를 부수고 싶다.

"이야옹- 이야옹-"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흙 색깔의 고양이를 만났다. 어떤 부분은 숯이 묻어 있는 듯 검하고, 어떤 부분은 비가 내린 후의 흙바닥처럼 짙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 작은 고양이(한 1년 안 되어 보이는 청소년 고양이다)가 지나가는 사람 누구라도 들으면 밥을 달라고 시위하고 있는 듯이 거리를 두리번거리면서 '이야옹-' 한다.


"밥을 줘야 할까?"


 아내가 물었다. 나는 "그러자"고 답했다. 우리 집은 고양이가 세 마리가 있다. 사료는 충분히 있다. 바로 집 앞이라 곧장 들어가 일회용 플라스틱 국그릇에 사료를 담아 금세 나왔다. 앞에 그릇을 놓아두자마자 우적우적 먹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게 되었다. 고놈 정말 잘도 먹었다. 이 고양이 예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집 근처에서 항상 돌아다니는 녀석인데 귀를 보니 살짝 잘려있었다. 누군가가 중성화 수술을 했다는 증표 같은 것이다. 


"누가 돌봐주고 있긴 한 모양이야. 중성화 수술도 되어있고 털도 윤기가 흐르는 게 좋아 보이네."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그 배고픈 아이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쪼그려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아무리 누가 돌봐주고 있다고 해도 길냥이들을 항상 규칙적으로 챙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고양이들이 도시 속에서 스스로 먹이를 구한다는 것은 이제는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돌봐주는 인간이 조금만 사정이 생겨도 이들은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면서 울 수밖에 없다. 예전에 고양이 돌보는 일을 하던 한 대학원 원우가 내게 이렇게 말해준 적이 있었다.


"인간들이 도시를 만들면서 하수구 체계를 도입했는데, 덕분에 쥐가 다 하수구 안쪽으로 숨어 다니는 바람에 고양이가 먹고 살기가 정말 힘들어졌다고 들었어요."


 그래, 나는 예전에 한 스님에게 이런 말도 들은 적이 있다.


"바퀘벌레도 더러워진 이유가 인간이 하수구를 만들고 난 이후부터라더군요."


 나는 그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 바퀴벌레를 더 이상 혐오스러운 존재로 보지 않았다. 그래, 어쨌든... 도시에 사는 고양이는 스스로 음식을 구해 먹는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신세가 되고 말았다.  


"다 먹었나 보네. 물도 좀 줘야겠지?"


 나는 아내에게 그릇을 받아 집 앞에 수도에 가서 물을 받았다. 투명한 물이 밤의 노란색 가로등 불빛을 흡수했다. 찰랑찰랑, 손에 그릇을 쥐고 다시 고양이에게 다가가 앞에 놓아주었다. 냄새를 좀 맡던 녀석은 할짝할짝 꽤 오랜 시간 물을 마셨다. 


"얘네들한테 이 깨끗한 물이 참 귀해."


 아내의 말에 나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먹을 것은 인간이 버린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음식물쓰레기라도 주변에 보이면 주어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도시에서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있는가. 깨끗한 물을 구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나는 순간 깨끗한 물이 나오지 않는 싱크대를 상상했다. 아마 인간세상은 지옥이 되겠지. 이럴 때는 가끔 내가 이 집의 건물주였으면 하는 욕심이 생긴다. 앞에 높이가 낮고 기다란 나무 그릇을 놓고 매일 수도를 틀어놓는다면 고양이, 혹은 도시에 물이 필요한 많은 생명들이 우리 집 앞에 와서 깨끗한 물로 목을 축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지금은 건물주에게 혼이 날까 마음처럼 하지 못하는 신세일뿐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날, 내 출근지인 '우리동네 연구소'에 앉아 공부를 하고 있는데 나와 친분이 있는 한 동네 이웃이 들어와서 수다를 나누길 원하셨다. 항상 그분이 나에게 얘기를 꺼낼 때면 어김없이 비둘기 얘기가 나오곤 했다. 동네에 꼭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 더러운 얘들이 날아와 사람들에게 피해를 얼마나 주는데 생각 없이 왜 그런 행동을 하냐고... 항상 나에게 얘기를 하실 때마다 성질이 나 계신다. 나는 항상 들을 때마다 조용히 미소 짓고 있을 뿐이다. '비둘기도 먹을 것이 없긴 할 텐데'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분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미소뿐이었다. 

 그분이 한창 속풀이를 하시고 간 후 나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인터넷을 켜고 비둘기를 검색창에 쳐보았다. 비둘기의 먹이가 뭘까? 도시 속에 그들은 어떻게 살 수 있는 걸까 무척이나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검색엔진에 떠오르는 많은 링크들 중에 어떤 분의 수기가 눈에 띄었다. 내가 원하는 정보도 있어 보였고 비둘기에 대한 애정이 있어 보이는 글이어서 마우스 커서를 링크에 대고 손가락에 옅은 힘을 주었다.  누르고 보니 동물에 대한 애정으로 인해 동물보호가 직업이 되신 분이었다. 수원시에서 잠깐 임시 공무원으로도 활동을 하신 경험이 있는 분의 글이었다. 임시 공무원 경험을 하면서 나에게 수다를 요청하는 이웃분과 같은 분들에게 많은 불평 민원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양한 문장들 속에 내 시선을 고정되게 만든 인상적인 한 문장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들 오해하는 것이 있다. 비둘기가 더럽다는 생각이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비둘기는 깨끗한 물만 있다면 수시로 목욕을 통해 자기 몸을 청결하게 하는 동물이다.-


 나는 하수구를 통해 더러워진 바퀴벌레 생각이 났다. 그리고 우리 동네 아스팔트 바닥에 묻혀있는 두 갈래의 하천이 생각났다. 오랫동안 사신 이웃분들에게 들어보니 40년 전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두 갈래의 하천이 있었다. 아스팔트로 묻혀버리기 전 그 하천은 동네 사람들이 수영을 할 정도로 깨끗한 물이었다. 분명 많은 동물들이 그 근처에서 인간들처럼 몸에 물을 적셨을 것이다. 나는 망치와 정을 든 내 모습을 상상했다. 예전 지도를 꺼내와 그 하천이 감춰져 있는 곳 위에 서서 망치와 정으로 그 아스팔트들을 깨부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 아스팔드만 부시면 동물과 인간이 서로 미워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서는 당장 부서 버리고 그 이후를 보고 싶다. 그러나 아스팔트는 너무 단단할 것이고, 이 나라에는 나를 사로잡을 경찰도 있다. 잠시 거칠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차분해진다. 그리고 한 번 상상해본다. 아니 믿음을 다진다. 내가 아스팔트 위에 망치와 정을 들고 서 있고 경찰들이 내가 작업을 수행할 있도록 주변에서 호위하고 있는 모습을. 인간과 동물 사이의 미움의 장벽을 부셔버리고 맑은 하천에서 다시 함께 수영하고 있는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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