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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CA Dec 26. 2021

일에서 오는 치명적인 권태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즐거운 일을 찾자!'라고 다짐을 하고 나자 이직한 친구나 선후배들의 소식, 퇴사 유튜브나 브이로그가 신기할 정도로 많이 보였다. 특히, 뭔가 묵직한 충격을 줬던 배우 진기주님의 인터뷰에 이어, 영화평론가 이동진님의 인터뷰가 다시금 날 찾아(?)왔다.


이동진님은,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타입에는 ① 인력이 작용하는 경우② 척력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도 막상 일로 하면 힘들진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이란 결혼과 비슷해서, 남녀가 결혼하면 어차피 환상은 깨진다. 그러나 어차피 환상이 깨질 것이라면,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낫다'며, '좋아하는 일을 해야, 일에서 오는 치명적인 권태를 버틸 수 있다'라고 대답하셨다.

 


'인력'은 항상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다만, 내 끌림대로 가는 것이 맞는 일인가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남들이 좋다는 길이 내 판단보다 옳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 스스로의 인력에 반응하지 못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이만큼이나 멀어져 있는 것은, 인력에 더해서 '척력'까지 강하게 작용한 탓일거다.


이동진님처럼 10년씩 한 직종에 몸을 담았던 것도 아니고, 아직 '일에서 오는 치명적인 권태'를 느끼기는커녕 내가 하는 일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지만, 어렴풋이나마 이동진님의 말씀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어차피 일은 즐거울 수 없으니, 좋아하는 일이란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고민에 빠져 있던 나는, 이동진님의 인터뷰를 보고 난 후 '어차피 일은 힘든 것이니, 최대한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고 생각하기로 하였고, 그때서야 마음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1. 가능성들을 구체화하기


첫 단계는 내 앞에 놓인 가능성들을 구체화하는 것이었다. 먼저, 가장 당연하게도 쉽게, ① 현재 직장을 계속 다니는 방안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음으로는, 현재 직장에서 떠나간 사람들이 어디를 갔었는지를 떠올렸다. 선배들이 간 길 중에서는 정말 동경심이 들었지만, 일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나로서는 불가능한 길도 있었고 (아쉽게도 제외하여야 했다), 그다지 잘 알지 못했던 선배들이 갔던 길은 고려대상으로 삼기에는 너무 정보가 부족했다. 마침, 나름 가깝게 지냈던 선배가 흔치 않은 곳으로 업무로 분야를 변경하였는데, 주변에 정보를 물어보니 괜찮은 진로로 보여 선택지에 포함시키기로 하였다.   


세 번째로는 ③ 현재 직장에 들어오기 전 마지막까지 선택지로 두고 고민하였던 해외 박사 유학을 포함시켰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이도 있고, 박사란 것이 학문에 대한 의지 없이 막연히 하나의 진로로서 선택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길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기간이 짧은 석사 학위도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는 석사학위만으로 괜찮은 직업을 잡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래도 학부에서 경제학과 수학을 전공하다 보니 Qualitative한 과목들을 다수 수강하였었는데, 조금만 찾아보니 컴퓨터공학/통계학 또는 (이들을 접목한, 요새 떠오르고 있는) Data Science 등을 전공하면 해외취업도 가능하고, 향후 전망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렇게, ④ 해외 석사 후 미국 취도 고려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는, 현재 직장을 계속하는 것과 해외유학의 중간 타협점쯤으로, ⑤ 현재 일을 계속하되 외국에서 할 수 있도록 길을 찾는 방안을 고려하였다.


놀랍게도, 선택지를 만드는 것 자체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선택지를 떠올리며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2. 정보 구하기


나 스스로의 판단은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고 생각하여서, 주변에도 여기저기 조언을 구하러 다녔다. 고민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꺼려졌던 터라 오히려 주변 지인들에게는 많은 조언을 직접 구하지는 못하였고, 떠보듯 이런저런 얘기를 물어보곤 했다. 주변 지인들로부터는 믿을만한, 그리고 생생한 정보를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내 고민을 모두 펼쳐놓지 못하다 보니 제한적인 얘기밖에는 듣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밖에 없었는데, 인터넷에는 생각보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이 올린 글이나 유튜브 영상들은 생각을 정리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특히, 외국에 나가는 진로에 관하여는 유튜브를 통해 생각보다 더 많은 정보와 경험담을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예컨대 유튜브를 통하여 컴퓨터공학으로 진로를 변경한 생생한 경험을 접할 수 있었다(현재는 영상에서 언급된 프로그램에 지원한 상태이기도 하다).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이미 비슷한 길을 걸어가신 선배님들의 후기도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일부 선배님들은 이메일로 질문을 받아 주시기도 하셨는데, 얼굴도 모르는 후배를 위해 정말 성심성의껏 정보를 주셔서 너무나 큰 도움이 되었다(나도 준비후기를 남겨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다짐한 계기이기도 하다). 유학과 관련하여서는 고해커스WorkingUS 등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는 있었는데, 아무래도 익명으로 운영되는 사이트들이다 보니 그 신빙성이 의심되는 경우가 많아 많이 신뢰하기는 어려웠다. 해외 정보는 구글 검색은 물론, Reddit 등 사이트를 통해서도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었다. (Reddit 역시 신뢰성의 문제는 남는 것 같다!)


3. 가능성들을 평가하기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하고 나서, 앞서 구체화하였던 가능성들에 대해 적성, 이상(잘 풀렸을 경우를 가정한 선택에 대한 만족도), 현실(연봉 등 조건), 결혼(해외로 나가는 진로도 고민하다 보니, 결혼 가능성이나 결혼 후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지 등)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을 두고 내 나름의 점수를 매기는 과정을 거쳤다.


내 나름의 진로 평가표


점수를 매길 때마다 다른 선택지는 고려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판단을 내리려 했다. 점수를 매기고 나니, 다음과 같은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상은 했지만 서글프게도) 현재 직업을 계속하는 경우의 총점이 제일 낮았다.

외국으로 가고자 생각했던 진로들의 경우는, 대다수가 '결혼' 점수에서 과락을 면치 못했다.

지나치게 결여된 평가항목이 하나라도 존재하는 좋은 평가를 받기가 힘들었다.



물론, 진로를 선택함에는 위와 같은 점수로는 수치화되지 않는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미칠 것이어서, 위와 같은 과정으로 진로를 '결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만, 내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더 깊게 고민해보아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진로 고민에 굉장히 큰 도움이 된 방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연인지, 평가를 잘한 것인지, 이후 정말 수많은 고민 끝에 결과적으로는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미국 석사에 도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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