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_장소_8. 북아프리카 튀니지 학교도서관
어린이 영어도서관을 퇴사하고 다른 곳에 또 이력서를 넣으며 사서 고생하는 사서의 길을 가보려고 했는데 마음처럼 쉽게 이직이 되지 않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퇴사한 것이라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었고 퇴직금으로 버티다가 우연히 KOICA(코이카) 해외봉사단 공고를 보게 된다.
사실 나는 20대부터 해외봉사에 관심이 있었고, 특히 KOICA(코이카) 해외봉사단원은 예전에도 지원해봤던 곳이라 30대 중반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겠다 싶어서 주저 없이 지원하게 되었다. 당시 2014년도에 93기 KOICA(코이카) 해외봉사단 공고에는 다행히도 사서직군으로 3명의 봉사단원을 선발하였다. 파견국은 볼리비아, 튀니지였다. 솔직히 남미에 가보고 싶어서 볼리비아를 1지망으로 지원하였는데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2지망으로 적었던 튀니지로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해외 봉사단원 파견 전 서울 양재동에 있는 KOICA(코이카) 한국국제협력단 사무소에서 합숙 연수를 6주간 받게 되는데 현지어(아랍어)와 현지 문화 그리고 봉사단원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과 사서직무연수를 포함한 내용들로 연수를 마치고 2014년 8월 31일 내 손에 관용여권을 들고 해외봉사단원의 자격으로 북아프리카로 튀니지로 떠나게 되었다.
2013년 교회 청년부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10일간 선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튀니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북아프리카 지중해 특유의 멋진 자연 환경과 도심 곳곳에 야자수와 깨끗하고 손에 잡힐 듯 파란 하늘은 정말 장관이었다.
튀니지에 도착해서 함께 파견된 10명의 봉사단원들과 현지 KOICA(코이카)사무소에서 주최하는 8주간의 현지적응훈련 연수를 받았다. 현지인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면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아랍어, 영어, 불어 3개 국어 수업을 들으며 현지에서 적응하기 위해 외국어 수업에 매진했다. 매일같이 아랍어 4시간, 불어 2시간, 영어 3시간 수업을 7주 동안 외국어 교육을 받으면서 중간에 시험도 보고 구술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렇게 현지적응교육을 잘 마치고 봉사단원은 각자의 임지로 파견을 받게 되었다.
2014년 당시 93기 해외봉사단원으로 함께 파견된 단원은 나를 포함 총 10명이었다. 파견 직군 또한 다양하게 사서, 한국어교육, 미술교육, 청소년교육, 컴퓨터교육, 요리분야의 단원 10명으로 구성되었다. 사서직은 나를 포함 제주도에서 정년 퇴직을 하시고 시니어 봉사단원으로 선발되신 62세 남자 선생님 이렇게 두 명이었다.
해외봉사단원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날 수 없는 소중한 동기들과 헤어지고 2014년 10월 27일 각자의 임지로 파견되었다. 내가 파견된 곳은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서 차로 1시간여 떨어진 ‘TESTOUR (테스트룰)’에서 1년 8개월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내가 파견 된 근무처는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와 같은 곳으로 ‘IBN ZOHR lycee’(애비눈 자후르 리쎄)로 학교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게 되었다. 900명의 재학생과 42명의 교사 및 교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제법 규모가 큰 학교였다. 학교도서관은 우리나라 80~90년대 초반 학교도서관처럼 거의 문이 잠겨 있었고 도서관을 담당하는 사서교사는 따로 없었다. 불어교사가 행정직처럼 도서관을 전담해서 맡고 있었다. 나보다 한 살 나이가 많은 그녀는 도서관에 다행히 관심이 있기는 했으나 도서관 업무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기에 책을 어떻게 분류해야하는지도 몰랐다.
내가 도서관을 보고 제일 놀랐던 점이 주제별로 도서가 분류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섹션을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나누어서 도서를 그냥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한국처럼 도서관 전산화 프로그램이 도입되지도 않았고, 심지어 튀니지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RFID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 상태였기에 당황했었다.
서지 정보를 이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은 매우 한정적이었고, 이용자들도 원하는 자료를 검색하기 보다는 서가에서 원하는 책을 눈으로 직접 골라서 꺼내 읽는 상황이었다. 도서관은 모름지기 도서를 주제별로 분류해서 이용자에게 소장도서를 제공해야 함에도 기본적인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우선 코워커에게 나는 전 세계 도서관에서 사용하는 표준 분류법인 듀이십진분류법 DDC(Dewy Decimal Classification)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000은 태초의 인간과 자연이 혼돈에서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특정 학문이나 주제에 속하지 않는 분야를 모았다. 100은 혼돈에서 질서를 찾기 위한 이성의 노력을 담은 철학을, 200에서는 유한한 인간이 절대적인 신을 숭배한다는 뜻에서 종교를 담았다. 300에는 인간이 가족과 사회, 국가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사회학을, 400에는 사회가 서로 소통하기 위해 필요한 언어학을 모았다. 500에는 생활에 필요한 과학적 지식인 자연과학을 담고, 600에는 지식이 기술로 발전된 기술과학을 담았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예술(700)이 나타나고,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문학(800)도 나타난다. 마지막으로 900에는 이 모든 것을 기록한 역사를 모아놓은 것이다.
이렇게 책을 나누는 방법은 1876년 미국의 멜빌 듀이(Melvil Dewey, 1851~1931)가 개발한 듀이십진분류법(DDC)이라고 한다. 듀이는 미국 애머스트칼리지의 도서관에서 일하면서 불편하게 느낀 점을 고쳐 새로운 분류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십진분류법이라는 말은 앞에서 주류를 10개로 나눈 것처럼 세부 분류도 다시 10개의 숫자로 분류하는 방식을 뜻한다. 현재 이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일단 소장도서를 주제별로 분류하는 업무부터 진행했다. 다행히 동네에 공공도서관이 있어서 코워커와 함께 방문하여 DDC 분류법과 분류체계에 대해 공공도서관 사서들이 직접 코워커에게 현지어로 설명해주고 사서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사전류와 같은 참고자료들은 따로 별치기호를 두고 서가를 별도로 배치하여 참고자료만 별도로 배가하였다.
1단계 개선사업은 그래도 잘 마무리 되었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는 소장도서 서지데이터를 전산화하는 작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코워커는 컴맹이었고, 나는 아랍어 까막눈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랍어는 문맹률이 높고, KOICA(코이카) 현지적응훈련 때에도 아랍어 쓰기보다는 발음 나는 것을 영문 알파벳으로 배웠기 때문에 아랍어는 내 눈에는 그저 그림과 같은 상형문자 같았다.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할지 막막했다. 그리고 코워커는 점점 업무에 흥미를 잃고 출근을 하지도 않고, 때로는 아프다는 이유로 결근도 잦았다. 그런데 튀니지에서는 건강 상 이유로 결근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도 나에게는 문화충격이었다. 한국에서는 병원에 입원하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면 감기나 경미한 사유로 결근은 상상하지도 못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두 달 여간은 주제별로 소장자료를 분류한 일 말고는 업무의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렇게 겨울방학을 맞이하고 방학기간에는 학교가 모두 문을 닫기에 도서관도 개관하지 않았다.
2015년이 되면서 점점 고민은 더 많아졌다. 내가 생각했던 만큼 환경도 따라주지 않았고, 심지어 기관장이 바뀌면서 새로 온 기관장과 다시 업무에 대해 브리핑하고 다시 셋팅을 해야했다. 그래도 감사한 일은 새로 부임한 기관장은 도서관에 대한 관심도 많았고, 적극적으로 나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그래서 일단 학생들과 교직원들에게 설문조사를 해서 어떤 학교도서관을 원하는지 의견을 듣고 사업을 진행하자고 건의했다. 나도 너무 한국적인 마인드와 한국 학교도서관에 치우쳐서 튀니지 학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이라고 해서 무조건 원조를 해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밀어붙이는 일이 모두 옳은 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설문조사지를 만들고 취합하는데도 한 달이나 소요되었다. 학생들의 대다수 의견은 도서관이 항상 열려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자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수험서나 교과연계도서 혹은 잡지류 등도 구비되어 있기를 희망했다. 학교도서관이 열악하기도 하고, 도서구입비나 예산도 넉넉지 않았기에 나는 우선 봉사단원이 사용할 수 있는 물품구입비로 도서를 구입하기로 했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희망하는 도서를 신청 받아 취합하여서 학교 행정직 직원 두 명과 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서 수도 튀니스에 있는 서점 세 군데에 가서 희망도서를 총 2,500$ 구입했다. 신간도서를 보고 좋아할 학생들을 생각하니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구입한 도서에 KOICA(코이카)스티커를 책등 상단에 붙이고 청구기호 라벨도 제작해서 부착했다. 도서관 환경개선을 위해서 책장을 설치하고, 가방 등을 보관할 수 있는 물품보관함을 설치하였다. 도서관 이용 안내게시물과 도서관에서 주의해야 할 사항 등을 이미지로 부착하였다. 그렇게 상반기가 지나고 또 한 번의 여름방학이 지나고 어느덧 2015년 하반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도서관을 방문하는 학생들도 늘었고 교직원 중 과학담당선생님인 Monir(모니르)가 나를 도와주겠다고 천사처럼 나타났다. 도서관 소장자료를 Excel(엑셀)로 서명, 저자, 출판사, 출판년도,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국제표준도서번호까지 만이라도 정리를 해서 내부 인트라넷을 활용해 학생들이 도서관에 방문했을 때 원하는 도서를 검색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Monir(모니르)선생님이 휴게시간을 활용해서 도서관에 노트북을 들고 와서 도서 서지정보를 입력해주었다. 그리고 학교 기관장에게 PPT를 만들어서 내가 개선하고 싶은 도서관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요청했다. 우선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직원이 도서의 서지정보를 입력해주는 업무와 입력한 서지정보를 토대로 입수순대로 청구기호를 만들어서 책등에 부착하는 업무, 책 뒤에 서지사항을 수기로 작성하여 이용자들이 책을 열어보았을 때 책에 관한 간략한 정보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업무를 해 줄 수 있는 인력을 충원해달고 요구했다.
감사하게도 기관장은 지역 내 과학클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빌’이라는 참한 자원봉사자를 업무에 지원해주었다. 그래서 ‘모니르’ 선생님과 ‘아빌’ 이렇게 셋이서 기본적인 도서 서지정보데이터를 전산화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한국이었다면 두 달 이내에 완료될 프로젝트가 거의 6개월이 걸려서 완료되었다. 그리고 ‘모니르’선생님이 직접 교내 도서관 홈페이지도 제작해줘서 이미지랑 기타 소장자료를 검색하고 주제별로 어떤 책들이 있는지 검색 할 수 있는 페이지도 제작해줬다. 듀이십진분류법 (DDC)에 기반하여 도서를 분류하고 책마다 청구기호 라벨을 제작하여 소장도서 3,000여권을 재정비하였다.
솔직히 코워커랑 이 모든 업무를 진행했어야 했는데 코워커는 도서관 업무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고, 더군다나 컴맹이니 업무의 이해도가 떨어졌다. 그래도 느리지만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게 나의 목표였기 때문에 청구기호라벨을 부착하는 업무와 서지정보를 카드에 수기로 작성하는 업무는 함께 해보자고 설득해서 같이 마무리 할 수 있었다.
2016년 5월 21일에 도서관 재개관식과 한국의 날이라는 행사로 지역 교육부 산하기관 책임자와 소속 공무원들 그리고 KOICA 튀니지 사무소 직원들도 참여한 개관식은 테이프 컷팅을 시작으로 내가 활동했던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해서 보여주고, 학교도서관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도서관 전산화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멀티미디어실을 만들고 교과 수업 때 학교도서관을 활용한 것도 발표했다. 식후 행사로 튀니지 전통 음악연주와 노래까지 공연을 마련해서 행사에 참석한 모두가 흥겨워하며 매우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침부터 한복까지 차려입고 정신없이 하루종일 뛰어다녔던 하루였지만 KOICA(코이카)단원이 처음 파견된 Testour(테스트룰)에서 그들에게 학교도서관의 중요성과 도서관 분류법에 대해 알릴 수 있었음에 만족한다.
도서관 재개관 행사가 끝나고 지역 내 라디오방송에서도 기자가 와서 사진도 찍고, 내 인터뷰도 녹음해가며 인터넷 신문과 지역 페이스북에 나의 봉사단원 활동과 도서관 재개관식이 소개되기도 했다.
2016년 6월 30일 공식적인 나의 봉사활동이 종료되는 날이었다. 마지막 활동물품으로 에어컨을 구입해서 도서관 중앙과 멀티미디어실에 총 2대를 구입하여 설치하고 KOICA(코이카) 스티커를 부착하고 기관장 Radwen(로드웬)은 나에게 표창장과 지역 명소가 그려진 접시와 향초를 선물로 전달해줬다. 처음에는 비협조적인 그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고, 나만 무언가를 하려고 하나 싶기도 했고, 정말 이들은 내가 필요하긴 하건가 하며 고민했던 시간들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무리가 좋아서 나도 행복했다. 부디 이 도서관이 학생들이 언제든 방문해서 공부하고 책도 읽고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 되길 기도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을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튀니지에서 너무 행복하게 누리며 나는 2016년 9월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