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_장소_7. 어린이 영어도서관
도서관에서 근무할 때 영어를 사용할 수 있고 도서관 내 모든 자료들이 영어책으로만 구성된다는 것도 나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근무 환경이었다. 송파구에서 당시 유휴시설이었던 빗물펌프장 건물의 4층과 5층을 활용해서 어린이 영어도서관을 만들어 구민들에게 특히 지역주민들과 아이들에게 영어 독서교육을 거의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도서관 건립 취지도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 직원은 관장 1명, 사서 1명, 프로그램 운영 직원 1명, 행정직원 1명으로 총 4명의 직원이 도서관 개관업무를 맡게 되었다. 송파구청과 사단법인 영어도서관문화운동이라는 단체에서 3년간 위탁계약을 맺고 도서관 운영과 관련한 모든 제반사항은 송파구청 교육협력과와 소통하는 구조였다. 2011년 11월 도서관 인테리어도 완성되지 않은 빗물펌프장 4층에서 나는 책상과 의자도 없이 영어도서관 정규직 사서로 첫발을 내딛게 된다.
여태까지 위탁기관에서 일해 본 경험은 없어서 업무의 절차나 시간이 평소보다 더 오래 걸리고 소통이 잘 되지 않는 게 힘들었다. 직원들 업무용 책상과 의자도 없이 근무를 시작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추위를 너무 많이 타는 나로서는 근무하기에 너무 험난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책상 의자와 난방기, 전기포트를 동생 차로 운반해서 11월 근무일부터 개관식 전날까지 두 달여간을 버텼다. 새로 리모델링한 건물이여서 난방도 되지 않았고, 가뜩이나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양말을 3겹씩 겹쳐 신고, 패딩점퍼를 입고 장갑을 껴도 손이 시릴 정도로 추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사다난했던 도서관 개관 준비기간 동안 제일 잊혀지지 않는 일은 도서관 장서 중 2,857권을 내가 직접 MARC 수정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업체에 외주를 주어야하는 작업인데 예산상 문제로 8,000여권의 장서 중 2,857권은 내가 맡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서지데이터 수정작업과 RFID 칩에 서지데이터를 저장하는 태깅 작업도 해야 했다.
하필 나의 생일 전날 자정까지 남아서 34번째 생일을 도서관에서 보내게 된다. 그래도 고마웠던 것은 대학 동기였던 절친 두명이 도서관으로 직접 케이크까지 들고 와줘서 생일 케이크에 불을 켜고 나 혼자서는 감당 안되는 업무들도 함께 도와주었다.
그때 제일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이 모든 업무를 사서라는 이유만으로 사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였다. 그래도 정규직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서 그야말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리고 당시 도서관과 집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인테리어 업무 등 일요일 근무가 있을 경우에는 내가 출근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심지어 주 7일 근무를 하는 주도 있었고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개관 업무 두 달 동안 살이 3kg이 빠지고 감기를 내내 달고 살았다.
그래도 불평하기보다는 그저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기로 했다. 도서관을 보며 기뻐할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을 위해! 더 나아가 서울시민들을 위해 버텨보자며 그렇게 두 달의 시간을 보냈다.
업무로 지쳐서 힘들었을 무렵 회사 대표님이 전 직원에게 E-mail(이메일)을 보내셨다. 대표로써 회사가 추구하고자 하는 비전을 제시해주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아이들에게 책을 통해 영어를 받아들이게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의 생각이 들어있는 책을 통해 사고의 능력을 넓혀 주고, 다양한 생각의 씨앗(Book)을 심고 키워서 나무(Reading)가 되고 이것이 모여 숲이 되는 Reading Forest를 만들어가자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모든 것이 넘쳐나는 요즘 같은 정보화 홍수시대에서 자기가 정말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데 어린이 영어도서관이 다양한 타인의 생각과 상상력을 통해서 아이들이 가진 각자 고유의 능력과 취향의 씨앗을 발견하게 도와주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나의 비전과도 딱 떨어지는 점들이 많아서 좋았다. 회사 대표에게 이런 이메일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신선하기도 했다. 회사의 비전이 곧 내 비전이 되면 좋겠지만 그런 회사를 만나기는 솔직히 싶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생애 최고로 정신 없었지만 처음으로 해보는 도서관 개관식이 2011년 12월 28일에 있었다. 오전 8시에 출근해서 영어독서 프로그램 접수업무 보조하고 오전 9시부터는 자료실로 내려와서 도서 대출 업무를 시작하고 신규로 도서 대출 회원 등록하는 이용자들이 너무 많아서 화장실을 갈 시간도 없었다. 하루 종일 문의 전화에 이용자들 상대하느라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점심도 먹을 시간 없이 오전시간을 보냈다.
도서관 개관식은 오후 2시 부터여서 송파 청소년 교향악단팀의 축하공연과 더불어 인근 어린이집에서 80명 가까이 되는 아이들이 도서관 무료체험 프로그램 때문에 와 있어서 개관식 내빈까지 도서관 건물 4층과 5층이 모두 꽉 채워졌다. 송파구 구청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국회의원 2명을 비롯해 시의원들까지 12명의 귀빈만 온다고 했었는데 개관식 전날 갑자기 늘어난 30명의 귀빈들까지 참석해서 개관식은 매우 성대하게 잘 끝났다. 영어도서관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더불어 아이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엄마들의 열정을 온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하루였다.
나는 그렇게 개관식만 지나면 내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던 어린이 영어도서관과 다양한 이용자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생은 역시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았다. 영어도서관 이용자는 겨울방학 시즌과 겹치며 송파구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 올 정도였고, 전국에서 영어도서관 벤치마킹을 하겠다고 견학도 많이 왔었다. 사서데스크 옆에서 당시에 공익근무요원 한명을 지원해줘서 함께 근무했었는데 그 공익근무요원이 없었다면 그 시간들을 버텨내지 못했을 것 같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들도 여태까지 내가 만났던 이용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공공도서관이고 어린이 영어도서관이다 보니 아직 말도 못하는 아기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전 연령층이 이용하는 도서관이었다. 덕분에 나는 공공도서관에서 대민 서비스라는 것을 처음 경험해보게 되었다.
일부 개념이 없는 이용자들과 그 분들 덕에 나는 ‘다산콜’에도 민원이 접수되고, 송파구청에도 민원이 접수되기 시작한다. 36개월도 안된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즈까페에 온 것처럼 마냥 아이는 그냥 풀어놓고 본인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도서관 여기저기를 활보하는 이용자부터 읽고 난 책들은 여기저기 그냥 내버려두고 가버리는 이용자, 엄마들끼리 모여서 본인들의 집 거실처럼 모여 앉아 도서관에서 수다를 떨지 않나 먹고 난 음식물을 서가에 놓고 가고, 심지어 아기 똥 기저귀도 서가 구석에 두고 가는 다양한 진상들의 천국이었다.
이런저런 민원과 이용자들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또 큰 사건 하나가 터진다. 도서관 개관 당시에 외주를 주었던 도서납품업체와 해결되지 않은 도서입고 문제 때문에 외주업체 대표는 감사원에 민원을 넣고 구청관계자를 포함해 삼자대면까지 하게 된다.
34년을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왔나 싶었다. 늘 정시 퇴근에 익숙했었고 그런 반복되는 일상이 싫어 영어도서관 사서로 이직을 선택한 거였는데 하루 종일 다양한 이용자와 만나야하고 감당할 수 없는 업무들을 해야만 하는 삶의 변화가 쉽지만은 않았다.
2012년 2월이 시작되고 도서관은 안정화에 접어들었다기 보다는 매일 매일 새로운 민원들로 업무 스트레스는 점점 가중되었다. 당시 매일 출근하면서 기도를 했었다. “하나님! 오늘 하루는 민원 발생 없이 평안한 하루를 허락해 주옵소서!” 하고 말이다. 성질 급하고 욱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나로선 공공도서관에서 근무 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힘들었다. 두통약과 진통제를 먹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두통도 생기고 나날이 한숨도 늘어났다.
도서관 개관 후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았다. 일방적으로 이용자들을 무시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보통의 엄마들은 다른 사람이 내 자녀에게 대하는 태도 하나하나를 주시한다고 한다. 혹시 내가 무의식중에 한숨소리와 까칠한 목소리와 이용자들을 대하지는 않았는지 이런저런 나의 태도 때문에 난 민원사서가 된 것인가?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대방에게는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민원사서가 되어 송파구청에서 도서관 사서들을 대상으로 하는 친절교육을 받기도 했다. 당시 강사분이 친절교육 시간에 했던 멘트가 아직도 내 머리에 남아있다. 불만민원과 귀신의 공통점에 관한 것이었다.
1. 무섭다.
2. 알고 보면 불쌍하다.
3. 쫙 달라붙는다.
4. 자기의 말을 들어주길 원한다.
5.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른다.
강사 분은 그리고 항상 민원인은 항의할 권리가 있음을 기억하라고 했다. 다른 어떤 서비스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공감서비스’를 제공해야한다고도 했다. 친절 교육 후 난 이러저런 생각들이 많아졌다. 관장님은 심지어 나에게 책상에 거울을 가져다 놓고 웃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난 도서관의 사서로 일하려고 지금까지 버텼는데 무언가 나에게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처럼 고객님께 응대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당시 내가 맡은 업무도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해서 도서관 관련 업무로도 혼자서 너무 벅차고 힘들었는데 감정적인 업무로 소비해야하는 일까지 가중되니 더 힘들었다. 그리고 당시 송파구의 슬로건이 ‘책 읽는 송파’ 였는데 송파구청에서 주최하는 ‘석촌호수 벚꽃축제’, ‘ 송파구 북 페스티벌’ 등 굵직한 행사들에 송파구 구립도서관들이 부스를 만들어서 도서관을 홍보하거나 책갈피 만들기, 영어스토리텔링 체험프로그램 등을 운영해야만 했다. 그래서 주말 특히 일요일도 구청행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심지어 송파구청 직원들이 참석하는 아침 조회에도 참석해야만 한 적도 있었다. 영어도서관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구청에서 위탁 계약한 도서관들 중 우수 프로그램 운영사례로 선발되어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영어로 동요를 부르고 스피치를 준비해서 발표하기도 했었다.
내가 공감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거 같기도 하고, 2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며 많이 힘들고 지쳤다.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하기가 싫어졌고 도서관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은 이렇게는 나를 학대하면 안 될 거 같아서 나는 정직원이 된지 25개월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여섯번째 퇴사를 감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