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_장소_9. 점자 도서관

튀니지에서 귀국 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취업이 문제였다. 2016년 내 나이는 어느덧 서른하고도 아홉이었고,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경력은 경력대로 나이는 나이대로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상황이어서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마냥 백수처럼 살 수는 없기에 또 사서직 채용 공고를 검색하며 경기도 성남에 있는 점자도서관의 육아휴직 대체 사서직 채용 공고를 보게 된다.


점자도서관이 일단 흥미로웠고, 종합복지관 안에 있는 도서관이여서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반 장애인분들도 이용하고,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하는 도서관이여서 일반인들도 이용하는 도서관이라고 했다. 점자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지만 일단 경험해보지 않은 관 종이여서 나는 주저 없이 지원하게 된다.


서류전형을 합격하고 최종면접에서 면접위원들은 “경력도 많으신데 육아휴직 대체라 15개월 밖에 근무할 수 없는데 괜찮으세요?” 라는 질문을 제일 먼저 하셨다. 그래서 수많은 도서관에서 근무해봤지만 점자도서관은 처음이라 기존 도서관과는 다른 경험을 해보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나는 최종 합격을 하고 2017년 3월부터 15개월간 점자도서관의 사서로 또 사서 고생하는 사서가 된다.


점자도서관이 속한 복지관은 성남시에서는 종합복지관으로는 전국에서 제일 규모가 크다고 했다. 그리고 수영장을 비롯한 헬스장, 주간보호센터, 발달장애인을 위한 작업치료, 언어치료, 놀이치료, 음악치료실, 자폐아동을 위한 ABA치료실 등 총 4층 건물에 다양한 시설들을 갖춘 곳이었다. 점자도서관은 복지관 건물 2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장자료가 점자 도서뿐만 아니라 촉각도서 그리고 일반도서도 소장하고 있는 도서관이었다. 성남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서 운영되는 도서관으로 공공도서관은 아니었고 재단법인에서 성남시로부터 위탁운영을 하는 복지관의 부속기관으로서 운영 되는 곳이었다.


장애인에게 독서를 통한 지식 향상과 정보 습득의 기회를 제공하고 문화 복지를 향상하도록 도모하며 시각 장애인 도서관, 장애인 정보 · 문화센터의 기능을 하며 일반 시민들에게도 열린 도서관을 운영하는 것이 목표인 곳이었다.


도서관에는 사서, 점역사, 사회복지사, 공익근무요원 이렇게 총 4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내 주요업무는 수서(도서구입), 자료이용서비스, 책나래 서비스(장애인 분들에게 원하는 책을 무료로 우체국 택배로 발송), 독서문화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이었다. 그리고 도서관을 관리하는 복지관의 권익옹호서비스팀의 팀장이 있었고 복지관에 부속된 기관이여서 나와 점역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회복지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곳이었다. 전자결제 시스템과 복지관 업무에 능숙하지도 않은 상태였는데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직접 해주지 않았고 한글파일 2장으로 남겨놓은 인수인계서를 보고 혼자 알아서 업무를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도서관 사서로 일하지만 복지관에 소속되어 있어서 업무를 논의하거나 소통할 때도 사서가 아닌 사회복지사와 함께 업무를 공유했다. 도서관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도가 없는 동료들과 함께 일을 해서 황당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은 권익옹호 팀장이 도서구입비 예산이 많지 않으니 중고 책으로 도서를 구입하고 도서관 서가도 중고물품으로 구입하라고 했다. 도서관의 소장도서를 중고 책으로 비치하라니 이건 도무지 내가 갖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팀장은 중고 책도 새 책과 다르지 않게 깨끗하고 좋은 책들이 많은데 왜 도서관은 꼭 새 책을 정가로 주고 사야하냐고 오히려 나에게 질문했다.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 어디서 부터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다.


도서관 자료구입 선정 기준 및 도서관에서는 중고책을 구입해서는 안되는 사유들을 찾아서 팀장에게 보고했다. 다행히 도서구입은 온라인 교보문고와 지역 내 서점을 통해서 새 책으로 구입하고, 도서관 서가와 사서데스크도 제작가구로 전문 가구업체에 의뢰해서 진행할 수 있었다.


평소 일복이 많은 나는 육아휴직으로 전임자가 남겨놓은 대출반납 데스크 제작, 시청각자료(DVD, CD, TAPE) 보관장, 제작서가 설치를 비롯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치료 프로그램 기획과 일반 지역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구연동화, 그림책 원화 전시전 등 다양한 독서이벤트를 기획하고 15개월 동안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된다.


그래도 도서관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다른 도서관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었다. 하루 평균 이용자 수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을 비롯해서 다양한 장애를 갖고 있는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업무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솔직히 그 외는 많이 힘들었다. 한국 사회에 내가 적응하지 못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당시 복지관 내에 직원들이 계약직은 대놓고 무시하고, 심지어 같이 근무하는 점역사와 사회복지사와도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정규직과 계약직이 도대체 뭐가 그리 다른 건지 하는 업무는 동일하면서 누구는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너무 말도 안 되는 차별을 당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세대차이도 있어서 함께 근무하는 동료들은 30대 초반이여서 40대인 나와는 의사소통하는데 어려움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루하루를 버티면서 다녔던 것 같다. 계약직이라고 업무를 줄여주는 것도 아니었고, 팀장은 도서관의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아서 도서관에 내려와서 여기저기 환경미화와 서가위치를 옮기라는 등 업무 스트레스가 날로 늘었다.

그래도 나쁜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각장애인 분들을 일단 이용자로 만날 수 있는 점자도서관이여서 다양한 사례의 시각장애인분을 참고 봉사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노래자랑, 시각장애인 나들이 행사 등 사회복지사와 함께 협업하며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을 운영해 볼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시각장애인 나들이로 '과천 어린이대공원'으로 시각장애인 열 다섯분과 다녀왔던 것 그리고 가평에 있는 '아침고요수목원'으로 시각장애인 삼십분과 가을 소풍을 다녀왔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었고 어떻게 도와드려야하는지도 잘 몰랐었는데 이런 행사를 통해서 그 분들에게 길을 안내할 때 어떻게 도와드려야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고 눈이 보이지 않으시지만 청력이 좋은 분도 있었고 후각이 뛰어난 분들 도 있었다.


사서로 근무하면 참 다양한 이용자를 만날 수 있었다. 도서관의 특성상 특정 계층만 이용하는 곳은 물론 그렇지 않지만 사서로 10년 동안 근무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고 뿌듯했던 순간도 점자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했던 시간이었다.

중증장애인, 발달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장애인 분들의 고충도 알 수 있었고, 그들도 일반인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막연히 가지고 있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깨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점자를 읽고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점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전체 시각장애인 중 20%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에는 팀장이 주간회의 때에도 스터디를 하자며 팀원들과 시각장애인과 관련된 논문이나 학술자료들을 읽고 나서 스터디를 하자고도 했었다. 그런 팀장을 미워하기도 했고, 왜 계약직인 나한테 이런 업무까지 하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사서이기 이전에 나는 복지관에 근무하는 직원이기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사회복지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7년 12월에는 사회복지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내가 너무 무지한 것 같아서 주경야독하며 사회복지관련 전공을 이수하고 근무하면서 주말에 시간을 내어 송파구에 있는 노인복지원에서 실습을 하며 2018년 8월에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그렇게 15개월간의 점자도서관 사서로 계약이 만료되고 나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취업을 위해 2018년 7월과 8월 뜨거운 폭염을 뚫고 강남역에 있는 YBM TOEIC 학원을 등록하여 토익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서직도 이제는 공인 영어점수를 요구하는 기관들도 많아지고, 서류전형도 1차, 2차까지 늘어나고 3차 면접까지 쉬운 일이 없었다. TOEIC (토익)학원에는 취업을 꿈꾸는 취준생들로 교실이 꽉 매워져있었다. 내 나이 마흔하고도 하나에 TOEIC(토익) 공부를하고 있으니 이런 현실이 막막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주어진 시간 여기저기 원서도 넣어보고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실업급여 수령기간이 끝나는 10월까지 나는 백수로 지내며 두 번의 TOEIC(토익) 시험을 보았고, 800점이 넘는 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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