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_장소_10. 제주특별자치도 어린이 도서관
2018년 10월에 KOICA(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튀니지에서 함께 활동했던 시니어 선생님에게 전화 한통을 받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사서사무관으로 퇴직하셨던 분이여서 제주도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서 경력직으로 7급 사서직을 채용한다고 정보를 주셔서 한번 지원해보라고 하셨다. 실업급여도 만료되어서 초조한 마음이었는데 일단 어디든 지원해보자 싶어서 지원서를 제출하고 결과를 기다렸다. 서류합격자가 유일무이하게 나 혼자였다. 이렇게 단독으로서류합격을 내는 곳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심지어 내 이름도 정확하게 홈페이지에 공개하면서 말이다. 면접을 보러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그렇게 나는 제주특별자치도에 발을 딛게 된다.
면접일 보다 하루 먼저 제주도에 도착 한 나는 호텔에서 1박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면접 예상 질문과 자기소개 등을 연습했다. 2018년 10월의 마지막 날 나는 면접시간보다 일찍 재단법인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면접장에 도착하게 된다. 수험표를 왼쪽 가슴에 옷핀으로 달고 나니 긴장감은 더 해졌다. 그래도 짧게 기도하며 내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게 담대하게 나를 보여주고 나오자 하며 면접장으로 입실하게 된다. 면접위원은 총 4명이었다. 질문은 어린이도서관 운영 관련 실무, 독서행사 관련, 경력 관련, 지원 동기, 성격의 장점, 단점 그리고 조직생활의 어려운 점, 요즘 읽고 읽는 책은 무엇인지, 도서 판매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데 도서관에서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것인지, 해외 도서관과 우리나라 도서관의 차이점, 어린이도서관을 어떻게 활성화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 등을 받았다. 무언가 광범위하게 많은 질문들을 소신껏 최대한 차분하게 답변했다.
합격자발표는 다음날 바로 홈페이지에 공지해준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기는 하지만 제주도에는 사서자격증을 갖고 있는 문헌정보학과 출신 2급 정사서는 거의 없다고 한다. 왜냐면 제주도에는 문헌정보학과가 있는 대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일무이하게 혼자 본 면접은 그렇게 최종 합격이 되어서 나는 제주특별자치도 어린이도서관의 사서로 근무하게 된다.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하는 일정은 5일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제주도에 아는 사람도 없었고, 집을 구하는 것도 너무 즉흥적으로 구해서 혼자 살 작은 원룸을 면접보고 난 다음날 3개의 오피스텔만을 보고 바로 계약을 해버렸다. 당시 ‘효리네 민박’의 영향으로 나에게도 제주는 뭔가 파라다이스 혹은 쉼, 워라벨이 매우 좋은 곳이라는 막연한 기대 심리가 있었기 때문에 기대감으로 가득차 이주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도서관은 역대 대통령이 제주특별자치도에 방문했을 때 숙소로 지내기도 하고, 제주특별자치도지사 관사로 사용하던 공관을 어린이 도서관으로 리모델링해서 2017년 10월에 개관한 이제 1년이 된 도서관이었다. 인테리어는 기존 도서관에서는 볼 수 없는 관사를 개조했기 때문에 1층 꿈자람 책방에는 화려한 샹드리에 조명과 청와대를 상징하는 봉황무늬가 나의 눈을 사로 잡았다. 2층에는 직원 사무실과 세미나실, 프로그램실, 그림책방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리고 '대통령행정박물관'이라는 공간도 있어서 역대 대통령들의 사진과 숙소로 사용되어졌을 때대통령들이 직접 사용했다는 쇼파, 침대, 화장실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도서관 외부의 정원이 매우 넓어서 숲속 놀이터, 잔디밭과 제주의 자연과 어울리는 다양한 나무, 꽃들이 있는 공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의 직원은 총 7명이었고, 도서관 운영을 총괄하는 팀장 1명, 사서 2명, 프로그램팀 2명, 운영지원팀 2명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나는 당연히 도서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사서자격증을 갖고 있는 사서인 줄 알았는데 제주특별자치도는 특이하게도 열람실이라는 팀에만 사서 자격증을 갖고 있는사서 2명이 있고, 도서관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프로그램팀 직원, 도서관 행정과 운영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사서가 아닌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다.
내 업무는 도서관리 및 장서개발, 지역도서관 네트워크 구축, 독서동아리 등 독서문화프로그램을 담당하게 되었다. 내가 입사하기 전 2018년 7월에 먼저 근무한 사서 한 분이 있었다. 이분도 육지에서 내려와 싱글인 여자 선생님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솔직히 입사하고 첫 날 사무실 분위기는 내가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묘한 곳이었다. 작은 사무실에 7명의 직원이 같이 있고, 파티션으로 나뉘어져있기는 하지만 옆 사람의 숨소리도 느낄 수 있는 매우 좁은 사무실이었다.
총 14개월 동안 어린이도서관에서 근무하면서 여태까지 도서관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운영되고 진행되는 것이 신기했다. 도서관 운영시간도 어린이도서관은 통상적으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어린이도서관이지만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였고 휴관일도 매주 화요일, 설날과 추석, 12월 31일만 휴관하고 나머지 법정공휴일도 개관했다.
도서관이 무슨 쇼핑센터도 아니고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는 내부사정에 비하면 운영시간부터 직원들에게 많이 부담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오후 8시까지 개관하다보니 직원들이 2교대로 나누어 오전 출근(오전 9시 출근해서 오후 6시 퇴근)과 오후 출근(오전 11시 출근해서 오후 8시 퇴근)조로 나누어서 근무하였다.
2018년 11월 7일 입사하고 제일 놀랐던 점은 당시에 전자결재를 사용하지 않고 대면보고와 일일이 결재서류를 직접 들고 위탁기관인 재단법인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으로 직접 찾아가서 담당 부장님과 원장님께 결재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정부출현기관에서 전자결재 시스템이 도입되지 않아서 매우 놀랐다. 결재문서의 문서번호도 전자결재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카카오톡으로 “문서번호 따도 될까요?” 하고 직원들끼리 순번을 받아서 결재문서의 번호를 연필로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제주특별자치도라고 하지만 정말 시대에뒤떨어지는 곳이었다.
일복이 많은 나는 그렇게 입사하고 한 달 후에 자료실 서가입고와 전시서가 입고를 담당하며 소장도서 총 2만 8천여 권을 재배치하는 업무를 맡게 된다. 기존에 있는 서가에는 책을 더 이상 꼽을 자리가 없어서 신규로 서가를 추가 설치하고 전시서가를 만들어서 하루 종일 무거운 책을 들어 옮기는 일을 하니 팔이 너무 아팠다.
그래도 책들에게 무언가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이용자들에게도 다양한 책들을 좀 더 이용하기에 편리하게 배치해서 열람공간도 확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행복했다. 그리고 이 업무를 함께 하는 동료 사서선생님과 아르바이트 학생들덕분에 3주 만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도서관은 도서 대출을 해주지 않고, 도서관 안에서만 열람이 가능한 곳이었다. 대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무료로 진행한다는 것을 특화해서 홍보했다. 여러 도서관에서 근무해봤지만 도서 대출이 금지되는 도서관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웠다. 북까페도 아니고 공공도서관이라는 곳이 책을 대출해주지 않는 사유도 대출반납 업무를 할 인력이 부족해서란다. 사유도 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서관의 기본 기능은 다양한 자료를 이용자에게 무료로 대출해주는 일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나는 학교에서 배웠는데 말이다.
2019년 1월은 심지어 직원들 중 2017년 입사자들 3명은 퇴사하고 겨울방학을 맞은 도서관의 가장 바쁜 시기를 4명의 직원이 2교대로 운영하였다. 도서관의 모든 직원이 계약직이었고,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입사한지 2년차가 되면 계약만료로 강제적 퇴사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 동료 사서선생님과 고용노동부에 이와 같은 문제점과 2019년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도 근무를 하는 상황에 대해 이의제기를 했으나 고용노동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일단 2019년도만 버티자는 마음으로 주어진 자리를 지켰다. 1월 한 달동안은 팀장을 포함해 직원 3명이 결원되고 4명의 직원이 겨울방학으로 이용자가 더 늘어난 도서관을 운영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만 직장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제주특별자치도는 내게는 너무나도 낯설고 이상한 나라였다. 조직문화도 그렇지만 일단 섬 특유의 문화도 있고, 제주사투리와 그들만의 은어 등등 사무실에서도 처음에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나보다 먼저 입사해서 사서로 근무하고 있는 동병상련 동료가 한명이라도 있어서 그 힘든 시간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2019년도 2월 중순에 퇴사했던 직원 3명이 다시 입사지원을 해서 그대로 3명의 직원이 다시 입사했다.형식적인 절차 때문에 현장에서의 업무 공백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조직문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2019년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독서문화프로그램과 도서구입등의 사업을 진행하였다. 내가 맡은 업무는 월별로 진행되는 북 큐레이션, 영,유아와 부모를 위한 ‘북스타트’ 후속프로그램과 그림책 원화전시전 운영, 그리고 도서관 주간, 독서의 달 등에 진행하는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였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업무가 부담스럽기는 했으나 동료 사서선생님과 협의하며 함께 고민을 나누며 진행할 수 있어서 다행히도 스트레스는 받지만 잘 이겨내며 2019년 상반기를 보냈던 거 같다. 그리고 제주특별자치도에서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을 운영하고 있는 제라진이라는 곳을 만나고 ‘13층 나무집’ 시리즈 번역가이시기도 하고 출판계에서는 유명한 신수진 번역가님을 만나면서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매개로 다양한 전시도 할 수 있어서 기존에 도서관에서는 시도해보지 못한 일들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하지만 함께 일하던 동료 사서선생님이 2019년 10월 퇴사를 결정하고 졸지에 나는 12월까지 총 3개월을 사서 2명이 하던 업무를 혼자 독박으로 하게 된다. 9월에는 갑자기 추경 예산안도 통과되어서2억이라는 예산을 하반기 10~12월 내에 사용해야했기에 나는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도서구입비 같은 경우도 2019년도 상반기에는 예산이 삭감되어서 년 예산이 고작 1,200만원이었는데 갑자기 추경예산이 내려오면서 3개월 동안 3,500만원을 쓰라고 하니 내 입장에서는 그저 황당할 따름이었다. 년 예산을 2개월로 나누어서 600만원으로 도서구입을 하다가 갑자기 그의 3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3개월 안에 쓰라고 하니 한 달에 거의 1,000만원이 넘는 금액에 해당하는 도서를 수서하고 정리해야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다.
도서구입 절차도 기존에는 수의계약이 아니라 도서구입 계획안 한번으로 시행되었던 것이 하반기에는 갑자기 무조건 수의계약으로 처리해야한다고 하니 실무를 하는 나로서는 불필요한 서류업무도 배로 늘어나니 더 힘들었다. 퇴사하고 나를 버리고 떠난 동료가 밉기도 했고, 직원 충원도 없이 이 상황을 온전히 혼자 해결해야하는 것도 짜증이 났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직서를 던지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
그렇게 힘든 3개월의 시간을 버텨내며 도서구입과 월별로 진행되는 북 큐레이션,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동아리 모임도 잘 마무리하고 2020년 사업계획서까지 작성하고 나는 2019년 12월 28일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계약만료로 퇴사를 하게 된다. 퇴사 다음 날 나는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온다.
2020년이 밝아오고 퇴사 한지 14일이 지났지만 퇴직금은 지급되지 않았다. 법적으로 퇴직금을 정산해서 지급해야하는 14일을 넘기고 그들은 근로자에게 어떤 양해도 없이 자신들의 행정처리 절차만을 언급하며 2020년 2월에나 퇴직금이 정산될 수 있을 거 같다는 애매한 답변만을 하기에 나는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접수하게 된다.
정부출현기관에서 운영하는 곳에서 여태까지 급여를 받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정말 그들만의 세상 작은 공화국 같았다. 계약기간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줘야 하지만 이들은 그 법을 피해 퇴사 후 다시 입사하도록 한다. 그리고 투명하게 채용절차가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기존 직원들이 다시 서류전형과 면접을 거쳐 다시 입사하게 된다.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인력 운영이었다. 도서관은 그 누구도 알다시피 지속적인 업무를 하는 곳이다. 1년 단위로 업무가 예산에 따라 진행되기는 하지만 인력도 1년 단위로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다는 이 곳은 정말 특이했다. 심지어 퇴직금도 제대로 정산해주지 않아서 2017년도 입사자들은 퇴직금을 2019년 10월에 정산 받았다. 그런데도 아무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런 조직 구성원들의 태도도 나는 너무 놀랐다. 자신이 당연히 마땅히 받아야 하는 퇴직금에 대해서도 그 누구도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모습에 안타깝기도 하고 너무 종속적인 위탁관계에서 오는 갑과 을의 주종관계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국 나의 퇴직금은 2020년 3월이 지나서야 처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