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_장소_12. 다시 초등학교 도서관

2020년 9월 추석 무렵 한국으로 귀국해서 난 또 이방인처럼 한국생활에 적응해야만 했다. 자발적으로 결정한 퇴사라 누군가의 잘못이라고 탓을 할 수도 없었고, 내 나이도 어느덧 마흔하고도 셋이 되어버렸기에 일단은 좀 쉬고 싶었다.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쳤고 일을 할 수 있을 만한 멘탈 상태도 아니었다. 싱가포르에서 거의 5kg정도 살이 빠져서 돌아오기도 했고, 아무것도 하기 싫고 무기력한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된다.


마음의 감기라고도 하는 우울증이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다. 2020년 11월 중순 쯤에 놀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고등학교 친구에게 심리 상담이라는 것을 추천받았고, 친구는 인생 한번 쉬어간다고 생각하고 심리 상담을 받아 보라며 몇군데 유명한 심리상담센터를 알려줬다. 솔직히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도 우울증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경우도 있고, 나 자신 조차도 내가 우울증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가 추천한 심리상담센터 중에 그나마 집에서 가까운 남부터미널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에 오전 11시에 예약을 잡고 미술치료를 전공한 친한 동생과 함께 첫 방문을 하였다. 소위 유명한 심리상담 박사님들은 예약 잡기도 어렵고 힘들단다. 내가 선택한 박사님은 연령대는 나랑 비슷해 보였고, 조금 많이 딱딱한 사람 같았다. 처음으로 마주한 그 박사님과 어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했다. 작은 방 안에서 50분 정도 이야기 했던 걸로 기억이 된다. 일단 내가 왜 죽고 싶었고, 왜 심리 상담을 하고 싶은지 뭐 그런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몇가지 심리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심리검사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런 검사를 꼭 받아야하나 싶었다. 가장 큰 문제는 그 박사님과 속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생겼다. 사람을 처음보고 어찌 알 수 있겠냐만은... 그리고 솔직히 비용 문제도 컸다. 1회 50분 상담에 십만원이었다. 상담가의 경력이나 학위에 따라 회당 상담비용은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한다.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집 근처의 기독상담 센터에서 약 6개월간 주1회 한시간씩 심리 상담을 받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심리 상담이라는 것을 받아 보았기에 처음에는 너무 낯설고 생전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내 삶을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속 마음 이야기를 하는게 어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기에 좀 더 솔직하게 내 내면의 생각이나 고민들을 털어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기독교라는 공통분모와 엄마처럼 포근하시고 이해를 많이해주시는 상담사분을 만나서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여는게 편했던 것 같다. 상담사 선생님은 항상 내 마음이 어떤지 "지금 기분이 어때요?" 이런 질문을 많이 던져주셨다. 그리고 힘들었을 당시에 "마음은 어땠어요? 어떻게 하면 마음이 괜챦아질까요?" 라든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차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인생을 이해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상담이 끝나면 기도로 마무리해주셨는데 그 기도가 너무 위로가 되었고, 눈물을 흘리며 아멘하고 상담을 마치며 매주 토요일 오전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심리상담의 긍정적인 영향으로 조금씩 몸도 마음도 회복되어갔다. 그런데 2021년 6월 중순 새벽 집 거실에서 쓰러지면서 왼쪽 쇄골이 골절되었다. 다행히 수술은 안하고 3개월여 정도 어깨에 교정기를 차고 생활하면서 쇄골 뼈가 자연적으로 붙어주기를 기다리며 그 해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쇄골 뼈 골절 사고를 통해 가족에 대한 소중함과 관계회복 등등 여러 가지 나의 내면적인 문제들과 가족문제를 조금씩 하나님이 만져주시고 풀어주셔서 얽힌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며 2021년을 안식년같이 모처럼 쉬면서 보냈다.


그리고 해가 바뀌어 2022년이 되었다. 올해는 사서로 살기보다는 다른 직업으로 전업을 하고 싶었다. 직업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많았고, 또 사서로 지원하기에는 내 나이 마흔하고도 다섯이 되었으니 누가봐도 중년이기에 취업난이 심하다는 코로나 시국에 내가 과연 재취업을 할 수 있을 까 하는 생각도 솔직히 많았다.


일단은 정규직이나 계약직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컸다. 2021년 12월부터 교육용 보드게임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3개월 근무하게 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하면서 보드게임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학교 방과후 강사를 해볼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3년 만에 대학 동기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고, 친구는 워킹맘으로 2019년도에 초등학교 학교도서관 기간제 사서교사로 채용이 되었는데 2020년 코로나로 학생들의 재택수업과 도서관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던 시간을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2022년도 초등학교 사서교사 임용고시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기존에 친구가 근무하고 있던 초등학교 기간제 사서교사 자리를 추천했다. 친구도 3년 동안 근무했던 곳이라 애정도 많이 쏟았고, 함께 근무했던 학교 교장, 교감선생님 그리고 교직원들도 좋았다며 나에게 지원을 해보라고 추천했다.


학교도서관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솔직히 내 계획에는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던 일이었다. 처음에 친구의 제안을 듣고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다. 솔직히 수업은 정식적으로 해본 적이 없어서 두렵기도 했고, 2020년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에서 경험한 학교도서관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도 남아있었고, 시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학교도서관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서울에서 40년을 넘게 살다가 하남으로 2021년 11월 이사를 하면서 친구가 추천한 초등학교와 거리도 멀지 않아서 일단 한번 다시 도전해보자 하는 각오로 다시 나는 초등학교 기간제 사서교사로 도서관에 다시 발을 딛게 된다. 다행인건지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사람은 나 혼자 뿐이여서 면접도 아주 수월하게 넘어갔고 1년 계약으로 기간제 사서교사로 2022년 3월부터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하게 된 학교는 학급수가 적은 편이여서 한 학년당 3학급씩이어서 총 20학급으로 한 학기당 수업시수도 40시간으로 다른 초등학교에 비하면 근무 환경이 매우 좋은 편에 속했다.


솔직히 친구가 추천한 이유도 학급수가 적은 게 제일 큰 장점이라고 했었다. 보통 전체 학급수가 35학급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학생수도 학급수도 작아서 수업시수도 그렇고 조금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3월은 학교도서관이 제일 정신없는 시기이다. 진급처리 및 1학년 신입생 이용자 등록을 해야해서 DLS(디지털자료실지원센터) 상에서 이루어지는 이 업무를 위해 진급명단파일과 신입생 명단파일등 학생명부를 받는 일부터 손이 가는 업무가 많다.


신학기부터 도서관 이용자교육 수업을 해야하기에 3월 셋째주부터 수업안도 짜야하고 정신없이 지냈다. 그 와중에 3월 말경에 코로나에 확진되어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는 후유증으로 심한 기침증상과 피로감으로 병가 7일 이후에도 퇴근하고 수액을 맞고 약으로 버티며 4월을 보냈다.


4월은 세계 책의 날(4월 23일)이 있는 달이기도 해서 행사를 안하고 넘어가기는 애매해서 '오행시 짓기'와 '그림책 원화전시'와 '한줄 소감평 작성하기' 등 독서 이벤트를 함께 진행했다. 수업은 다행히 처음하는 것 치고는 나도 학생들도 재미있게 참여해줘서 잘 마무리 되었다.


5월은 가정의 달 그리고 어린이날이 있는 달이라 도서관에서도 어린이날 기념 '그림책 원화전시전'과 '독서감상문 작성하기' 등을 하고 나니 1학기 수업도 마무리되어지고, 6월에는 야심차게 도서부를 모집해서 5-6학년을 대상으로 모집공고를 내고 총 12명의 도서부원을 맞이하게 되었다. 6학년은 총 7명의 여학생이 선발되었는데 아이들이 어찌나 착실한지 여태까지 만났던 초등학생 중에서 정말 모범이 되는 학생들이었다. 5학년은 남학생3명, 여학생 2명이 선발되어서 총 5명이 1기 도서부원이 되었다. 도서부원들의 첫 미션은 도서관 및 도서부 홍보영상을 만들어보는 것으로 했다.


마침 매달 첫 번째 월요일에 ‘빛깔있는 방송조회’를 하면서 교내 방송부에서 사서교사 인터뷰 제의가 들어왔다. 도서관 홍보와 도서부원 소개를 하면 금상첨화일 것 같았다. 아침 1교시 시간에 전교생이 각반에서 방송조회를 하기에 집중도도 좋고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져서 도서부원들이 제작한 도서부원 V-log와 함께 나의 인터뷰 동영상이 방송조회때 송출되었다.


7월은 여름방학을 준비하는 시즌으로 방학 기간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독서캠프를 진행하기로 했다. 방학식 다음날 이틀간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대상으로 선착순으로 20명씩 총 80명만 수용해서 하기로 계획을 했다.

코로나로인해 가정통신문도 요즘은 e알리미(이알리미)라는 플랫폼을 통해 학부모의 핸드폰으로 가정통신문이 전송된다. 그래서 여름방학 독서캠프 안내와 함께 선착순으로 참가자를 모집하겠다고 이알리미를 발송했다. 일주일간의 접수기간을 두었는데 이게 무슨 일인지 신청 하루만에 수용인원을 넘어서 신청자가 몰렸고, 거의 두배수가 더 많은 총 120여명이 신청하게 되었다. 교감선생님께 상황을 보고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교장선생님과 선발자 선정에 관해서 협의해보시겠다고 하셨다.


내 생각으로는 원칙대로 가정통신문 초기에 나간대로 선착순으로 마감하면 될 거 같았는데 학교도 민원에 대해 속수무책이라 작은 민원에도 교장, 교감선생님은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나같은 기간제 교사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결정권자의 의견을 기다릴 수 밖에는 없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지나고 교감선생님이 친히 도서관으로 방문하셨다. 월요일 아침 1교시 시간에 무슨일인가 했는데 하시는 말씀이 독서캠프를 신청한 전체 학생을 다 수용해서 운영해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럼 나는 방학 중에 이틀을 전일근무를 해야한다. 반을 증설해야하고 인력 지원도 없이 나 혼자 하는 독서캠프인데 말이다. 욱하는 마음에 교감선생님에게 “저한테 선택권이 있기는 한건가요. 교장, 교감선생님이 결정을 다 하시고 제가 선택 할 수 있는 안건이기는 한건가요?” 하고 되물었다. 교감선생님은 “아니요, 사서선생님이 생각해보시고 원래 원칙대로 선착순으로 제한해서 운영하는 방안 하나와 그대신 학부모들의 민원은 들어올 겁니다. 그걸 감안하고 그렇게 진행하시고 싶으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두 번째 안은 전체 신청 인원을 다 수용해서 선생님이 힘드시겠지만 이틀 오후 근무만 더 늘어나는 거니까 생각해보시고 어떻게 하실지 알려주세요.”


이렇게 교감선생님은 내가 생각하고 판단해서 알려달라고 하시면 자리를 일어나셨다. 글쎄 내 생각에는 협의 인건지 기관장들의 생각을 알려주고 이렇게 하시지요 하고 가는건지 기분이 참 씁쓸했다. 언제부턴가 민원에 이렇게 민감하고 원칙을 바꿔가며 그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건지도 의문이 들었다. 학교도서관 사서도 감정노동자라는 걸 또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는 과하게 친절하고 민원이나 서비스에 있어서 특히 공공서비스에 있어서 너무 기대치가 높고 무조건 목소리 크면 이긴다는 이상한 개념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리 원칙을 고수하면 선착순대로 하는게 맞지만 나도 요즘 흔히 말하는 MZ 세대도 아니고, 윗 사람이 저렇게 말하는데 어느 바보가 원칙을 고수하며 못하겠다고 말하겠는가 말이다.

씁슬한 마음으로 여름방학 독서캠프를 도서부원들과 결국 준비하게 되었다. 이틀 오전, 오후 반을 증설하고 신청한 전원을 교육적 차원에서 모두 포함시켜 준다는 가정통신문을 또 발송하면서 말이다. 겨울방학에는 과연 또 어떻게 될지 답답했다. 그리고 내가 더 속상했던 것은 방학 근무와 관련된 일이다. 임용고시를 보고 정식으로 발령을 받은 사서교사였다면 과연 이렇게 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게 여름방학 도서관 근무는 기관장(교감, 교장선생님)들에게 직접 들은게 아니라 교무부장 선생님이 전화로 "교감선생님이 여름방학에 도서관 운영하셨으면 하더라구요. 한번 선생님이 연락해보세요."


여름방학 근무는 통상 교사들이 조를 짜서 한 명씩 돌아가며 오전 8시40분에 출근해서 4시40분에 퇴근하고, 하루씩만 나오게 된다. 그런데 기간제 사서교사인 나는 도서관 개관을 위해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개방을 위해 2주일간 출근해야 했다.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됐다. 그렇다면 보건교사, 체육교사 여타 다른 전담 선생님들 그리고 기간제 교사들도 방학 중에 출근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존에는 이런 방식으로 방학 중에 도서관 운영이 이루어졌었는데 말이다.


왜 유독 사서교사만 방학 중에 도서관을 개관하기 위해 출근해야 하는건지 이해되지 않았다. 방학 중 도서관 이용률은 현저히 낮고 학교 주변에 시설 좋은 공공도서관이 있는데 말이다. 굳이 학교도서관의 오전 3시간 개관을 위해 사서교사는 2주라는 시간을 오전 출근만이라고는 하지만 감내하고 해야한다는 기관장들의 결정이 일방적이라고 생각됐다.


사서교사도 교사이다. 기간제교사도 같은 교사이다. 수업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동일하게 전담 교사와 같이 수업도 한다. 그런데 다른 교사들에게는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 제41조 연수라는 조항이 있고, 방학에는 충분히 연수를 보장받고 2학기 수업을 위해 교사에게 연수시간을 보장해줘야 한다. 그리고 솔직히 학기 중에는 하루 연차 사용도 쉽지 않다.


도서관은 특히나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개관도 하고, 내가 휴무이면 도서관은 문을 닫아야 하기에 마음 편하게 연차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다. 사서교사들 사이에는 이런 이야기도 한다. 운동장을 개방한다고 체육교사가 방학 중에 출근하지 않는다. 도서관을 담당하는 일반 교과 교사에게도 방학 중에 나와서 몇일 근무하라고 하면 그 교사는 어떻게 반응할까? 사서교사는 당연하게 몇일이라도 더 나와야 하는 분위기 조장이 그리고 나 스스로 차별된 의식을 갖게 만드는 학교 분위기가 싫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는데 아직 학교를 떠나야겠다고는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기에 일단 여름방학 도서관 개관은 기관장들의 의견대로 울며 겨자먹기로 수렴하기로 했다. 여름방학 기간 2주 동안 학교 도서관을 방문한 아이들은 일 평균 2~3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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