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I_장소_4. 석사 vs 박사
내 나이도 어느덧 30대에 접어들었고, 연구원 내에 있는 자료실 사서로 근무한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던 것 같다. 내가 근무했던 연구원은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 건너편에 있는 주택건설회관 건물 8층에 자리 잡고 있어서 출퇴근시간에 나도 증권맨들 처럼 여의도역 3번 출구로 나가기 위해 긴 줄을 서게 되었다. 3번 출구 밖으로 나오면 각 종 은행, 증권사 건물 등 높다란 빌딩 숲들을 볼 수 있다.
당시 연구원은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어서 원장님, 연구위원,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위촉직 연구원으로 나뉘었고, 연구위원 실장님들은 거의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신 분들이었다. 위촉직 연구원이 연구원 조직에서는 제일 말단 사원임에도 기본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를 요구했기 때문에 연구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거의 석,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연구원들은 일반 회사원들과는 달리 자신의 학문 분야를 짧게는 10년, 그 이상을 연구하고 논문을 쓰거나 연구보고서를 집필하는 일을 하는 조직이었다. 여태까지 내가 일반적으로 도서관에서 만났던 이용자들과는 많이 달랐다. 한 분야에서 10년, 20년을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라서 어떤 문제에 있어서도 논리적으로 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연구원들 책상에는 항상 보고서 페이퍼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다양한 통계자료들과 정책자료 보고서가 가득했다.
나와 입사동기였던 나이는 한 살 많은 부동산학 박사학위를 준비 중인 연구원과 친해지면서 연구원에서 2년간 직장생활이 지겨울 틈없이 재미있게 보냈다. 그녀는 춘천에서 나고 자라 대학원 시절 때 서울에 혼자 올라와서 박사학위 과정까지 등록금을 대출 받아 혼자 힘으로 멋지게 살아내는 사람이었다.
내 나이 서른 살이었지만 당시에 난 아직도 부모님 덕분에 학자금 대출도 없었고, 월급 받는 즉시 이것저것 치장하고 맛집 투어를 다니고, 직장인 동호회로 인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술값에 탕진했었는데 그녀는 월급으로 매달 월세도 내고, 대학원 학비도 내고, 학자금 대출도 갚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여태까지 참 편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사실 나는 연구원을 다니며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만 하면 남은 인생을 크게 고민하며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며 살려던 나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거나 흥미가 있는 분야가 있다면 공부를 더 해보라고 권유 했었다.
사서라는 직업을 정말 하고 싶어서 선택했다기 보다는 고등학교 시절 수학능력시험 점수에 맞추어서 문과생인 내가 갈 수 있었던 학과가 크게 없었기도 했고, 어문계열이나 상경계열 쪽은 흥미가 없었기에 그나마 전문직이라고 생각했던 문헌정보학과를 선택했고, 학부를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입사해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려고 했으나 그것도 잘되지 않아 전공을 살려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도서관에 발을 내딛고 그렇게 계약직을 전전하며 사서로 일한 지 6년여 정도 된 시점이었기에 나도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석사나 박사학위를 갖고있는 연구원들과 함께 근무하다 보니 학위가 더 필요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무언가 정규직이나 좀 더 나은 위치로 이동하려면 학위가 있어야 가능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석사든 박사든 어떤 학문에 대해 내가 관심이 가고 좀 더 공부하고 싶었던 분야가 당시에는 없었던 게 사실이다. 연구원 자료실 근무 환경도 일반 도서관에 비하면 너무 편하고, 이용자들이 한정적이니 오히려 나에게는 더 좋은 상황이었다.
그녀의 충고대로 석사나 박사학위를 하나 갖고 있다면 지금 나는 좀 더 달라져 있을까? 하는 생각은 가끔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학위를 따기 위해 대학원을 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현재 그녀는 부동산 박사학위를 성공적으로 취득하고 연구원을 퇴사해서 증권회사로 이직했다가 고향인 춘천에서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