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I_사람_8. 이방인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내가 사서로 그것도 해외봉사단원의 신분으로 2년이라는 시간을 이방인으로 살아본다는 일은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튀니지는 머리는 유럽, 가슴은 아랍, 발은 아프리카라는 말이 있다.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나라로 프랑스의 식민지였기에 유럽의 문화도 함께 공존하고 있는 나라이다.
아프리카라고 생각해서 흑인들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튀니지에는 아랍인들이 많고 또한 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도 많았다. 그리고 동양인들도 있긴 하지만 많지는 않기에 특히 내가 파견되었던 산촌 마을 Testour(테스트룰)에서는 외국인을 보기가 매우 드문 일이었다.
2년 남짓 튀니지 산촌마을 Testour(테스트룰)에서 살면서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우선 무엇보다도 택시도 없고 옛날 사진에서만 봤던 달구지를 동네에서 손쉽게 볼 수 있었고,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당나귀와 양을 매일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30년을 넘게 아파트에서만 살아봐서 북아프리카 튀니지 테스트룰이라는 곳에서 봉사단원으로 살면서 혼자 작은 마당이 있는 주택에서도 살아 보게 되었다.
도시가스에 냉, 난방 잘되던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나는 보지도 못했던 큰 가스통을 직접 가게에서 사서 주방 가스렌지에 연결해서 써야했고,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는 집에서 6개월을 살아야 했고, 겨울에는 난방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는 집이 아니어서 한국에서 친구들이 보내준 난방 텐트와 KOICA(코이카)에서 지원해준 전기장판으로 추위를 이겨내야 했다. 그때 당시에는 너무 힘들고 이 고생을 왜 해야하나 하며 불평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은 모든게 다 추억거리이며 평생 잊지 못할 선물 같은 기억이다.
KOICA(코이카) 해외 봉사단원이 처음으로 파견된 지역이여서 특히나 시골 작은 마을이라 외국인 그것도 동양인 여자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집 밖을 나가면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때로는 너무 불편하고 ‘시누아’ ‘자포네’ 라며 중국인, 일본인을 뜻하는 아랍어로 나를 놀리는 듯한 아이들의 말에 상처도 받았고, 꼭 내가 동물원에 원숭이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지만 한국에서 온 자원봉사자라는 이유만으로 분에 넘치는 환대와 호의도 받았다.
이웃주민인 ‘Nefisa’ 네피사 아주머니는 늘 내 식사를 챙겨주시고 퇴근하면 늘 본인 집으로 초대해주시고 너무 정이 넘치시는 분을 이웃사촌으로 만났다. 또한 학교 선생님들과 행정직원들이 집에도 초대해줘서 정성이 듬뿍 들어간 튀니지 현지 식사를 대접받았었다. 방학 기간이나 튀니지 내 최고 명절인 이드(알 아드하)나 라마단 기간 때에도 이웃 주민들 집에 초대받아서 현지 음식과 문화체험을 그야말로 제대로 했다.
아마도 내 평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슬림들에게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드 알 아드하’이다. 가축 그 중에서도 ‘양’을 도살하는 날인데 하나님을 경배할 목적으로 낙타나, 소나 양을 각 가정에서 도살한다. 이때 양 값이 제일 비싸지기도 한다. 가정에서 직접 양을 도살하고 후에 양고기를 요리해서 온 가족들이 축제처럼 즐기며 나눠 먹는다.
2년에 걸쳐 두 번의 이드를 보내면서 내 눈앞에서 양들이 도살되는 광경을 본 것이 아마도 제일 잊지 못할 기억일 것 같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믿고 튀니지 사람들 중 97%가 무슬림이라고 하니까 거의 대다수의 튀니지 사람들이 이 명절을 지키고 따르고 있다.
첫 해에 2014년에 본 이드는 너무 야만적이고 잔인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죄 없는 양을 무참하게 도살하고 그 장면을 축제처럼 즐기는 현지인들 모습에 솔직히 문화차이를 넘어 기독교를 믿고 있는 나에게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너무 행위에 치우쳐져 있어 보이기도 했고 시대에 맞지 않는 미개한 의식처럼 보이기도 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집에서 직접 가축을 도살한다는 것이 문화적으로 충격이었다.
또한 이드 말고도 무슬림하면 자동적으로 연관되어 떠오르는 ‘라마단’이다. 한 달여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하루 종일 금식을 했다가 네 번째 기도 시간을 알리는 ‘아젠’이 울리면 그 때(저녁 8시경)첫 식사를 한다.
이 기간에는 튀니지 나라 전체가 관공서부터 시작해서 레스토랑 등 모든 시설들이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이 또한 종교에 대한 신념이며 믿음을 지키기 위한 현지인들의 가장 신성한 기간이어서 나에게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나에게도 금식을 권하기도 하고, 금식을 하면 건강해진다며 학교 직원들이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어쨌든 라마단 기간에도 보통 다섯 가지의 음식을 만들고 저녁 늦게 먹는 대신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않고 온 동네가 대낮처럼 환해진다.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해가 저물 때까지 금식을 통해 신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런 종교문화가 나라 전체에서 행하여 지는 것이 내 눈에는 그저 신기했다. 여하튼 북아프리카 튀니지라는 나라는 참 독특한 색깔을 갖고 있는 나라인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아프리카를 떠올리면 흑인, 사막, 미개척지 등을 상상하게 된다. 나 역시 튀니지에 오기 전에 북아프리카라고 해서 그런 모습들을 상상했다. 튀니지 땅을 밟는 순간부터 그 편견은 철저하게 깨졌다. 지금까지도 모자이크처럼 다양한 조각조각들의 매력이 넘치는 나라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에메랄드빛 지중해를 갖고 있고, 황무지 같은 사하라 사막도 있고 볼거리를 넘어서 카르타고와 로마시대 역사를 아직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나라이다.
내가 봉사단원으로 활동했던 2015년과 2016년에는 3차례 IS에 의한 폭탄테러와 총격 테러가 있었다.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보도되어서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지인들이 노심초사했던 순간이기도 하다. 수도 튀니스에서 일어났던 바르도 박물관 테러와 유럽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 수스 호텔 해변에서 일어났던 무차별 총격 사건은 나도 뉴스를 통해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여서 솔직히 나두 불안했고, 무서운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테러로 인해 단원들의 활동이 위축된 점도 있었고, 튀니지 내에서도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불안한 공포에 떨기도 했었다. 지금은 이 모든 사건들이 과거로 지나 버렸지만 테러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들과 유럽 관광객들의 감소로 인해 튀니지 경제사정이 더욱 악화되어서 튀니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테러와의 전쟁 중이다.
산촌 마을에 살면서 오히려 테러가 일어났을 때 나는 이웃 주민들의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큰 사건, 사고 없이 임지에서 잘 지냈다. 한국에서 지냈다면 생각해보지 못했던 취미생활도 하게 되고 겨울철에는 뜨개질과 코바늘뜨기를 이웃사촌들에게 배웠고, 그림도 그리고 기타도 구입해서 자주 연습은 못해도 코이카 교육원에서 합숙할 때 기타 소모임에서 배웠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이라는 곳도 혼자 연주 할 수 있게 됐다.
튀니지 테스트룰에서 아랍어 이름인 ‘Marwa’ 마루와로 더 많이 불리고 살면서 오히려 현지인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았다. 이웃집 아저씨 ‘Moncef’ 몬세프 가족들 덕분에 임지에서 처음에 집 때문에 고생했을 때 이사도 수월하게 하고, 마치 본인 딸처럼 살뜰하게 챙겨주신 ‘Nefisa’ 네피사 아주머니 때문에 요리하기 싫어하고 챙겨 먹기 귀찮아하는 내가 크게 아픈데 없이 2년이라는 시간을 이방인이지만 현지인들과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었다.
튀니지에서 귀국한지 어느덧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페이스북을 통해 ‘Nefisa’(네피사) 아주머니와 안부를 서로 주고 받고 있다. 화상 통화도 가능하기에 현지 Testour(테스트룰) 소식도 전해 주신다. 언젠가는 다시 가고 싶은 나의 제2의 고향 튀니지의 모든 사람들이 IS 테러의 위협에서 벗어나 안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