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I_사람_7. MBA 관장님

영어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민원인 때문에도 힘들었지만 또 하나 내게는 힘들었던 게 직장 상사와의 관계였다. 나보다 한 살 많았던 관장님은 문헌정보학과는 거리가 먼 경영학과 출신에 MBA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경력도 도서관 쪽에서 근무한 기간보다는 공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에서 근무하다가 대치동에 있는 사설 영어도서관에서 경영 파트 쪽에서 일했기에 사서의 업무에 대해서는 이해도가 낮았고,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았다. 그런 상사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힘들었지만 업무를 처리하는 스타일도 다르다보니 더 힘들었다. 가령 도서관의 사업 계획안을 작성할 때도 나는 전체적인 도서관의 목표나 발전 방향이 우선되어야 그에 따른 세부적인 사업들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녀는 늘 도서관 프로그램의 수익이나 대외적으로 홍보할 수 있는 요소들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실무를 담당하는 나로서는 그런 마인드는 공공기관인 도서관에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대출자 수, 이용자 수, 프로그램 참여자 수에 민감했었다. 물론 그런 통계들이 도서관의 업무를 판단하는 통계자료로 외부에 나가기도 했지만 도서관에서 무료가 아닌 유료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솔직히 난 이해가 안됐다.


영어독서프로그램의 경우에는 도서관임에도 불구하고 학원처럼 프로그램을 상담하는 실장이 따로 있었다. 파닉스, 스토리텔링, 미취학 아동을 위한 영어로 동요를 배우는 프로그램 Sing Along(씽 어롱), 영어레벨 평가 후 영어책을 읽고 리포트를 쓰는 수준별 영어책 읽기 과정(GRC)등 다양한 영어 독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프로그램 접수 기간에는 내가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것인지 학원에서 근무하는 건지 착각이 들 정도로 새벽부터 일찍 와서 대기하는 이용자들도 많았다. 수강신청 인원과 마감이 되지 않으면 그 실적의 부담감이 고스란히 나에게도 전달되었다.


당시 구청에서는 매달 월간 통계자료도 요구했기 때문에 대출자 수, 대출 권수, 이용자 수, 신규 회원가입자 수 등으로 도서관 실적을 평가했다. 그러기에 나도 대출 권수와 이용자 수를 늘리기 위해 매월 행사를 기획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기획했던 프로그램들 덕분에 나도 배운 것은 많았지만 당시에는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영되었기에 업무 부담으로만 느껴졌던게 사실이다. 그리고 퇴사를 결심한 이유도 민원인도 있었지만 사사건건 부딪히는 관장님과의 관계도 힘들었기에 내가 그 조직을 바꿀 수 없고, 그 사람과 향후 몇십년을 같이 일해야 한다는게 숨막히게 답답하기도 했다.


퇴사를 하겠다고 관장님에게 말했던 2013년 10월의 어느 날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듯한 표정으로 “사서님, 잘 생각해봐요.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그만두고 뭐할 건지 생각은 해봤어요?” 글쎄... 나에게는 당장 내일 굶어죽더라도 지금 현실이 너무 싫었기에 담담하게 대답했다. “관장님, 제가 생각했던 영어도서관의 모습과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도서관은 너무 달라요. 제 비전과 맞지 않기에 그만 두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후 그녀는 퇴사를 앞둔 나와 함께 제주도에서 열렸던 ‘전국 도서관대회’ 출장을 가자고 했다. 나는 솔직히 퇴사할 시기에 관장님과 함께 출장을 간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사서가 유일하게 나 혼자였기에 어쩔 수 없이 함께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2박3일 동안 함께 그것도 같은 숙소 한 침대에서 상사와 같이 지낸다는 게 참 쉽지 않은 일이었다. 렌트카를 빌려 전국 도서관대회가 열렸던 국제컨벤션센터로 향했고, 첫날밤에도 그녀는 나에게 정말 퇴사할 거냐는 질문을 했다. 내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했던 그녀에게 고마웠지만 솔직히 이미 마음을 정했기에 다시 되돌리고 싶지 않았다.


출장지가 제주도였기에 관장님과 함께 관광지인 산굼부리와 흑돼지 맛집도 가서 나름 퇴사 전 이별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마지막 날에도 그녀는 “사서님! 정말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 또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지금은 그만두고 싶어요.”


2019년 전국도서관대회가 부산에서 있었다. 그때 우연히 참가자 등록 데스크 앞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거의 7년 만에 하지만 우리 둘은 서로 눈이 마주쳤지만 인사하지 않았다. 도서관 쪽도 참 좁아서 언젠가는 한번 만나겠지 싶었지만 이렇게 재회할 줄은 몰랐는데 아쉽게도 그렇게 그녀와는 반갑게 만날 인연은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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