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I_사람_6. 공익근무요원

공공도서관에서 사서로 근무하면 공익근무요원들과 함께 근무하게 된다. 지금은 명칭이 바뀌어서 사회복무요원이라고 하는 군대를 가지 않고 대신 방위병처럼 자신이 배치받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요원들이다. 어린이 영어도서관에서 근무할 당시 개관을 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정말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야하는 과정이었기에 함께 근무했던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이 정말 컸다.


대출반납데스크에서 나와 함께 근무하면서 이용자들의 도서대출 회원가입, 도서 대출반납서비스 그리고 도서정리까지 그 공익근무요원이 없었다면 힘겨웠던 시간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남달리 책임감도 강하고, 예의도 발랐던 공익근무요원은 중, 고등학교를 캐나다에서 졸업하고, 러시아에서 의대 공부를 하다가 병역 때문에 한국에 귀국했다가 어린이 영어도서관에서 나와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20대 중반이었던 그는 매일 민원에 시달리는 나에게 가끔은 위로와 당이 떨어져서 힘들 때는 달콤한 초콜릿을 감기에 걸려 힘들어할 때는 도라지즙을 챙겨줬다. 민원에 시달리고 관장님에게도 시달리는 내가 안타깝다며 진심어린 눈빛을 가득 담아 사서말고 다른 직업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며 웃픈 조언을 하기도 했었다. 사실 그 공익근무요원은 원래 구청에서 근무하다가, 도서관에서 일해보고 싶어서 지원을 했다고 한다. 그도 처음에는 도서관이라는 곳이 아주 조용하고 편하게 책을 볼 수 있는 최적의 근무지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도 달랐다.


특히나 어린이 영어도서관이였기에 주 이용자층은 4세~초등 저학년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조용한 도서관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주말에는 가족단위로 방문하는 이용자들이 많았기에 도서관은 하루종일 시끌벅적했다.

개관식을 잘 마치고, 도서관이 좀 안정화가 되어가는가 싶었는데 송파구청에서 갑자기 2012년 9월 ‘상호대차서비스’를 시작하겠다고 해서 공익근무요원도 점점 업무가 가중되었다. 또 내가 구청에서 주최하는 교육, 회의 때문에 자리를 비울 때도 내 역할을 대신해서 근무해줬기 때문에 거의 사서처럼 근무했었다. 지금이야 상호대차 업무가 많이 보급되고 시스템 상에서 처리하는데도 크게 어렵지 않지만 2012년 당시에는 갑자기 송파구청 산하에 있는 구립도서관들의 장서를 상호대차 서비스 하는 사업을 구청장이 공약으로 내걸고 진행했던 정책이여서 부랴부랴 각 도서관들은 RFID시스템을 바꾸고, 도서등록번호도 갑자기 수정하게 되었다. 사서의업무는 늘어났지만 직원이 충원되는 구조는 아니었기에 일일 업무는 더 가중되었다. 특히 어린이 영어도서는 당시에도 학부모들의 관심 대상이여서 신청하는 권수도 나날이 증가했다.


그렇게 나와 함께 고생하던 공익근무요원은 2013년 7월에 소집해제를 하고 도서관을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도서관에서 제일 정신없는 여름방학을 홀로 버티다가 공익근무요원은 더 이상 배치할 수 없다는 구청의 통보로 사서보조 역할을 하는 아르바이트 인력을 채용해준다는 회사 측의 결정으로2013년 9월부터 3개월간 근무하는 보조 인력과 함께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나도 2013년 11월 말에 퇴사를 하고 시간은 흘러 2019년 8월에 당시 함께 근무했던 공익근무요원과 연락이 닿았다. 6년 만에 서울 압구정에서 우리는 너무 변하지 않은 서로의 모습에 놀라며 재회하게 되었다. 그는 어느덧 30대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호주에서 물리치료를 전공하며 유학 생활을 하고 있고 방학이여서 잠깐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다.


6년이 지난 2019년 8월 서울 가로수길에서 짧은 만남 후에 헤어지면서 그는 나에게 “이제 사서님이 도서관 관장 하셔야죠?” 라며 어디에서든 응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호주로 돌아갔다. 사서 고생하는 사서로 근무하며 만난 사람 중에 참 감사한 사람 중에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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