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고생하는 사서를 아십니까?

PART II_사람_9. 시각장애인 & 발달장애인

점자도서관에 근무하면서 도서관이 위치한 곳이 종합복지관건물 내에 2층이어서 15개월 동안 육아휴직대체 사서직으로 근무하면서 내가 평소에는 절대는 만나지 못했을 이용자들을 만났었다. 내 업무 중에 시각장애인 분들을 대상으로 ‘독서치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당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각장애인 분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독서치료 프로그램은 주 1회 한 시간 반 동안 선정된 책을 회원분들이 한 구절씩 낭독하고 나누고 싶은 내용들을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이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총 6명의 시각장애인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신 분도 있으셨다.


그 중의 60대 중반에 김 기근님은 특히 중도실명자로 60세 이후에 갑자기 시각 장애가 생겨서 점자를 배우고자 점자도서관에 오신 이용자분이었다. 과천 서울대공원 수의사로 일하시다 퇴직한 분이셨는데 처음에 아내분과 같이 오셔서 프로그램을 상담하실 때 본인의 이야기를 들러주셨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잘 보이던 눈이 하루 아침에 보이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김 선생님 본인이 시각장애인이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신 적이 없다고 한다. 나같아도 그럴 것 같았다. 하루 아침에 멀쩡하게 잘 보이던 눈이 보이지 않으시니 자살도 하려고 했고, 삶의 의욕도 없으셨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분이 곁에서 용기를 주셨고, 이렇게 삶을 끝낼 수는 없다고 다시 마음을 바로잡고 시각장애인으로 제2의 삶을 제대로 잘 살기 위해 점자를 배우고 싶으셨다고 했다.


김 선생님은 그래서 항상 아내분이 함께 도서관에 같이 오셔서 프로그램에도 같이 참여하셨는데 아내분도 다른 시각장애인 분들의 삶을 들으니 시각장애인 대한 이해를 좀 더 깊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하셨다. 두 분은 항상 도서관에 오실 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들어오셨고, 김 선생님은 나에게 목소리가 참 예쁘다며 사서 선생님 덕분에 점자책도 읽고 녹음도서도 빌려 볼 수 있어서 감사하다며 인사도 늘 빠뜨리지 않으셨다.


김 선생님은 점자교육과 독서치료 프로그램 두 가지 강좌를 일주일에 한 번씩 수강하시면서 도서관을 방문하실 때 마다 맛있는 간식도 사오시곤 했다. 독서치료 프로그램 회원분들과 2017년 가을에는 김 선생님이 근무하셨던 과천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견학을 다녀올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셨다. 동물원 여기저기를 사육사분들이 가이드처럼 인솔해주시며 설명도 해주셨고,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호랑이, 코끼리 사육장 안에도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특혜를 주셨다.


함께 동행 하셨던 시각장애인 분들도 옆에서 도우미분들이 하나하나 동물에 대해 설명을 해드리면 그 설명만으로도 동물의 모습을 상상을 하시는 듯 했다. 중간 중간에 사육사분들에게 궁금한 질문도 하셨다. 동물원에서 김 선생님과 함께 근무하셨던 동료들도 선생님의 변화된 외적 모습에 놀라기도 하셨지만 밝고 긍정적인 선생님의 모습에 더 놀라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건강해 보이셔서 너무 마음이 놓인다고도 하셨다.


시각장애인분들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가을맞이 나들이로 동물원을 다녀온 시간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 제2의 삶을 살게 되신 김 선생님 덕분에 나도 시각장애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그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계약만료로 퇴사하기 전에 김 선생님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렸었는데 너무 아쉽다고 말하시며 “어디를 가든 이 선생님,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라는 따뜻한 말도 전해주셨다.


4년이 지난 지금 저도 선생님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네요. “김기근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점자책은 이제 거뜬하게 읽으실 수 있으신가요? 어디서든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소망합니다.” 점자도서관이 소속된 종합복지관에는 또한 성인 발달장애인들이 스스로 자립하여 살아갈 수 있도록 직업훈련 프로그램도 있었는데 바리스타로 양성하는 까페 훈련과 지역주민들이 기증한 재활용품들을 수거해서 제품을 판매하는 직업재활훈련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들도 있었다.


도서관에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직업훈련을 받는 발달장애인 유리씨는 단골손님이었다. 도서관 입구에서부터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인사부터 하고 들어오는 유리씨는 정신지체 장애로 겉모습은 성인이지만 정신연령은 5~6살 어린아이에 머문 수준이라고 담당 사회복지사 직원에게 전해 들었다.


유리씨는 서가에서 맘에 드는 책을 골라 도서관 제일 안쪽 열람석에 앉아 책을 읽다가 갑자기 크게 웃거나 혼잣말을 하고 꼭 일주일에 책을 두 권씩 대출해갔다. 처음에는 조용히 다가가 “유리씨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해주세요!” 했다가, 시간이 지나도 조용해지기는 커녕 더 큰 목소리로 책을 읽거나 웃음소리를 내서 솔직히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다른 이용자들도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이었기에 이해하고 넘어가는 이용자들도 있었지만 간혹 도서관에서 왜 이렇게 큰소리로 소음을 내냐고 불만을 토로하시는 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 씨를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유리씨가 직업훈련 수업 시간에 집중을 잘하지 못하고 쉬는 시간 중간에 도서관에 내려 오는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어느 순간 유리씨가 도서관에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기도 하고, 기다려지기도 했었다.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인건 분명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유리씨가 대출한 책들을 다 이해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책을 일주일에 한 번씩 적어도 본다는 것에 내심 놀래기도 했다. 4년이 지났으니 지금은 복지관 직업훈련을 마치고 사회에 한 발자국 내딛기에 성공했을지도 궁금하다.


도서관 단골고객님 유리씨! 지금도 어디선가 책을 읽고 큰 웃음소리로 웃고 있을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어디에서든 건강하고 행복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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