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I_사람_11. 보건교사 & 상담교사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면서 만난 귀한 인연 중에는 상담 선생님과 보건 선생님이다. 국제학교라고 했기에 나는 교직원 상당수가 싱가포르에 거주 중인 외국인 또는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예상과 다르게 보건 선생님은 한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싱가포르 한국국제학교에 취업 되어서 학교 근무 5년차인 30대 초반에 여자 선생님이었고, 상담 선생님 또한 한국의 병원에서 심리상담사로 근무하다가 학교에 취업 되어 이 학교 근무는 1년차에 접어든 나보다 한 살 많은 40대 초반여자 선생님이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2020년 2월 18일 오전 6시 15분에 도착했었는데 감사하게도 상담 선생님이 공항으로 직접 마중을 나오셨다. 손에는 직접 쓰신 플랜카드(000 선생님 환영합니다)를 들고 계셨다. 무언가 표현할 수 없지만 뭉클하고 감사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지만 묘하게 끌리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캐리어 두 개와 기내용 가방 두 개에 배낭까지 짊어지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선생님이 적지 않게 놀라신 모습이었다. 이 많은 짐을 들고 대만을 경유해서 싱가포르까지 왔다고 하니 더 놀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미련하게 굴었는지 모르겠지만 경비 절약하겠다고 비행기도 저가 비행기에 직항이 아닌 경유하는 비행편으로 직항으로 갔으면 5시간 반이면 도착 할 거리를 미련하게 9시간이 걸려서 도착했다. 새벽에 싱가포르에 도착한 내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마중 나와주신 상담 선생님은 공항 내에 스타벅스에서 컵과일과 따뜻한 라떼 한잔을 사주셨다. 상담 선생님도 나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셔서 택시를 타고 공항까지 나오신거라 더 죄송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학교 행정실 소속 직원이 한국에서 오게 되면 그 앞전에 새로온 직원이 공항으로 마중을 나가는게 국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보다 4개월 먼저 싱가포르에 입성한 상담선생님이 공항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에어비앤비 숙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서로 통성명을 하게 되었고, 신기하게도 우리 둘 다 영어 이름이 Clara (클라라)로 같았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도 미혼이시고, 불교를 믿다가 최근에 천주교로 개종하셨다고 하시며 몇달 전부터 새로 채용되는 사서 선생님은 꼭 비슷한 또래이고 싱글인 좋은 동료를 보내 달라고 기도를 하셨단다. 상담 선생님의 간절한 기도 응답으로 내가 싱가포르에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우리는 운명처럼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상담 선생님은 홈베이킹이 취미셔서 직접 만드신 크로와상, 마들린, 연어 샌드위치, 스콘 등 다양한 빵들을 구워서 아침마다 건내주셨고, 학교 업무로 힘들고 지칠 때는 위로의 말도 먼저 건내주셨다. 코로나가 창궐하여 갑자기 4월에는 재택 근무를 하게 되었을 때 먼저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챙겨주셨고, 너무 답답하면 잠깐 산책도 함께 하자고 먼저 제안해주셨다.
선생님과 함께 걸었던 집 근처 성당 산책길은 아직도 종종 생각이 난다. 그리고 함께 나누었던 대화들도... 종교적인 공통분모도 있었고 특히 상담 선생님은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엄마가 췌장암으로 하늘나라에 가셨기 때문에 이런 저런 동질감을 느끼는 점들이 많았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싱글인 점도 공감대가 형성되는데 큰 요소였다.
싱가포르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귀국 하는 날에도 상담 선생님이 마지막까지 공항에서 배웅을 해주셨다. 기분이 많이 묘했었다. 처음 만난 사람도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사람도 상담 선생님이었기에.... 어디서든 선생님이 마음 편하게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자주는 연락하지 못해도 선생님에게 가끔 안부를 묻는 카카오톡을 남기기도 하고, 서로의 근황을 전하기도 한다. 올해 부활절 시즌에는 평소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책과 간식거리를 챙겨서 소포로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또 고마운 사람은 출근 첫 날 이런저런 학교생활과 업무에 관련된 팁을 준 보건 선생님이다. 도서관 업무 인수인계는 엑셀 파일 한장이 전부였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을 데어야 할 것만 같은 곳에서 잠시 멍 때리고 있을 때 초코파이와 레모나를 가져다주며 “선생님! 힘내세요~ 여기 좀 답이 없죠!“ 라는 멘트와 함께 이 학교에서 5년 동안 근무하면서 겪은 다이나믹한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놔줬다.
그렇게 나에게 먼저 다가와 준 보건 선생님 덕분에 아무 연고도 없는 싱가포르에서 조금이나마 내 속내를 터놓고 지낼 수 있는 동료를 만나게 되었다. 보건 선생님은 한국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5년 전에 학교 보건교사로 채용이 되어서 싱가포르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행정실의 전산 담당 직원분과 2019년 연말에 싱가포르에서 결혼을 하고, 2022년 5월에는 아들을 출산하기 위해 잠시 한국 친정집에서 출산휴가를 보내고 다시 싱가포르로 돌아갔다.
2년이 지났지만 두 분의 선생님들과 안부를 물으며 지내고 있다. 어디에서든 두 분이 건강하게 행복하게 지내길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