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끝나려고 해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15 (오카방코 델타)

by Nell Kid
조금씩 정리가 되는 듯한 이 느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삼각주를 방문한 느낌은, 졸립다, 였다. 나처럼 과학 문외한인 사람에게는 삼각주나 삼각지나 거기서 거기이다. 오카방코 델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내륙 삼각주라고 한다. 그러든지. 이게 만약에 '꽃보다' 시리즈 같은 프로그램이었다면, 훌륭한 배경음악이 나오고, 헬리캠에서 바라본 지형이 촤악, 하고 펼쳐졌을 텐데, 그런 건 없었다. 그랬다면, 조금은 더 감동을 받았을 수도. 사실 전 날에 비행기를 타고 여기 지형을 훑는 액티비티가 있기도 했다. 문제는 그게 십 만원이 넘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에나. 별로 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가격을 보니 남아있던 미련마저 사라졌다. 그리고 원래,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게 뭐가 됐든 다 멋지고 예뻐 보인다. 한국을 출발하여 일본까지 가는 비행기도, 이륙하는 순간에 내려다보는 인천과 영종도는 얼마나 홀가분하고 아름다운가. 그러니, 굳이 이 비행기를 타 봤자 별 게 없을 거야, 라는 마음에 그냥 쇼핑몰에 눌러 앉아 있었고, 삼각주의 전반적인 모습은 모르는 채 오카방코 델타로 출발했다. 텐트를 정리하고, 가져갈 짐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트럭은 캠핑 사이트를 떠났다. 텐트를 접는 데에 이제 정말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약간의 돌발 변수가 있었다. 텐트 폴 하나가 튀어 날아가버린 것이다. 그리 멀리 날아가지 않아 바로 찾을 수 있었지만, 만약 이걸 잃어버렸다면, 이란 생각에 괜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20170601_131044.jpg 2박 3일 동안 가이드들과의 작별. 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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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_131509.jpg 4x4 차량에서의 우리들의 신발

300km 정도를 달려, 4x4차량으로 옮겨탈 장소에 도착했다. 그 곳에서는 우선 점심을 먹었다. 소시지를 두 개나 끼워 넣은 핫도그를 만들었다. 그 위에 잔뜩 핫소스를 뿌렸다. 이 핫소스가 요즘 내게는 꽤나 소소한 재미다. 요리란, 원래 멀리서 보면 이 보다 쉬워 보일 수 없다. 뚝딱뚝딱 20인 분을 해내는 쉐프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이 정도 간단한 점심 정도는 충분히 만들어먹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착각도 하는 중이다. 물론 안 하 겠지. 남이 차려준 걸 먹는 거면 몰라도, 내 먹을 것을 스스로 차려 먹는 성격은 절대 못 된다. 차라리 굶고 말지. 그래서 이렇게 삼시 세끼를 다 먹고 있는 여행이 조금 낯설기는 하다. 아프리카에 와서 살이 빠질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순례길에서도 별로 안 빠졌으니, 여행에서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계획은 명백한 실패다. 아프리카 캠핑 여행에서 매일 밤마다 아주 맛있는 고기를 먹을 수 있으리라 누가 상상조차 했겠는가. 그나마 순례길에서는 몸이라도 많이 움직였으니 칼로리 소모가 있었는데, 여기서는 뭣도 없이 그저 트럭에만 앉아 살고 있고, 그래서 살이 빠질래야 빠질 수가 없다. 여행이 끝나면 누구보다 슬림한 사람이 되어 매력을 어필하겠다는 계획은 아마도 글러 먹은 듯하다. 핫도그를 다 먹을 때 즈음에, 우리를 데리러 4x4 차량이 도착했다. 어쩐지 롯데월드의 놀이기구가 떠올랐다. 롯데월드, 여기도 안 간 지 참 오래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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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_133137.jpg 캠프 사이트로 가는 길
20170601_141201_001.jpg 체크인을 하고 있는 일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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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_155621.jpg 오후의 '자연 산책(Nature W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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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_160514 (1).jpg 오늘의 캠핑 사이트

수륙 양형 차량도 아닌 것이, 물에서도 잘 다녔다. 이래서 일반 트럭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었구나, 라는 걸 느꼈다. 도착하니, 세상에, 아주 럭셔리한 광경이 펼쳐졌다. 텐트가 눈 앞에 쳐져 있었던 것이다. 남이 쳐주는 텐트라니. 역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남이 구운 고기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잠자라는 남이 마련해 준 잠자리다. 안에는 심지어 간이 침대까지 있었다. 뜻밖의 횡재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삼각주 주변으로 산책을 함께 나섰다. 이건 조금 지루했다. 외국에 나와 있는 시간이 너무 오래된 게 아닌가 싶었다. 아무런 이국적임을 느끼지 못 한 채, 다시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저게 바오밥 나무고, 또 저건 무슨 새야, 따위의 설명을 들었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패키지 여행의 안 좋은 점이 이런 것이다. 이게 자유여행이었다면, 이런 ‘자연 산책(Nature Walk가 이 액티비티의 정식 명칭이었다)’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겠지. 조금 쉰 다음에, 보트를 타고 크루즈를 나섰다. 뭐 크루즈라고 하여 별 게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금강 정도에서 할 수 있는 유람이었다. 다만, 삼각주의 물이 정말 맑았고, 갈대숲과 어우러진 석양도 아주 멋졌다. 갈대숲 근처에서 유람선을 탄 건 이번 여행 중 두 번 째였다. 처음은 영국의 카디프 만에서였다. 그 때가 1월이었고, 당시의 나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아프리카의 오카방코 델타에서 역시 갈대밭을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지는 못 했다. 오카방코 델타가 어디 붙어 있는 지도 제대로 모르던 시절이었다. 작가 허지웅은,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네요’든가, 이와 비슷한 말을 좋아한다고 한다. 난 별로 이 말이 좋진 않다만, 나의 호불호를 떠나 맞는 말이기는 하다. 정말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다. 내가 아프리카의 오카방코 델타에서 배를 타 보기도 하고, 멋진 갈대숲과 석양, 그리고 중간중간 악어들까지 보게 되었으니.

18920175_10208979386232922_4592359632663614166_n.jpg 캠프 사이트의 해질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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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_175425(0).jpg 일몰 크루즈

간단한 크루즈가 끝나고는 저녁 식사가 있었고, 식사와 함께 맥주 두 캔을 간단히 마셨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 어디든 마음껏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도 끝이 나고 있음이 퍽 슬펐다. 귀국하면, 이런 파라다이스는 다신 없겠지. 하지만, 내일 역시도 이 곳에 머물 것이기에, 아침에 일어나 텐트를 걷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조금 행복했다. 아니, 정말 많이 행복했다. 텐트를 펼치는 것 보다, 찌뿌둥하게 일어난 아침에 이를 걷는 게 몇 배는 더 힘들다. 보통의 캠핑 사이트들에는 텐트 지역과 방갈로가 있다. 가끔은 텐트를 펼치고 또 그걸 접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방갈로 ‘주민’들이 조금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젊은 나이가 아니면 언제 또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기도 하다. 대학에 합격했을 때,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빚을 내든지 뭘 하든지 무조건 해외 여행을 떠나라고, 이 때가 아니면 나중에는 정말 시간이 없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씩 알 것 같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 만큼의 시간을 다시 인생에서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 여행이 끝나간다니, 지금보다도 더 여행의 막판이 되면 훨씬 더 감당하기 어려운 허무함과 아쉬움이 몰려올 것 같다. 그러기 전에, 오늘은 자야지. 누군가가 만들어준 이 소중한 텐트 안에서. 아, 그 전에 맥주만 한 잔 더 마시고.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이언의 ‘세상이 끝나려고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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