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16 (오카방코 델타)
슬럼프 탈출의 기미가 보인다!
오카방코 델타에서의 두 번 째 날이었고, 하지만 나는 내내 졸렸다. 텐트를 접지 않아도 되는 날이었기도 했고, 그래서 너무 마음을 놓고 잔 모양이었다. 어, 어, 어, 하다가 그냥 하루가 다 지나가버린 것 같다. 아침 식사도 걸렀다. 그냥 침대에서 쉬다가, 아주 뒤늦게 커피만 한 잔 마셨다. 오전에는 어제 오후 탔던 배를 타고, 삼각주 중간의 섬으로 향해,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갈대숲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는 일정이 있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너무 피곤했다. 그 동안의 피로가 왕창 누적됐다가 오늘 터져버린 느낌이기도 했다. 내가 탔던 배를 몰았던 사람이 무척이나 숙련된 장인이었나 보다. 이 작은 배를 모는 게 무척이나 힘든 일이란다. 균형 잡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고. 그가 운전하는 배는, 운송 수단이 아니라 과학이었다. 잠이 정말 잘 왔다. 물 위를 다니고 있음에도, 흔들리지 않는 승차감을 자랑했고, 아주 편안히 숙면을 취했다. 중간중간 깼을 때는 사진을 몇 장 찍기도 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기에 참 다행이었다. 덕분에 팅팅 부운 눈이 찍히지는 않았을 테다. 운이 좋다면 하마나 악어를 볼 수도 있다고 하던데, 내가 운이 없었던 건지 하마는 못 봤다. 악어는 희미하게만 보였다. 신기하긴 했으나, 에토샤 국립공원에서 동물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현실감은 생생히 들지 않았다.
내려서는 섬을 한 바퀴 돌았다. 이게 뭐고, 또 저건 뭐라는 설명을 들었는데, 또 마찬가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는 흘렸다. 모르겠다. 이건 그냥 내 취향 문제인 것 같다. 여기에 어떤 생물이 살고 있고, 또 이게 어떤 나무이고, 하는 것들이 내게는 큰 공명을 울리지 못 한다. 그냥, 아, 저런 게 세상에도 있구나, 정도다. 어쩌면 이래서 내가 과학을 싫어하는 지도 모른다. 단순히 저런 게 있다는 것 정도만 알면 될 걸, 굳이 파고 들어 공부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무식한 소리 같겠고, 실제로 내가 과학에 대해서는 아주 무식한 게 사실이지만, 그 오랜 학창시절 내내 과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단 한 번 도 동기부여 된 적 없었다. 캠프 사이트에서부터 준비해 온 점심을 먹을 때가 이 섬에서의 유일하게 재밌었던 순간이었다. 패키지 투어가 아니었다면, 이란 상상을 오늘따라 조금 많이 했던 것 같다. 실제로 우리 일행들 중에서도 패키지 여행이 싫다며, 자기들끼리 차를 새로 렌트하여 투어를 박차고 단독 여행을 떠난 한 커플이 있기도 하다. 지난 번의 힘바 부족 방문이나, 아니면 오늘의 일정이나, 글쎄, 내가 혼자서 여행했다면 과연 여기까지 와서 이런 액티비티들을 할 생각을 했었을까, 싶은 것들이기도 했다. 역설적으로는, 자유 여행의 매력을 조금 더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은 역설적인 소리지만, 캠핑이 고맙기도 하다. 캠핑이 아니었다면, 아프리카에서의 날들은 정말 틀에 박힌 패키지 여행으로 끝날 수도 있었다. 다행히 테트를 혼자 치고, 또 그걸 다음 날 아침에 걷어 내는 작업을 통하여, 이 여행이 조금이나마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물론 아프리카를 이렇게 횡단 가깝기 하기 위해서는, 내겐 별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다. 운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 곳의 대중 교통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는 것 역시도 아니다. 원래 사람이 앉으면 눕고 싶은 법이다. 홀로 모든 걸 결정해야 했던 지난 여행을 생각해보면, 패지키 여행이라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편한 순간들도 아주 많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 이렇게 마음 놓고 잘 수 있는 것도 여기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젊은 날에 이 두 여행을 모두 경험해볼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는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그것도 아주 큰 축복이자 기회. 별 일이 없는 이상, 물론 이 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가끔씩은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는 날이 앞으로의 내 인생에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이 때의 여행들을 비교하며 내가 적합한 여행 방식을 선택하면 되겠지. 경험해 본 선택지가 많이 있다는 건 분명 엄청난 자산이 될 것이다.
사실 요즘은 조금 여행의 슬럼프였기도 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텐트에서 보낸 불면의 밤들이 피로 누적으로 이어졌던 모양이었다. 꽤 많이 지치기도 했던 게 사실이고. 지칠 만도 하다. 벌써 6개월을 향하고 있으니. 그래도, 아프리카 여행의 절반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고, 그 날 빅토리아 폭포에서는 다행히도 호텔에서 잘 수 있다. 충분한 휴식을 그 때 취해야지. 장기 여행도 정말 쉬운 게 아니다. 여행을 했던 일 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쨌든 확실히 꽤 많은 시간 동안의 휴식은 한국에서 취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그리운 것들을 잔뜩 하면서. 밤에 산책도 하고, 교보문고도 가고, 하릴 없이 카페에서 실컷 책도 읽어보고. 그러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이 여행의 기억이 어떨지, 나는 이 여행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게 될 지, 주인공인 나 조차도 조금은 궁금하다. 다소간의 부침은 있었어도 그저 멋진 추억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넬의 ‘기억의 걷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