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도록 경이로운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19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by Nell Kid
여행의 권태도 씻겨버리고

아프리카 트럭킹의 변곡점이 될 '빅토리아 폭포'로 마침내 향하는 날이었다. 떨리고, 설렜으며, 조금 있으면 보게 될 자연의 경이를 상상하며 종일 긴장됐다, 라고 한다면 좋았겠지만, 오늘은 새벽부터 게임 드라이브 일정이 있어서 무척이나 분주하고 바쁜 하루였다. 쵸베 국립공원(Chobe National Park)에서의 새벽 게임 드라이브는 5시 반에 캠핑 사이트에서 출발했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채, 급한 생리적 문제만 적당히 해결하고 바로 4x4 차량에 올랐다. 새벽이라 무척이나 추웠다. 가끔씩 한국에 있는 지인들과 연락을 할 때 마다, 아프리카가 춥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여기도 지구다. 새벽에는 춥다. 겨울에는 더 춥다. 지금은, 초겨울의 아프리카다. 해가 뜨지 않아 세상은 그저 검은색이었고, 4x4 차량은 은하철도 999처럼 어둠을 헤치며 국립 공원으로 향했다. 차도 덜덜덜 떨리고, 나도 추위에 덜덜덜 떨었다. 어제 보트 크루즈에서 꽤 많은 동물들을 봤던 지라, 이들에 대한 욕구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거기다, 대부분의 일행들과는 다르게 나는 아프리카에서 20일을 더 있어야 하며, 그 중에서는 또 몇 번의 게임 드라이브도 포함돼 있다. 무슨 동물들이 여기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추위를 버텨내면서 굳이 봐야하나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이런 마음을 모르는지, 오늘따라 해가 더 늦게 뜨는 것 같았다. 속으로 아이유의 좋은 날을 개사해서 불렀다. 제목은 추운 날이다. '콧물이 차올라서 고갤 들어~, 흐르지 못 하게 또 푹 찡그려.'

20170605_054800.jpg 새벽에 출발한 우리의 차량

그렇게 추위에 떨면서 옆과 뒤의 사람들을 보니, 다들 담요 하나씩을 들고 있었다. 오, 역시, 나의 미비한 준비를 탓했다. 근데, 다만, 담요들이 다 똑같은 걸? 알고보니 내가 방석이라 생각하고 있던 게 담요였던 것이다. 이런 휴머니즘 없는 사람들. 말이라도 좀 해 주지. 그제야 담요를 썼고, 갑자기 세상 따뜻한 느낌을 받으며, 냐항, 하는 심정으로 게임 드라이브를 즐기기 시작했다. 사슴 종류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이젠 좀 배부른 소리를 하자면, 에토샤에서부터 너무 많이 봐서 얘넨 좀 질린다. 얼룩말들도 마찬가지고. 음, 나는 꼭 '수컷 사자'를 보고 싶었다. 수컷 사자란 내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어릴 적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팬이었고, 그 중 가장 좋아하는 이승엽 선수의 별명도 라이언킹이었으며, 그 때문인지 라이언킹 애니메이션을 보며 영어 공부를 했고, 영어 실력은 별로 늘지 않았다만 어쨌든 나는 스스로를 심바에게 감정이입 시키기도 했다. 어릴 적 나의 꿈은 삼성 라이온즈의 4번 타자가 되는 것이었다. 수컷 사자에는, 나의 귀엽고도 철 없던 유년시절의 꿈이 함축되어 있다. 사실 수컷 사자는 굉장히 게으른 동물이라고도 한다. 대부분의 사냥은 암사자들이 하고, 그 운동량의 차이 때문인지 죽는 것도 수컷 사자가 먼저란다. 음, 이건 좀 환상이 깨지는 소리인데. 생각해보면 라이언킹 애니메이션에서도 암사자들이 열심히 싸워댔던 것 같다. 보기보다 자연계 고증이 잘 되어 있는 애니메이션이었구나. 그럼 바라는 수밖에. 너무 게을러서, 우리 차량이 오는 지도 모르고 길가에 발라당 누워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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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_085349.jpg 오늘의 동물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수컷 사자를 보지 못했다. 다만 암사자는 보았다. 혹시 수컷사자를 만나거든, 부디 내 안부를 좀 전해주면서, 이 게을러터진 시키야, 라고 한 대 쥐어 박아달라고 부탁했다. 많은 동물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참 '평화로운' 상태라는 게, 게임 드라이브를 할 때 마다 가장 놀라운 점이다. 이런 동물의 왕국이라 하면, 으레 항상 피 튀기는 사냥과 추격전이 일어날 것만 같은데, 의외로 정말 적막하고도 소박한 일상을 살고 있는 동물들이다. 아프리카라는 대륙 뿐만 아니라,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에 대해 얼마나 많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 투어에서 여실히 느끼고 있는 중이다. 수컷 사자를 보지 못 했지만, 이런저런 다른 동물들이 대신 또 충분히 재미있게 많이 나타나주었다. 이런저런 사슴 친구들을 비롯하여, 또 신기하게 생긴 새들, 버팔로, 멧돼지, 그리고 기린 등이 보였다. 특히 기린을 너무나도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마치 기린이 런웨이를 하는 듯한 고고한 자태로 걸어가고 있었다. 숨을 죽이고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예쁜 기린을 마지막으로, 나의 전반기 게임 드라이브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후반기에는 또 어떤 동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게임 드라이브의 매 순간들은 정말 믿기지 않은 시간들이었다. 동물들의 세계에 잠깐 발을 들여본 것이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동물원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최소한 이 국립공원에서는 인간이란 그리 대단한 존재가 못 되었다. 스스로를 영장류 최고라고 여기고 살 정도로 오만한 종인데, 우리 역시도 결국 거대한 자연의 미미한 일부에 불과했다.

20170605_094021.jpg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
20170605_094932.jpg 안녕 나의 스콜피온

게임 드라이브를 마치고는 다시 캠핑 사이트로 돌아왔다. 쉐프는 간단한 브런치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 사이 우리들을 텐트를 접었다. 나의 텐트 이름은 스콜피온이었다. 이 투어의 텐트들에는 사자, 아나콘다 등의 이름이 있는데, 스콜피온이란 이름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앞으로 20일 동안의 캠핑을 더 해야 하지만, 그 땐 트럭이 바뀔 것이고, 따라서 이 텐트도 더 이상은 사용하지 못 할 테다. 20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나의 불편한 낭만이 되어준 텐트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넸다.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은 호텔에서 잠을 잔다. 그저, 행복하다. 캠핑도 재미있다만, 너무 오래 하고 있는 것 같다. 너무 오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 이 만큼을 더 해야 한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마침내 짐바브웨로 향했다. 우리의 캠프 사이트에서 국경 지대는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짐바브웨에서는 비자를 발급받아야 하기에 국경 심사대에서 줄을 서서 꽤나 기다려야 했다. 나는 이후에도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를 계속할 예정이니, 짐바브웨와 잠비아를 묶은 '유니 비자'를 신청했다. 미화 50달러였다. 흥미로웠던 건, 미국, 캐나다, 영국 등의 국민들은 다른 나라 출신들과 내야할 비용이 상이했다는 점이다. 낮았으면 그들의 국적이 부러웠겠지만, 오히려 더 높은 금액을 내야 했다. 얼마였더라. 70에서 75달러 정도 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이 후에 잠비아를 가지 않는 일행들도 50달러짜리 유니 비자를 신청했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국경 심사대로 들어가, 여권을 제출하고 돈을 내는 식으로, 이 과정은 내가 맞게 한 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다행히 비자는 잘 나왔다. 처음 받아본 비자 스티커가 멋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린 그렇게, 이 전반기의 마지막 목적지 빅토리아 폭포로 향했다.

18835859_1983812788515370_2899934156282952392_n.jpg 입구 근처의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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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_144158.jpg 입구 근처

짐바브웨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이자, 역시 잠비아와의 국경 지대이기도 한 빅토리아 폭포. 폭포를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전에, 우린 액티비티 센터에 들러 내일의 액티비티들을 예약했다. 번지점프와 래프팅을 고민했으나, 번지점프는 가격이 너무 비쌌고, 래프팅의 경우 출발 시각이 지나치게 아침 일찍이었다. 겨우 얻은 침대에서의 휴식날인데, 마음 편히 늦잠을 자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 결국 아무것도 신청하지 않았다. 번지점프를 하려면 할 수 있겠으나, 이미 지난 번 스와코프문트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했던 관계로, 또 어딘가에서 뛰어 내리는 액티비티는 그렇게 끌리지 않았다. 예약 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이젠 정말 드디어, 빅토리아 폭포로 갔다. 가이드의 신용 카드에 조금 오류가 있어서 입장이 늦어지긴 했지만, 그 덕분에 입구 앞에서 깜찍하게 뛰어놀고 있는 원숭이들을 실컷 볼 수 있었다. 오늘은 꼭두새벽부터 일정이 있었으니, 다들 조금 지친 모양이었다. 우린 입구에 풀썩 주저앉아, 가이드의 카드가 제대로 긁히기를 기다렸다. 그때 조금 잡상인들이 찾아오기도 했다. 짐바브웨의 경우, 이 곳의 정치적인 상황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어마어마하게 심하다. 잡상인들이 주로 팔고 있던 것도 십 억(billion), 혹은 일 조(trillion) 짐바브웨 달러 지폐들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휴지 조각처럼 들고다니던 그들이었다. 전후 독일에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있었다고 어떤 역사책에서 본 듯도 했는데, 이 인플레이션의 현장을 실제로 목격하니 그저 무서울 뿐이었다. 저런 금액이 무가치하다는 소리니. 가이드는 며칠 전부터, 짐바브웨의 ATM에서는 현금이 없을 수도 있으니, 미리 돈을 뽑아 놓으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왜 그랬는지, 오늘에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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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_153831.jpg 빅토리아 폭포 -1. 감상하자.

마침내, 우린 빅토리아 폭포 공원 안으로 입장했다. 가이드는 어제부터 계속 물에 젖을 지도 모르니 단단히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방수가 안 되는 카메라는 되도록 들고 가지도 말라고. 폭포라고 하면, 나는 아주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갔던 온천에서 본 인공 폭포가 전부였다. 뭐 얼마나 젖겠어, 라는 마음이었다가, 우의가 없는 것도 아니라 일단 챙겨는 가보자 라는 마음에 우의를 들고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의가 없었다면 그야말로 물지옥이 펼쳐질 수도 있었었다. 빅토리아 폭포는, 정말 컸다. 무섭도록 경이롭고, 경이롭도록 무서웠다. 이 정도의 굉장한 규모의 자연을 살면서 본 적이 없어서, 지금도 딱히 뭐라 표현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 그렇게 쏟아지는 물이, 무서울 지경이었다. 아까의 게임 드라이브에서 인간은 자연계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여기서는 이 우주에서 인간은 먼지만도 못 하겠구나, 라는 실존적 두려움 비슷한 것도 느꼈다. 아, 굉장했다. 정말로, 그저, 굉장했다. 굉장했다는 말 이외에는 마땅히 그 벅참을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다. 그 규모에 완벽히 압도되었다. 여행을 하며, 결국 가장 경이로운 순간은 항상 자연에 있었던 듯 하다. 오늘은, 그 정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폭포를 보며, 나는 찬찬히 코스를 밟아 나갔다. 각각의 포인트들이 있었고, 1번부터 마지막까지 본 다음에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폭포의 중심부에 가까워질 수록, 더 많은 폭포비를 맞기 시작했다. 우비를 챙겨오기를 잘 했다 싶었다. 순례길에서도 단 두 번만 썼던 우의라, 괜히 가져왔나 싶었는데 여기서 본전을 다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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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_154919.jpg 빅토리아 폭포 - 2. 감상하자.

우의 자랑을 조금 더 하자면, 판초 기능까지 있는 우의였다. 그러니, 나는 무적이었다. 거기다가, 핸드폰도 방수가 되는 것이었다. 사실 이 핸드폰을 1년 넘게 사용하면서도 단 한 번도 방수 기능을 테스트해 본 적 없었다. 아무리 방수가 잘 된다고 광고를 해대도, 어쩐지 내 것 만큼은 안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야 했는데, 오, 끄떡 없었다. 이 세상의 기술력이란. 그러다보니, 어쩌다 내가 가장 많이 준비된 사람이 되었다. 두려울 게 없었다. 폭포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포인트에도 무려 두 번을 다녀갔다. 거기서 마음껏 비를 맞았다. 정말 미친 놈처럼 비를 맞았고, 정말 그 순간이 짜릿했고 신났다. 막 방방 뛰어다니기도 했다. 넬의 'Day after day'라는 노래 구절 중, '물론 다 흠뻑 젖을 테지만, 그러면 어때 I'll dance in the rain'이란 가사가 있다. 이 노래를 떠올리며, 춤도 무용도 아닌 괴랄한 몸짓을 해대고 다녔다. 사실 요 며칠, 특히 오카방코 델타 이 후로는 여행의 피로가 너무 커서 조금의 권태까지도 느끼고 있었다. 집을 떠나온 지 거의 6개월이 다 되어 간다. 그나마도 3월 말 부터는 순례길과 아프리카 트럭킹 캠핑 투어를 연이어 하고 있어, 체력이 무척이나 저하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겠다. 몸이 힘드니, 자연스레 이 전보다 여행을 확실히 덜 즐기게 되었다. 오늘의 폭포비는, 그 모든 권태를 씻어주기에 충분했다. 비를 잔뜩 맞아서, 옷 어디든 빗물이 묻어있지만, 그저 행복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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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_161132.jpg 빅토리아 폭포 - 3. 또 감상하자.

집합 시각 직전까지 폭포비를 맞으며 빅토리아 폭포를 즐겼다. 선명한 무지개도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요즘의 아프리카가 우기라서, 수량이 건기보다는 더 많고, 따라서 더욱 무섭도록 콸콸 쏟아지는 물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참 행운이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런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의 자연은 보기 힘들겠지. 그저 엄청나게 대단한 순간이었다. 폭포비를 그렇게 맞아대며 온 몸이 다 젖었음에도, 이 자연 안에 내가 있었다는 게 믿기 힘들만큼, 그런 굉장한 장관이었다. 모두가 흠뻑 젖었지만, 그럼에도 다들 표정을 밝아보였다. 젖은 신발과 옷 때문에 숙소까지 이동하는 트럭에서는 수상한 냄새들이 여기저기서 풍겼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숙소까지의 이 운행이, 다름아닌 이 멤버들로서의 마지막 트럭킹이었다. 마지막 기념 촬영을 같이 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 다들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만 빼면, 함께 트럭킹과 캠핑 여행을 하기 참 재미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우린 각자의 방을 배정받았다. 너무 젖어버린 옷을 어떻게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리셉션이 물어보니, 킬로그램 당 얼마 식으로 빨래 서비스가 있다고도 한다. 이 김에 밀린 빨래를 다 해야지. 아, 그냥 좋다. 최근에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짜증과 권태가 꽤 심한 수준이기도 했는데, 오늘 폭포비를 맞으며 모두 씻겨나가고 또 새로운 자극을 얻은 기분이었다. 맞아, 새로운 자극. 뭔가 이런 게 필요했었다. 굉장한 스케일의 자연은, 자극 이상의 통쾌함과 시원함을 선사해주었다. 그렇게 콸콸 떨어지는 물처럼, 내 삶도 그렇게 굳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폭포 앞에서는 못 하고 이제야 조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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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5_171320.jpg 빅토리아 폭포 - 4. 마지막으로 역시 감상하자.

오늘은 일행들 중 한 명의 생일이다. 마침 또 전반기를 마감하는 이 날에 생일을 맞다니. 얘들이 아무리 일찍 자도, 이런 날에는 오래도록 술을 마시겠지. 재미있는 저녁이 될 것 같다. 함께하는 마지막 저녁이기도 할 테고. 아, 폭포의 여운이 아직 잊히지 않는다. 아니, 잊고싶지 않다. 그 촉감, 그 시원함, 그 물의 맛, 그 소리, 모두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억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러니 부디, 다른 중요한 몇 개를 잊어도 이것만은 평생토록 지켜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의 권태가 찾아올 때마다, 이 날을 떠올리며 다소간의 후련함을 느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넬의 'Ocean of Ligh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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