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해보자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21 (잠비아 입국)

by Nell Kid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

후반전이 시작됐다. 새로운 멤버, 또 새로운 크루와 함께하게 되었다. 지난 가이드에 따르면, 저번 20일 간의 여행은 ‘럭셔리’한 축에 속했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진짜 아프리카가 시작할 것이라고. 케이프타운에서 빅토리아 폭포까지의 구간은 이 회사 상품들 중 가장 유명한 코스다. 고객이 너무 많아, 캠핑 여행과 숙소 여행이 분리돼서 이동할 정도다. 하지만 아프리카 동쪽을 여행하는 이번 코스의 인기는 이전만큼 높지 않고, 따라서 같은 트럭 안에 숙소 멤버와 캠핑 멤버가 혼재되어 있다. 아침 6시에 출발하는 일정이어서, 무척이나 일찍 일어나야 했다. 침대의 안락함에서 벗어나는 게 퍽 슬프기도 했다. 이제 또 텐트구나. 그래도 이에 대해 별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 게 다행이다. ‘노마드’란 단어의 낭만에 속아, 41일 동안 억지로 개 고생을 하면 어떨까 싶었는데, 나름대로 이 불편한 날들이 마음에 든다. 이건 아마, 이틀 동안 잘 쉬어서 드는 착각일 수도 있겠지. 6시에 출발이라고 하여 기껏 일어났더니, 사람들이 다 모이지 않아 한 시간 가량 더 기다려야 했다. 아니, 이럴거면 더 잤지. 내가 어떻게 침대와 헤어졌는데. 당신들, 나와 침대를 이런 식으로 결별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어. 다른 멤버, 다른 크루였지만, 신기하게도 트럭은 이 전 것과 같았다. 우리 트럭의 이름은 암스트롱. 케이프타운에서부터 함께한 이 친구와 다시 동행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20170607_073434.jpg 국경 지대를 통과할 때의 빅토리아 폭포

간단한 브리핑을 듣고, 국경으로 바로 향했다. 짐바브웨는 빅토리아 폭포를 경계로 두고 잠비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그래서 출발한지 10분도 안 되어 국경에 도착했다. 지금 내가 어떤 국가에 있는지를 상기하게 될 때마다, 굉장한 비현실감에 휩싸이곤 한다. 이건 나미비아 때부터 그랬는데, 그 이후 보츠나와, 짐바브웨, 이젠 하다하다 ‘잠비아’라니.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정말 가끔씩 세계 지도를 보며 미래의 날들을 상상할 때도, 이런 나라들에 올 수 있으리라 고민한 적 조차 없었다. 며칠 전 짐바브웨에 입국할 때 잠비아에도 허용되는 유니 비자를 신청했던 지라, 별 어려움 없이 두 국경을 모두 통과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서는 국경을 넘는 즐거움이 꽤나 소소하다. 출국과 입국할 때 도장이 두 개 씩 여권에 찍히기 때문이다. 영국과 유럽을 통틀어 네 달을 넘게 있어도 그렇게 많은 도장을 받지는 않았는데, 여기서는 금방금방 여권에 새로운 친구들이 쌓이고 있다. 그래서 괜히 여권을 볼 때 마다 어쩐지 정말 '노마드'한 여행자가 된 것만 같아 내심 뿌듯하다. 물론, 여행 기간이 6개월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 내가 정말 여행자가 아니면 또 누가 진짜 여행자일까 싶기도 하다만. 짐바브웨는, 화폐의 관점에서는 ‘제 정신이 아닌’ 나라였다.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너무 심각해 10억이나 1조 짜리 화폐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따라서 짐바브웨의 ATM에서는 현금을 뽑을 수 없었고, 오늘 잠비아에 도착해서 돈을 뽑고 달러로 환전했다. 수중에 넉넉한 현금이 있으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비자 비용 걱정도 이렇게 한 숨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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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7_143152(0) (1).jpg 잠비아의 어떤 마을

후반전의 처음은 오로지 달리는 것 뿐이었다. 오늘도 달렸고, 내일도 달려야 한다. 별 다른 액티비티도 없다. 잠비아가 생각보다는 큰 나라다. 말라위 국경 지대의 사우스 루앙가 공원까지 내내 달린 후, 거기서 이틀을 보내며 동물들을 구경하게 된다. 에토샤 국립 공원도 참 경이로웠는데, 여기서는 코뿔소를 제외한 다른 동물들을 볼 수 있는 빈도가 더 높다고 한다. 사실 동물들이 너무 자주 보이다 보면, 조금 감흥이 덜 한 감도 있다. 재수 없고 배부른 소리지만 그렇다. 그래서 에토샤 국립공원에서의 후반부에는 차 옆에 동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니는 데도 불구하고 조금은 졸립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에토샤보다도 더 많은 동물들이 나타나는 공원이라면, 또 어떤 감흥이 들지 모르지. 오늘 출발하기 전, 빅토리아 폭포의 숙소에서 사진들을 정리하다, 어쩌다 보니 유럽에서의 사진들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었다. 그 때도 아마 비슷한 광경들이 연달아 펼쳐지는 것에 조금은 질리고, 또 평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지금 보니 참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그건 아마도, 아프리카에서의 이 날들도 언젠가는 또 반드시 아름다운 날들로 기억되는 순간이 올 거란 소리겠지. 매일 텐트를 치고, 동물들이 주위에 있고, 이런 모든 모습들. 현실을 살고 있다 보면, 누리고 있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지하기 무척 어렵게 된다. 지금은 이 아프리카가 나의 현실이기에, 그 찬란함을 온전히 느끼지는 못 하고 있는 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참 아름답고 멋진 기억이 될 건 분명해 보인다. 지난 여행들이 그랬듯이. 여행을 하며 경험치가 쌓이고, 이런 귀납적 추론 능력을 가지게 된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귀국을 해서도 일상을 곧바로 지속하지는 않을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조금은, 하나 둘 떠오르는 감정들을 찬찬히 복기하고 떠올릴 시간이 필요하다.

20170607_144719.jpg 표지판.

별 것은 없었던 후반전의 첫 날이었지만, 조금 더 미지의 세계로 간다는 두근거림은 가득했다. 그래서, 오늘의, 그리고 후반전의 첫 플레이리스트는, 김동률의 '다시 시작해보자'다. 이렇게 우리의 트럭은, 또 하루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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