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없는 길을 달려서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22 (잠비아)

by Nell Kid
달리고 달리고 또 달려서

역시, 또 달렸다. 이틀 연속 트럭에서 달리기만 하는 일정은, 아무리 이 투어의 이름이 ‘노마드’라지만 지겨울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짐바브웨와 맞대고 있는 국경 지대의 빅토리아 폭포와, 역시 말라위와의 국경 지대 근처의 사우스 루앙가 공원을 제외하고는 잠비아에서 할 게 어지간히도 없는 모양이었다. 운전을 하는 가이드야 얼마나 피곤할까 싶기도 하지만, 좁은 트럭에서 내내 앉아 있어야 하는 우리도 꽤나 지쳤다.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럼에도 캠핑 사이트에 도착할 때 까지 몇 번 정도는 그냥 열심히 자기도 했다. 순례길에서는 걸음을 걷기라도 했지, 트럭킹 여행에서는 몸 쓸 일이 거의 없으니 조금 출출하기는 해도 군것질은 가급적 안 하는 편이었다. 여기서도 무러 먹었다가는 살이 주체할 수 없이 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도무지 할 게 없어서, 과자를 뜯어 먹었다. 책이라도 몇 권 챙길걸, 하는 후회가 조금 들었다. 그리 무겁지도 않은 책들이었는데, 그걸 다 한국으로 보내 버렸으니. 그래도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다. 순례길을 걸어야 했고, 자연스레 최선을 다 하여 짐을 줄이는 게 급선무였으니.

20170608_080149 (1).jpg 창 밖의 풍경
20170608_081201.jpg 중간에 잠깐 들린 대형 마트

장기 여행의 고단함을 요새 부쩍 많이 느끼고 있다. 한 여행이 끝나고 또 다음 바로 여행을 이어가며, 몇몇 준비물들이 어쩔 수 없이 누락됐다. 겨울에 시작한 여행이었던 지라 충분한 반팔, 혹은 얇은 옷을 준비하지 못 했고, 그나마 준비했던 것들도 순례길을 시작하며 모두 한국으로 돌려보냈다. 생각해보니 수영복도 아직 없구나. 인터넷 조차 제대로 안 되는 이 환경에서는 책이라도 있어야 했는데, 또 그때는 이 날들을 생각할 겨를 따위란 없었다. 귀국 날짜가 확정되고, 점점 집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되는 것을 보니, 여행을 오래 하기는 오래 했구나 싶기도 하다. 오래 했지 그럼. 이제 6개월을 향해 가는데. 지금 상태로는, 귀국하고 첫 일주일 동안은 오직 잠만 잘 것 같다. 훌륭한 침대에서, 쾌적환 화장실을 누리며. 어느 시점이 넘어가며,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일상이 되었고, 모든 일상이 그렇듯 이것 역시도 다소간의 피로를 유발하고 있다. 물론 언젠가는 분명 이 극심한 피로를 절실하게 그리워하게 될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그때 일이고. 굳이 어딘가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당분간은 살아야 겠다. 그래서, 학교로도 복학하지 않아야지. 그것도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이니. 지하철 2호선은 여기서 생각해도 그저 무서울 뿐이다.

20170608_195211 (1).jpg 조촐한 로컬 바

저녁을 먹고는, 여행 멤버들끼리 맥주를 한 잔 하러 바에 갔다. 늘 가는 바이기에 별로 특별할 게 없을 것 같았지만, 오늘의 바는 ‘로컬 바’, 즉 캠핑 사이트에 있는 바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이용하는 바였다. 바, 라고 하기에도 정말 단촐했다. 하지만 무척 신기하고도, 또 조금은 무서웠기도 했다. 손님들이 우리에게 서스럼 없이 다가와서 말을 걸고, 악수를 청했다. 당연히 긴장한 채로 그들의 인사에 화답했으나, 또 생각해보면 너무 많은 겁을 지레 먹고 있었던 건 또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는 전혀 미지의 세계고, 또 미지의 대륙이니까. 모르는 모든 것들은 두렵게 다가올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빅토리아 폭포의 숙소에서 와이파이가 됐고, 그 때 아프리카를 여행했던 다른 이들의 여행기를 조금 읽어 보기도 했다. 내가 갔던 곳들을 자유 여행했던 사람들을 보면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나도 자유 여행 예찬론자고, 거의 모든 여행을 자유 여행으로 다니고자 하는 사람이지만, 지금의 이 코스를 혼자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면허가 없으니까, 운전을 할 수 있었다면 혹시 모르지, 하고 변명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는 대중교통으로 에티오피아와 케냐 등지를 여행했던 사람도 있었다. 존경합니다,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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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8_145341(0).jpg 지역 마켓 부근

루앙가 공원으로 가는 길에, 우린 잠시 차를 세워 지역 마켓을 구경하기도 했다. 생선 건어물들을 비롯해 이런저런 것들을 판매하는 중이었는데, 지난 번 힘바 부족을 방문할 때도 그랬지만, 어쩐지 이들의 열악한 실상을 확인하는 게 마냥 즐겁지는 않다. 오늘 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맥주값이 아주 쌌고, 우린 개인당 한 두 병씩 주문했는데, 그게 그들에게는 무척 큰 돈이었는지, 굉장한 친절과 호의를 베풀어주기도 했다. 전혀 다른 세상, 다른 환경, 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들을 볼 때 마다, 신기하고 즐겁기보다는 우선 조금은 착잡한 마음이 먼저 들고, 그 후에는 역시 복잡한 생각들이 자리한다. 그런 순간에도, 역시 다음 목적지로 어서 이동하는 ‘노마드’ 투어라, 더 깊이 고민할 겨를이 없다는 게 또 의외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겠고. 하루의 고민과 기쁨을 모두 길 위에 흐트리고, 우린 다시 길을 달린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새봄의 ‘당신이 두고간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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