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33 (잔지바르)
부디 이 여행의 기억이 영원한 따스함과 찬란함으로 남기를
너무 아름다운 꿈을 꾸어서 울었다는 영화 대사가 있다. 7개월의 시간은 분명 긴 시간이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또 '잠깐'에 해당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그럼 아주 나중에는, 지금 여행이 마치 아름다운 꿈처럼 느껴져, 한 방울 눈물을 흘리기도 하려나. 모르겠다. 오늘 선셋 크루즈에서 이런 생각이 잠시 나를 스쳤다. 나는 세렝게티를 가지 않기에, 내일 있을 잔지바르 시내와 향신료 투어를 마무리하면 아프리카에서의 일정은 대략 거의 마무리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리고 나는 네팔로 향할 것이며, 거기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포카라의 호숫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지난 여행을 복기할 계획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는 이번 선셋 크루즈가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액티비티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나씩 '마지막'이 붙는 걸 보면서, 괜한 애틋함이 듦과 동시에 시원함과 아쉬움이 함께 찾아왔다. 어느 정도는 여행을 어서 마치고 익숙한 한국에서 쉬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이 여행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그런 굉장히 양가적인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오늘의 선셋 크루즈에서 해가 지는 걸 보며, 나의 여행도 이렇게 저물고 있다는 걸 실감했고, 그 때문에 마음이 조금 동했다.
선셋 크루즈를 하기 전까지는 아무 일정이 없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스노클링을 하고 왔지만, 나는 어릴 적 몇 번의 사교육에도 불구하고 끝내 수영을 제대로 하지는 못 하고, 따라서 이렇게 아름다운 바닷물이 바로 옆에 있음에도 할 수 있는 액티비티가 거의 없었다. 말라위 호수에서는 트래킹이라도 했지, 여기서는 산도 없으니 그냥 푹 쉬었다. 침대에서 오랜만에 늦잠을 잤고, 점심 식사에 맥주를 곁들여 마신 뒤 역시 또 잠을 청했다. 몸이 어지간히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고, 이렇게 잠을 자서야 깨닫게 되었다. 어제 우천 상황때문에 미루게 된 선셋 크루즈를 하기 위해 우리는 집결지에 모였다. 우리의 가이드들은 술을 마시며 잘 다녀오라고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확실히, 전반기의 가이드들보다 후반기의 가이드들이 하는 일이 조금 더 없기는 하다. 물론 신경 쓸 것들이 더 많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우리와 함께 호흡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선셋 크루즈는, 어제 봤던 돛단배 위에서 이루어졌다. 돛단배를 타기 위해서는 바닷물을 어느 정도 거닐어야 했는데, 청바지를 입고 있던 관계로 바지가 다 젖어버리고 말았다. 이래서 수영복을 하나 가져왔어야 했는데. 빨래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도 없는데, 큰 일이다.
우기의 아프리카이기에, 비는 어제도 왔고 오늘도 내렸으며, 우리가 크루즈를 시작했을 때에도 비가 내렸다. 돛단배의 2층에 올라갔다가, 괜히 비만 홀딱 맞았다. 하지만 빅토리아 폭포에서도 그랬지만, 가끔씩 맞는 비는 굉장히 상쾌하고 산뜻하다. 다행히도 비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비가 그치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마침내 돛이 내려졌다. 내 기억상으로는, 내 생에 최초로 타는 돛단배였다. 어릴 적에 종이 접기로 만들기는 가장 만만했던 게 바로 이 돛단배인데, 정작 이 배에 탑승했던 기억은 별로 없다. 돛을 내리는 선원의 근육에서 굉장한 생활력을 느꼈다. 언젠가, 인간의 몸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그렇게 자신의 일에 몰입할 때 생기는 근육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해가 지려고 할 때 즈음, 우린 각자가 주문했던 음료를 하나씩 들고 건배를 했다. 선원들은 전통 악기로 흥을 띄웠다. 아름다웠다. 붙잡고 싶은 순간이었다. 서서히, 그리고 또 천천히 해가 지는 걸 보면서 황금빛 노을을 감상하는 건 분명 축복같은 경험이었다. 아프리카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행 전체를 통틀어도 마지막에 해당할 이 일몰 감상이 상당히 멋지고 아름다운 경험으로 남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생각해보면 이번 여행에서 기대치가 박살나거나 좌절했던 적은 없었다. 여행을 떠나 온 것도 행운이지만, 여행 중에서도 충분한 행운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선셋 크루즈가 끝나고는, 우리 멤버들은 옆 리조트의 루프탑 바로 올라갔다. 거기서 칵테일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 때문에 더욱 운치있는 시간이었다. 아프리카의 날들이 끝나가고 있고, 각자 그 이후의 일정을 공유하였다. 어떤 독일 친구는, 투어가 종료되는 날 잔지바르로 다시 올 것이라고 얘기했고, 우리 모두 그녀를 부러워했다. 나는 나의 마지막 여정을 위해 네팔로 간다는 이야기를 했고, 모두들 조금 놀랐다. 확실히 이 정도의 기간동안 이런 방식으로 여행하는 게 그리 흔하지는 않은 일이다. 동서양을 통틀어도 말이다. 이토록 아름다웠던 날들의 기억이 그리 쉽게 잊히지는 않기를 바란다. 기억이라는 걸 통제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좋았던 것들만 머릿속에 꽉꽉 채워놓을 텐데. 하긴, 그런 과정을 시각화 한 영화가 <이터널 선샤인>인데, 결국 한 사람을 이루고 성장시키는 건 긍정적인 기억과 부정적인 기억 모두라고 영화는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다만 바랄 뿐이다. 영원한 햇빛이라는 '이터널 선샤인'이란 이름처럼, 부디 이 여행의 기억이 영원한 따스함과 찬란함으로 남기를. 앞으로 살아갈 일상 때문에 다소 색이 바래도, 그 눈부심이 완전히 가려지지는 않기를.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혁오의 '공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