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34 (잔지바르)
그 대미를, 아름다운 바닷가인 잔지바르에서 장식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오늘 아침, 지난 이틀 동안 이 리조트에서 먹고 마신 것들을 지불했다. 이렇게나 마시고 먹어댔나 싶은 마음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뭐 어떡하리. 휴양지에서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인 걸. 내일은 잔지바르를 떠나, 나이로비 전의 최종 베이스캠프인 아루샤로 향하고, 세렝게티를 신청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세렝게티로 출발한다. 나의 경우는 세렝게티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루샤의 베이스캠프에서 계속 머무를 예정이고, 따라서 오늘의 관광이 아프리카에서의 마지막 관광이 된다. 정들었던 리조트를 떠나기는 무척이나 아쉬웠다. 숙소 밖으로 나오면 보이던 이 아름다운 바다가 무척이나 그리울 것 같다는 직감도 들었다. 유난히도 이번 여행에서는 바다와 관련하여 좋은 기억들이 참 많다. 그건 아마 내가 바다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바다를 방문할 때마다 날씨를 포함한 주변 사정 및 환경에 큰 하자가 없었던 덕분이기도 하겠다. 조금 거창하게 인생 얘기를 해보자면, 나는 사실 감사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더 적확히 말해서는,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아는 그런 사람이다. 그렇지만, 여행 중 바닷가를 방문할 때마다 받았던 좋은 느낌을 가능케 했던 행운들에는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 이렇게 조금씩 어른이 되나보다. 귀국하고도 이럴 지는 모르겠다만.
첫 일정은 향신료 투어(Spice Tour)였다. 바닐라 등을 포함하여 잔지바르 섬에서 자라는 향신료들을 직접 보고, 또 일부는 조금씩 맛을 볼 수 있는 형태의 관광이다. 향신료 등은 요리의 조미료 뿐 아니라, 비누나 향수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고 있었다. 특히 향이 좋은 게 꽤 있어서 구매 의욕이 생기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아프리카 관광지들이 그렇듯 여기에서도 신용 카드를 받지 않아 아쉽게 사지는 못했다. 하긴. 와이파이도 제대로 안 터지는 이 곳에서, 카드사와의 통신이 제대로 될 리도 없다. 향신료 외에도, 다양한 과일들을 맛 볼 수 있었다. 별 모양으로 생긴 과일도 있었고, 또 자몽 비슷한 것도 있었는데, 제일 인상깊었던 것은 다름아닌 코코넛이었다. 몇 년 전이었나, 코코넛 워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는 연예인들을 보며 진정한 연기파라고 하던 댓글이 있었다. 코코넛 특유의 향이 그 만큼 독특하고 부담스럽다는 것인데, 오늘은 날 것 그대로의 코코넛 워터를 제대로 들이켰다. 아, 뭐라 표현하기도 힘든 그 맛. 적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는 없겠으나, 과일에 기대하는 시원하고 청량한 맛과는 대척점에 있는 향이었다. 과즙을 다 들이키자, 꼭지 부분으로 코코넛 안을 파먹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과육의 당도는 꽤 있었다. 과즙 따위에 당도를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는 코코넛 과육의 눈물겨운 투쟁의 역사가 보였다.
향신료 투어를 마치고는 새 숙소로 들어왔다. 지난 리조트보다는 확실히 사람도 적고 경치도 덜 예뻤다.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에, 우린 잔지바르 시내 관광을 나섰다. 아름다운 바다와는 대조적으로, 잔지바르 역시 슬픈 역사를 간직한 섬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 생가 등 다양한 관광지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기억에 남는 건 잔지바르의 옛 노예 시장 부지였다. 사람이 사람을 사고 팔다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고만 있는 것과, 실제로 그 현장을 목격하는 건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우리는 노예들이 팔려가기 전 머물렀던 숙소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숙소에도 방문했고, 그곳의 열악함에 경악했으며 인간의 야만성에 혀를 내둘렀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찌 이리 잔인할 수 있었을까.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기에 그랬겠지, 아마도. 미래에는 AI나 복제인간들과 이와 비슷한 종류의 윤리적 담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이 역사는,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미래의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 성인 한 사람이 허리조차 펴기 힘든 열악한 환경에서 노예들을 착취했던 장소는 그 자체로도 어마어마한 불쾌함과 무력감을 자아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보존되어야 할 장소 같기도 했다. '허리조차 펴기 힘든'이란 구절을, 실제로 들어가서 정말 느껴보는 건 어마어마한 입체감을 부여하니까. 결국 세상을 발전시키는 건, 선한 사람들의 입체적 사고방식이라고 나는 믿는다.
잔지바르 시내 관광을 마치고 우린 숙소로 돌아왔고, 그렇게 잔지바르에서의 모든 일정은 다 끝이 났다. 내일은 다시 다르에스살렘 항구로 배를 타고 간 다음, 그곳에서 트럭에 올라 아루샤까지 달리게 된다. 케이프타운을 출발하던 날에, 아프리카를 횡단해내는 이 날은 그저 아득하게만 느껴졌는데 어느새 마지막 베이스캠프가 코 앞이다. 이런 감상에 젖은 채 노을을 바라보며 술을 마실 생각이었으나, 그러기에는 모기가 너무 많았다. 망할 모기들. 분명 이 중에는 말라리아를 가지고 있는 모기도 있었을 테다. 매주마다 말라리아 약을 복용하고 있기에 아직 별 이상이 없는 거겠지. 우려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안전하고도 무사히 아프리카를 마치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도 아직 며칠이 더 남았고, 또 치안이 그렇게나 위험하다는 케냐의 나이로비도 남아있어서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이틀차에 수영을 하다가 안경을 잃어버린 걸 제외하고는 별다른 분실도 없고, 몸의 부상도 없고, 퍽 다행스러운 날들이었다. 중간에 슬럼프도 있었으나 잘 지나갔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여행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과 함꼐 술을 마시고, 또 카드 게임을 하면서, 종종 찾아왔던 무기력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 대미를, 아름다운 바닷가인 잔지바르에서 장식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진심으로, 찬란한 바다에서 참 많이 행복했다. 언제 다시 이 바다를 보게 될 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안녕.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윤석철의 '바다가 들린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