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베이스캠프로

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35 (잔지바르-아루샤)

by Nell Kid
텐트에서의 마지막 밤

환상적인 바닷가였던 잔지바르를 떠나, 마지막 베이스캠프인 아루샤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멤버들은 세렝게티로 향한다. 동물들은 볼 만큼 봤고, 굳이 그 가격을 다 지불하면서까지 더 동물을 보고싶지 않은 나는 아루샤에 잔류한다. 아프리카의 마지막 관광을 잔지바르에서 장식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살면서 마주했던 가장 멋진 바다가 내 아프리카 여행의 피날레라니. 고되고 힘들었지만, 또 생각해보면 참 멋진 기억들이 많은 아프리카다. 아마도 잔지바르라는 휴양지에서, 아름다운 바다를 계속 보며 몸과 마음을 쉰 것도 이렇게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하는 데 한 몫 하는 듯하다. 며칠 후 도착하게 될 네팔에서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트래킹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몸이 너무 지쳐 있어서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요즘 기후의 네팔이 트래킹을 하기에 좋은 때도 아니고. 이렇게 여행이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케냐 입출국이나, 또 귀국하기까지 20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기에 어떤 변수가 생길지는 모르겠으나, 큰 덩어리로 봤을 때 95% 정도가 마무리 된 것은 맞다. 정량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 모두를 포함해서 말이다. 아루샤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는데 기분이 묘했다.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한 첫 날에, 텐트를 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그저 당황했을 뿐이었다. 이제는 텐트치는 데 거의 베테랑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하루하루의 미약한 성장이 매 번 가시적이지는 않지만, 또 이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보면 꽤나 자라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귀국을 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나도 그러겠지.


잔지바르에서 아루샤로 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잔지바르에서 다르에스살렘으로 배를 타고 가서, 거기서 택시를 잡아 우리가 머물렀던 호텔로 향하고, 그 호텔에 주차되어있는 트럭에 올라 다시 아루샤로 달리는 여정이었다. 헌데, 다르에스살렘에서 잔지바르로 갈 때도 주위 사람들이 무척이나 배멀미로 고생했는데, 이번에는 더 심했다. 위장이 나름대로 튼튼하다고 자부하는 나조차도 조금은 어지러움을 느꼈을 정도였다. 일행 중 하나는 아예 모든 걸 쏟아내고 있었다. 6개월의 여행을 하다 보면 별의 별 교통수단을 다 이용하게 되는데, 멀미를 단 한 번도 안 한 것도 축복 중의 축복이다. 멀미감을 느꼈던 건 아일랜드에서 딱 한 번 밖에 없다. 더블린의 호스텔에서 진행되었던 '프리 비어 데이(Free Beer Day)'에서 아주 많은 맥주를 마시고 다음 날 모허 절벽으로 향하는데, 내 속이 이미 절벽인 느낌이었다. 어찌됐든 몸이 버텨주었기에 지난 몇 달을 이렇게 돌아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황열병이나 말라리아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접종을 맞지도 않아서 살짝 불안하기도 하였는데, 다행히 별다른 징조는 없다. 오늘까지만 테트에서 자고, 멤버들이 떠난 내일 오전부터 나는 옆의 방갈로로 이동할 예정이다. 하루 숙박비가 싼 편이 아닌데, 나름대로 협상을 하여 괜찮은 가격에 방을 얻어냈다. 비록 와이파이는 잘 터지지 않지만, 침대가 있으니. 뒹굴뒹굴, 또 빈둥빈둥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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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_084442.jpg 안녕 바다

저녁 식사 시간에, 가이드는 세렝게티에 관한 안내사항을 브리핑했다. 어쩐지 열외되는 기분이었지만, 큰 아쉬움은 없었다. 케이프타운에서 나와 같은 날 출발했던 스위스인 친구는 내일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다. 이 빡센 캠핑 투어를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함께했더니 그래도 정이 들어서, 퍽 아쉬웠다. 유쾌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 여행을 하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정작 이름과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들은 또 몇 없다. 아마 이 친구는 그래도 다른 이들보다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기 때문에 우선은 잘 가라고 인사를 해두었다. 마지막으로 함께 와인을 마셨는데, 또 생각해보니 이렇게 스테인리스 컵에 와인을 담아 마실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움이 가득했다. 여행 중에 역시 아주 많은 술을 마셨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는 와인잔이 아닌 다른 곳에 담아 마시는 와인이었다. 순례길에서는 머그컵이나 플라스틱 컵에 와인을 마셨고, 또 아프리카에서는 스테인리스 잔에 담아 마시는 중인데, 와인의 맛을 살리기에는 모두 결격사유가 있는 용기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잔들만이 줄 수 있는 소소하고도 독특한 분위기가 있었다. 술은 분위기로 마시는 거라는 누군가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아프리카에서, 모닥불을 앞에 두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며 그와 동시에 레드 와인을 홀짝거리던 기억은 아마 두고두고 잊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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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21_174442.jpg 마지막 캠핑사이트, 아루샤

텐트에서 자는 것도 마지막이라니, 텐트에 들어와서도 조금은 실감이 안 났다. 텐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내 불편하다. 텐트의 가장 큰 결격 사유라면, 우선 안에 매트리스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무척이나 좁고, 보안에 취약하며,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고, 또 화장실과 샤워실이 멀리 떨어져 있어 밤에 이뇨감을 느낄 때면 졸린 와중에도 여정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다. 피곤한 오후에 텐트를 설치하고, 또 더 피곤한 아침에 텐트를 접는 일상을 반복해야 한다는 건 덤이고. 가끔은 텐트가 저주스럽도록 힘들었던 적도 있었으나, 아마도 두 번 다시는 이런 형태로 아프리카를 돌아다니지는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오늘 밤은 애틋해졌다. 텐트를 처음 칠 때, 이런저런 주의사항들을 정말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 했었다. 신발을 밖에 두지 말고, 또 귀중품들을 가급적 텐트에 들고 가지 말며, 뭐 이런 것들이 있다. 먹을 것들을 텐트 안에 두지 않아야 한다는 사항도 있었고. 덕분에 지독한 발냄새를 풍기는 신발을(순례길을 걸었으니 냄새가 안 나는 게 이상하다) 옆에 두고 자야했지만, 그것도 다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마지막이 되면 사람이 한없이 너그럽게 되는 모양이다. 그럼 진작에 매사를 마지막이라 생각하면 조금 더 너그럽고 따스한 사람이 될 텐데, 그건 또 아닌 걸 보니 아직 자랄 게 더 많이 남은 모양이다. 아프리카를 종합한 이야기는, 내일 멤버들이 떠나고 혼자 남게 되면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것으로 하며.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안녕바다의 '밤 새, 안녕히'다. 안녕, 잔지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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