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 Day 36~39 (탄자니아 아루샤)
게으르고 또 게으른 날들 안에서
한없이 게으른 날들을 보내고 있다. 다른 멤버들이 세렝게티로 떠난 후, 나는 방갈로를 잡았고 마침내 텐트 생활을 마무리했다. 침대의 아늑함이 너무도 좋아, 여행기고 뭐고, 그냥 모두 내팽겨치고 며칠을 내내 쉬었다. 굳이 일과를 이야기하자면, 사실 일과랄 것도 없이 게으르게 살고 있는데, 아침에는 우선 일어난다. 일어나야 한다. 캠프 사이트의 직원이 내게 아침을 어떤 걸 준비하면 좋겠냐고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다시 취침을 취한다. 아침은 무슨. 오후 늦게까지 잔 다음에, 샤워를 한다. 최고의 시간들 중 하나다. 방 안에 화장실과 욕실이 있는 게 정말 행복하다. 거기에 1인실이다. 1인실이라니. 먼 옛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4개월 전에, 말하자면 벌써부터 아득한 영국 여행 중 리버풀을 여행하던 때에, '1인실의 필요성'이란 글을 쓴 적 있는 것 같다.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에서 1인실 사용은 빈드후크 이후 처음이다. 물론 1인 텐트는 겁나게 많이 사용했었지만. 따뜻한 물이 잘 나오는 게 정말 좋다. 따뜻한 물을 깨끗한 환경에서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건 더욱 좋다. 따뜻한 물을 사용한 후, 추운 공기를 맞으며 텐트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어 훨씬 행복하다. 수압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으나, 아프리카까지 여행하면서 그런 것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말라위에서였나. 어느 주유소의 화장실에서, 우리 일행보다 앞에서 볼일을 보고 나온 어떤 사람이 '휴지가 없다'며 불평한 적이 있었다. 그 사람이 떠나고, 우리는 '그런 걸 기대했단 말이야?'라며 웃고 떠들었다.
샤워를 마치고는, 잠깐 산책을 나온다. 캠프 사이트 내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주변 마을을 서성거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캠프 사이트의 바에 들러서 맥주를 마신다. 캠프 사이트가 있는 아루샤는, 탄자니아에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로 향하는 '게이트 타운'이자, 또 한 편으로는 세렝게티 액티비티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도시 자체의 매력이나 관광 거리는 전무하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이라고는 맥주 등을 마시고, 간간히 터지는 와이파이로 세상의 소식을 접하거나 영상을 보고, 또 가끔은 네팔에서의 일정을 확인하는 것들 뿐이다. 케냐 나이로비에 도착하면 그날 어떻게 해야할지 아직 계획을 세우지는 못했다. 치안이 썩 좋은 곳은 아니라기에, 바로 투어가 마친 다음 날 새벽 한 시에 즈음에 출국하는 비행기를 예약해버렸다. 이 말은, 그 날 교통상황이나 이런저런 변수가 재수없게 '나야 나' 하면서 등장해버리면, 나는 망하게 된다는 소리다. 그러나 망함에도 정도가 있어서, 플랜B가 수립되어 있으면 망함의 상태가 덜 할 수 있다. 플랜B의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슬픈 사실이다. 그저 마지막 날 별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게 가장 최선의 방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여행을 하는 대부분의 날들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지내왔으나, 이 대륙을 벗어나는 데는 어쩐지 그런 안일함으로 일관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게으른 날들을 보내던 와중에, 오늘은 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일단 방값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인데, 대부분의 아프리카 관광지들이 그렇듯 여기서도 신용카드를 받지 않아 시내까지 나가서 현금을 인출해왔다. 가이드들이 장을 보러 간다기에 따라 나섰고, 숙소 측에 지불할 돈과 네팔 및 케냐를 입국할 때의 비자 비용을 함께 인출했다. 환전 수수료가 비싸서 마음이 아팠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화폐가 다 달라서, 국경을 넘을 때마다 환전을 해야 하는데, 이게 체계적이지도 않고 또 미묘하게 나라마다 환율이 달라서 꽤 많은 돈이 수수료로 지불되었다. 뭐 어차피 그 돈이 있었어도 맥주를 마셨을 테니, 건강을 위해 지불된 수수료라 생각하자. 가이드들은 자신들도 볼 일이 있다고 했고, 나에게는 환전을 마친 후에도 두 시간에서 세 시간 정도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처음에는 다소 막막했으나, 이윽고 커피숍을 발견하고 거기로 들어가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다. 여행을 할 때 먹을 것들에 대한 기대치가 크게 있는 편은 아니나, 가끔은 어떤 국가나 지역에서 반드시 맛 보고 싶은 것들이 존재한다. 아일랜드의 기네스나, 노르웨이의 연어나, 포르투의 와인이나 이런 것들이었는데, 아프리카에서는 현지에서 생산된 커피를 몹시 마시고 싶었다. 한국의 커피숍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이로비나 말라위 등의 커피 이름들의 본산지가 여기라는 거 아닌가. 실제로 말라위 호수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맛이 상당히 좋았다. 이 자유시간에는 탄자니아의 커피를 맛 보고 싶었다.
맛있었다. 미각이 아주 예민하거나, 맛의 미묘한 차이를 감별해낼 수 있는 수준의 혀를 가진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맛있는 커피를 맛있다고 할 수 있는 정도는 된다. 오늘 마신 탄자니아 커피는 참 맛있었다. 여기서 조금 더 전문적으로, 산도가 어떻고 또 다른 건 어떻고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으려만, 그 정도의 지식과 섬세함은 갖추지 못했다. 그러니 다만 말 할 뿐이다. 맛있었다고. 한 잔을 마시고, 또 한 잔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인스타그램에 커피를 포스팅하기도 했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들 중 하나는, 바로 이렇게 맛있는 커피라고. 애석하게도, 이런 커피는 커피숍에 가서야 마실 수 있는데, 투어 중에는 그럴 기회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투어가 마무리 될 때에는 피드백 종이를 작성하게 되는데, 첫 날 와인 테이스팅을 했던 것처럼, 커피 시음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의 외출에 맛있는 커피까지 마시니 기분이 좋았다. 외동으로 자랐는 데다가 성격 역시도 태생적으로 무리 생활(?)에 적합하지 않았는데, 근 40일 이상을 일행들과 함께 여행했더니 얼마간의 피로도가 쌓였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그들과의 시간이 나빴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 몇 개월을 별 다른 당위와 강제 없이 여행하다가, 이번에는 짜여진 스케줄에 스스로를 맞추고, 또 함께 여행하는 타인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려고 애쓰다 보니 이런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개별 여행과 패키지 여행의 장단점이다. 개별 여행을 할 때는 일정과 교통 수단, 또 숙소를 혼자 알아봐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있다면, 패키지 여행에서는 그런 부담은 없는 대신 또 나름대로 신경쓸 것들이 존재한다. 총량은 비슷한 것 같은데, 굳이 따지자면 나는 그래도 전자의 스트레스가 낫다. 그래도 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했던 이들 모두가 괜찮았고, 또 스케줄 자체도 지체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이 방식이 아니면 아프리카를 마음껏 여행할 수 없기에, 투어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다. 아니, 후회가 없는 게 아니라, 잘 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 투어 여행기를 시작할 때의 글 제목이 '우리의 발걸음을 쓰겠소'였다. 이 옛스러운 제목은, 드라마 <시카고 타자기>의 OST였던 SG워너비의 '우리의 얘기를 쓰겠소'에서 따온 것이다. 나름대로 수미상관의 법칙 처럼, 아프리카 투어 여행기의 가장 마지막 제목은 '우리의 발걸음을 남겼소'가 어떨까 싶은데, 여행기 주제에 너무 거창한 제목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뭐 일단 오늘의 글 제목은, 아주 무난한 '아프리카를 마무리하며'로 정했다. 사실 글의 제목으로 오랜시간 고민할 만큼, 아무 할 일이 없는 정말 게으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너무 게을렀던 것 같아, 이제 조금 몸을 움직여볼까 한다. 맥주를 마시러 가야지. 그렇다. 나는 이 정도로 게으르고 또 게으른 사람이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어반자카파의 '커피를 마시고'다. 여행 내내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들은 선곡하면서, 어쩐지 라디오 PD가 되어가는 기분이다. 시간이 흘러 라디오 PD가 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은데, 과연 방송사가 나를 채용해 줄 지 모르겠다. 현실에 대한 고민이 다가오는 걸 보니, 여행이 끝나가기는 하는 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