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영국 런던 (2016~2017 세계 여행)
우연이 선물했던 따뜻한 환영 인사
혼자 떠나는 여행임에도 나는 첫날부터 품위와 체통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건 더 이상 떨어질 것도 없는 이 나라의 바닥 같은 정치적 국격을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지극한 애국심에서였다, 는 물론 아니었고, 실은 롯데월드의 놀이 기구보다 몇 배는 더 신나는 비행기를 타면서도 그 흥분을 여과 없이 티 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편의점의 몇 천원 하는 도시락 보다 더욱 못 한 기내식을 먹으면서도 새삼 행복을 느꼈고, 행여 촌스럽게 보이지는 않을까, 를 조금 염려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제주도로 수학 여행을 가며, 비행기의 매 순간 움직임에 온갖 감탄을 뱉어 냈던 아이들의 순수함을 못내 부끄럽게 여겼던 당시의 사춘기 감성 때문에, 사실은 그렇지도 않으면서 해외 여행을 아주 많이 다녀 본 듯한 베테랑 흉내를 내게 되었다. 내가 경험이 없지, 가오가 없냐, 뭐 이런 마인드였달까. 그래서 기내식을 한 끼 한 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드라마 <혼술남녀>의 하석진처럼 도도히 이어폰을 꼽은 채 오직 식사를 음미했다. 그게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던 음식이었는 지는 여전히 의문이기는 하다.
영국 런던으로의 나의 여정은 김포에서 시작했다. 인천이 아니라 김포였다는 게 중요하다. 아, 이리도 김 빠지는 시작이라니. 평소에 비행기를 탈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은 나는, 촌스럽게도 비행기는 인천이지, 같은 편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여행을 준비하며 반드시 맞아야 했던 황열병 주사 때문에 굳이 인천공항 검역소까지 다녀온 건, 이 위대한 여정을 고작 김포에서 시작해야 하는 불운이 안타까웠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 날, 백신을 맞으러 가며 출국하는 기분은 다 내고 왔다. 별다른 감흥 없이 김포를 떠난 비행기는 경유지인 베이징에 두 시간만에 도착했고, 짧은 비행시간이 안타까웠으나 곧 몸을 싣게 될 11시간 반 동안의 장거리 운행을 상기하며, 태연한 척 환승 수속을 받고 런던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2년 전 학회의 발표 대회 차 방문했던 베이징 공항은, 그때도 어마어마하게 컸지만 김포 공항과의 비교 때문인지 더욱 크게 느껴졌으며, 덕분에 소박했던 출발의 아쉬움을 다소 만회할 수 있었다. 다시금 피어난 여행의 설렘에 전율하며,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기 보다는, 다리를 꼬고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저 끝 없는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와 고고함을 연출했다. 그건 사실 베이징 공항의 와이파이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고, 게다가 중국 당국의 규제로 구글과 페이스북이 모두 제한되어 스마트 폰으로도 마땅히 할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훈련소의 첫 날, 나는 세상 그 어떤 오지에서도 그 곳 보다는 편안하게 잘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정신 나간 듯한 빽빽한 밀도로 놓인 비행기 좌석에 앉은 지 채 세 시간이 안 되어, 나는 그날의 판단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중국 항공은 13억이 넘는 자국 인구를 유사시 최소의 비행기들로 최대한 신속히 소개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뭔지, 다리를 절반 정도만 뻗는 것도 어려운 환경을 자랑했다. 유난히도 쌌던 비행기 운임료의 이유를 마침내 이해할 수 있었다. 잔여 비행 시간을 체크하는 건, 남은 군생활을 전역일 계산기로 주판 두드려보는 일 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리도 달콤한 숙면을 취하고도 한 시간 반 밖에 흐르지 않은 시간에 경악했고, 그렇게 멀쩡한 정신으로 일곱 시간을 더 날아야 한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이코노미 좌석의 이름이 ‘이코노미’인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그리도 열악한 환경에서 여행하기 싫다면 열심히 ‘이코노미’스러운 짓에 최선을 다 하여 풍족한 자금으로 비즈니스를 타라는 신 자유주의적인 의미였다. 술을 몇 잔이나 마셔도 오지 않은 잠은, 훈련소 첫 날에 21개월 후의 전역날을 떠올리는 것만큼이나 요원하게 느껴졌다. 혹시 그때 나를 기다려야 했던 가족과 여자 친구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뜻밖의 감정이입도 이루어졌다. 여자 친구는 나를 떠날 수라도 있었지, 비행기는 탈출도 안 되니. 그만큼 열 한 시간 반의 비행은 할 일이 X도 없었다.
김포 공항에서 수속을 밟을 때, 중국 항공 카운터의 직원은 편도 티켓으로는 영국 출입이 불가할 수도 있다며 내게 겁을 줬다. 물론, 나는 태연한 척 상관 없다며, 추운 날씨보다 더 차가운 쿨함을 풍겼지만, 실은 김포를 출발하여 런던 히드로에 도착하는 과정 내내, 속된 말로 ‘쫄아’ 있었다. 기껏 떠난 여행에서 입국이 거부당해 한국으로 추방된다면 그것도 얼마나 쪽팔리는 일일까, 그런 염려로 가슴이 두근댔다. 안 좋은 상상은 꼬리를 물고 물었다. 열 한 시간 이상의 비행은 그렇게 안 좋은 상상을 극단까지 몰고 갔다. 비행기에서 작성했던 입국 심사 카드에는, 영국의 법을 어기면 수감될 수 있다는 경고까지 있었다. 거듭된 안 좋은 상상 끝에, 그래도 추방이 수감보다는 괜찮겠다 싶은 역설적인 희망까지 들었다. 몇 년 전 보았던 전도연 주연의 <집으로 가는 길>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혹시라도 내 수하물에 영국 법에 저촉될 만한 것들은 없는지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헤어 드라이기를 괜히 가져왔나 싶기도 했다. 만약이라도 그걸 공격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서였다.
악명 높은 영국의 입국 심사는, 그 명성만큼이나 철저하게 이루어 졌다. 심사관과 나 사이의 따뜻한 기류는 서로가 ‘헬로’를 주고받을 때 밖에 없었다. 10분 이상 입국 심사대 앞에서 취조와 심문 사이의 질문 공세를 들어냈고, 되도 않은 영어로 이들에 답변 하다 보니 홀로 서 있는 그 자리가 그렇게 외로울 수 없었다. 좋은 게 좋은 거고, 좋은 건 스스로가 편한 것이니, 자신이 문책당하지 않을 정도에서 그저 의례적이고도 형식적인 절차로 공무를 수행하는 우리나라의 무사안일주의가 너그러움으로까지 느껴졌다. 도대체 얼마 만인지 알 수도 없는 압박 면접 후에, 영국의 입국 심사관은 내게 이런저런 훈계들을 덧붙이다 마침내 영국 땅에 발을 딛는 걸 허락했고, 그에 감복한 나는 연신 땡큐를 연발하며 그 순간만큼은 영국을 대영제국이라 부르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열 한 시간이 넘은 비행과, 그 보다 더욱 심각했던 정신적 중압감에서 마침내 해방된 내게 급격한 피로가 몰려왔고, 지하철에서 내렸을 때 즈음에는 온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버려버리고 싶은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마침내 계단을 올라왔을 때, 눈 앞에는 빨간색 2층 버스가 지나가고 있었다. 우연이 선물했던 따뜻한 환영 인사였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