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이왕 없는 여행

영국 런던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조금 덜 인색하게 흐르는 시간을 대해보도록 자꾸 마음을 먹는 중이다.

여행, 그 중에서도 특히 유럽 여행을 혼자 할 때 가장 좋은 점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정말 마음껏 미술관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다. 다른 이와 함께였다면 족히 네 시간 이상은 머무르고도 남았을 내셔널 갤러리를, 그래서 나는 두 시간 반 정도만에 주파했다. 정말 내 마음껏, 게다가 실컷 구경하고 나왔다. 나처럼 그림을 별로 안 좋아하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별로 안 좋아하는 그림들이 모인 미술관을 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뭐 그래봤자 엄청나게 지겨운 게 조금 덜 지겨운 정도가 되는 것 뿐이기는 하다만. 입구에는 아마 간단한 가이드 팜플렛이 하나 있을 것이다. 거기에는 미술관에서 자랑하는 대표적인 그림들이 소개되어 있다. 조금 속된 말로, 이곳의 엑기스라는 소리다. 따라서 그것만 다 보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미술관 투어를 시작하면, 조금은 보물찾기를 하는 느낌으로 신나게 구경할 수 있다. 물론, '조금은'이다. 게다가 하필 그 무료 팜플렛의 작품들이 뚜렷한 동선 없이 무작위로 배열 되어 있다면, 끝 방에서 반대 방으로 향하는 긴 여정도 가능하다. 그렇게 그림들을 찾아 헤매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술관 한 바퀴를 돌았을 것이다. 그 와중에서 유난히 눈길이 많이 갔던 작품이 있다면, 그 곳에는 조금 오래 머무르는 식으로 관람하는 식의 하나의 방안이다.


이런 식으로 숙제처럼 미뤄두었던 런던에서의 첫 미술관 관람을 마침내 마무리했다. 보통 이렇게 미술관을 왔다 갔다 다니다 보면 아 그래도 이 그림 하나만큼은 정말 마음에 든다, 싶은 작품이 있기 마련이던데, 이번에는 미술관을 나오는 순간까지 마땅한 게 없었다. 물론 이는 미술이라는 영역에 대해서는 내가 철저한 문외한이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사람 얼굴 하나 조차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내 시선으로는, 세상 모든 그림들이 나에게는 김태희고, 전도연이고, 길라임이고, 또 다빈치다. 몇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작조차 불가능할 작품들의 아우라는, 그들과 나 사이의 슬픈 괴리감을 형성했다. 미술과 나는 평생을 서로 사랑할 수 없는 불행한 운명이다. 내가 미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림들이 내게 먼저 말을 거는 기적 역시 일어나지 않는다. 팜플렛에 있는 소수의 그림들을 찾아다니는 것도 막판에는 지겨워, 구글에 '내셔널 갤러리에서 반드시 봐야 할 것들(National Gallery London Must see)'라고 직설적으로 검색하여 그 결과들을 찾아다녔다. 다행히도 미술관이 끔찍할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어서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안에 전부를 다 돌아볼 수 있었다. 내셔널 갤러리의 입장료가 없다는 것도 하나 엄청난 장점이었다. 돈을 지불 했다면 그래도 그만큼의 뽕은 뽑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억지로 오래 머무를 수도 있었겠으나, 다행히도 그런 부채의식은 없어 아무런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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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불꽃놀이 하나를 보겠다고 12월 31일에 무려 일곱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후유증이 아직 있었다. 1월 1일에는 마음 먹고 정말 아무것도 안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피로가 남아 있었다. 전 날에는 일부러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스날의 경기가 열리는 에미레이트 스타디움 근처로 가서 맥주만 한 잔 마시고 온 게 끝이었는데도, 오늘 여전히 뻐근한 숙취 같은 게 느껴졌다. 아마 미술관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지친 영혼을 조금 쉬게 해줘야 될 것 같아 템즈 강변을 산책하기로 결심했다. 강변은 언제나 좋다. 거기서 일곱 시간 동안 모든 바람과 추위를 온 몸으로 막으며 서 있는 '미친 짓'만 안 한다면, 조명이 빛나는 강변 만큼이나 세상에서 예쁜 곳들은 그리 많지 않다. 문제는 불과 이틀 전 내가 그 '미친 짓'을 했다는 점이었지만. 작년의 마지막 날에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해피 뉴 이어를 외쳐대던 함성과 시끄러움은 모두 어디로 사라지고, 강변에는 한산함만이 감돌았다. 하긴, 사실 그 날 오후 다섯시 정도까지만 해도, 이런 분위기였지. 천천히 걷다 보니 불꽃 놀이가 터졌던 런던 아이도 나왔다. 혼자 온 여행이 딱히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아직 없었는데, 그 휘황찬란한 관람차를 보니 조금은 울적했다. 그런 대관람차는 영화들에서 흔히 연인들의 사랑이 꽃 피는 작고도 오붓한 공간으로 묘사되곤 한다. <이프온리>에서도 그랬고, <마담 뺑덕>에서도 그랬다. 겨우 한 바퀴 올라갔다 내려오는 주제에 더럽게도 비싼 가격이기는 했으나, 애인과 함께라면 그 따위 돈이 문제일까 싶었다.


그런 외로움에서 시작하여 이런저런 혼자만의 생각들로 강변을 걷다 보니, 문득 런던이라는 도시가 서울 다음으로 내 평생 가장 오래도록 거주하고 있는 곳이 되었다는 자각이 들었다. 겨우 일주일 지내고도 2위라니, 나도 정말 어지간히 서울 밖으로는 벗어나 본 적 없는 사람이다. 물론 서울과 런던의 순위 사이에 실은 논산도 있겠지만, 그걸 '거주'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부감이 드는 게 사실이니까. 런던에 못해도 열흘 이상은 머무르겠다는 계획 때문인지, 이곳에서 나 자신이 여행자라는 인식은 그리 크지 않다. 물론 부족한 영어를 체감할 때마다 내가 속절없는 타지인이라는 건 실감이 나지만, 그럼에도 여행보다는 생활이라는 단어가 조금 더 편한 곳이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논리 구조는 바로, 무엇하다면 무엇은 해야지, 혹은 돼야지, 따위의 당위적 강제성이다. 학생이면, 아들이면, 혹은 그 무엇이라면 필연적으로 반드시 어떠한 행위를 수행해야 한다는 생각은 다소 끔찍하기까지 하다. 이런 강제성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여행을 다닐 때마다 나는 스스로를 들들 볶아대는 유형이었다. 속으로 내내 언제 여기를 또 와보겠냐, 라고 나 자신을 채근했고, 따라서 최대한 고생스럽게 돌아다니며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많은 걸 보려고 애썼다. 그게 잘못됐다는 건 아니나, 조금은 피로했던 것도 사실이며, 어쨌든 확실히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런던에서만큼은 도시 전체를 천천히 맛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비교적 긴 체류 계획이 너그러이 선뭃한 자유를 감사하게 즐기고 있다. 그동안 다녔던 분주하고도 성실한 여행에서는 쉽게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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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또 이곳에 와보겠냐는 조급한 마음으로, 어쨌든 지금 이 순간은 여기에 있는 것 아니겠냐는 현재의 답변을 지나치게 무시해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행 중 내 육체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사고 방식의 접두사는 항상 '이왕이면'이었다. 티코를 사러 갔다가 몇 번의 이왕이면 끝에 벤츠를 타고 나온다는 예전의 유머처럼, 나도 여기까지 이왕 왔으니, 라는 논리적 흐름으로 때로는 정작 만끽해야할 순간을 얼마간 놓치기도 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이왕이면, 이왕 같은 건 되도록 없는 여행을 다니고 있다. 오늘이 그저 오늘로써 가치있는 순간들은 정말 오랜만이라, 이 낯섦이 다소 어색하면서도 무척 즐겁다. 정해진 당위 같은 건 없으니, 일정을 짜거나 하루를 계획하는 것 역시 훨씬 자유롭고 여유있다. 물론 정말 솔직히 말해서, 런던까지 왔으면서 이리도 계획 없게 다녀도 되는 거냐, 라는 옛날 버릇이 꽤 자주 고개를 들고, 그런 양심의 지적에 아무런 가책 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런던에서만큼은 조금 덜 인색하게 흐르는 시간을 대해보도록 자꾸 마음을 먹는 중이다. 어차피 이럴 날도 이제 며칠 안 남았다. 채 일주일도 안 되어, 영국의 어딘가에서 어마어마한 무게의 캐리어를 저주하며 입에 쌍욕을 물고 있는 한국인을 발견한다면, 그건 아마도 나일 것이다. 그렇게나 빠듯한 일정으로 돌아다닐 미래의 스스로에게, 벌써부터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로코베리의 '나를 위로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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