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2016~2017 세계 여행)
당신의 책과 함께, 불행하지 않을 여행을 기원합니다.
작가 존 버거의 부고를 이제야 들었다. 넬이 아니었다면 이름조차 몰랐을 사람이었을텐데, 그의 국가에 온 지 열흘이 채 안 되었는데 사망 소식을 알게 되니 기분이 조금 묘했다. 평소에 책을 지지리도 안 읽는 사람이기에 이번 여행에도 고작 세 권 만을 챙겼고, 그 중 한 권이 존 버거의 작품 <그리고 사진처럼 덧없는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이다. 제목에서부터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은 이 책을 알게된 계기는, 넬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이라는 뮤직비디오였다. 거기서 배우 이민기가 이 책을 들고 있었다. 아직도 '우리들의 얼굴, 내 가슴'인지 '내 얼굴, 우리들의 가슴'인지 헷갈리는 이 책을 구매까지 하게 되었다. 아주 얇은 책이나, 그럼에도 진도가 그렇게 쉽게 나가지는 않았다. 여행지에서 읽을 책으로는 이런 게 제격이라는 누군가의 설명을 듣고, 바로 이토록 긴 제목의 책은 나와 함께 유라시아 대륙의 또 다른 극단으로 넘어왔다. 그렇게 영국에서 여행을 하던 와중에 작가의 부고를 접하니, 새삼 먹먹한 감정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그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책을 가방에 넣고 런던을 산책했다. 이게 중요하다. 읽었다는 게 아니라, 들고 다녔을 뿐이었다.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 오늘 단 한 페이지도 넘겨보지 않은 책을 읽었다고 거짓말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음악은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역시나 네 시만 되어도 해가 지기 시작한 인색한 태양의 나라답게,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노래에 잘 어울리는 울적한 분위기가 연출 됐다. 그리 강렬하지 않은 햇빛이 마침내 조금 신경을 거스를 때 쯤 한국에서 준비해 온 비장의 선글라스를 착용하나, 그게 무색할 만큼 일몰이 금세 찾아와 매 번 당황스럽다. 오늘도 오후 두 시 쯤 되어 검은 안경을 끼고 세상 당당한 발걸음으로 런던 거리를 런웨이 삼아 걷기 시작했으나, 하늘의 신은 지금 뭐하는 짓이냐라고 나를 질책하는 듯 금방 햇빛을 박탈했고, 다소 무안한 표정으로 원래의 안경으로 바꾸어 착용했다. 흐리고 비오는 날을 광적으로 좋아하던 한국에서의 취향이 조금은 사치였음을 이 곳에 와서야 느끼고 있다. 물론 서울로 돌아간다면 뭐 이딴 멋대가리 없는 날씨가 다 있냐며 불평할 테지만. 그렇다. 나는 좀 그렇게 간사한 사람이다.
여행이 벌써 열흘을 향하고 있고, 어느새 런던에서의 일정이 마무리 되는 날이었는 데다가, 마침 몇 안 되게 외우고 있는 작가 존 버거라는 인물의 죽음까지 접하게 되니, 오늘만큼은 유난히 영국스러운 감정이었다. 조금은 울적했으며, 사실은 지랄 맞았다는 소리다. 이런 꿀꿀한 날에는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싶어 고민하다가 KFC를 발견했다. 치킨이라니. 이건 만병 통치약이 아닌가. 오늘은 저거다 싶어 얼른 들어가 한 세트를 주문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닭이 아니라 타조라도 한 마리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최소한 열 조각을 넘게 시켰는데 단 네 조각만에 입덧하는 마냥 물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요즘 확실히 위의 크기가 작아지긴 작아졌다. 그런데도 살은 별로 안 빠지는 이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긴 하다. 내 체중의 직관적 바로미터는 두 뺨의 보조개다. 조금 말끔히 생긴 날에는 두 보조개들이 모두 선명하다. 요즘처럼 살이 올랐을 때는 하나는 볼 살에 파묻혀버리는 비극이 일어난다. 먹는 양이 줄었고 매일매일 상당한 거리를 걷고 있지만, 사라진 왼쪽 뺨의 보조개는 부활할 기미가 안 보인다. 그 때문인지 아직까지는 얼굴 사진을 찍는 재미가 별로 없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통통한 볼살을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
아무튼 중요한 건, 배가 불러 무려 치킨을 남겼다는 사실이었다. 런던에서의 첫 날 피자를 한 판 이상 먹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가파른 속도로 식욕이 억제되고 있다. 좋은 증상이다. 최근 2년 동안의 누적 활동량 보다 더욱 높았던 약 열흘 정도의 패턴 변화에 내 신체가 아직 적응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왕이면 평생을 이런 균형으로 살았으면 한다. 그런 미약한 희망을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발견했다. 물론 오늘의 식욕 부진은 어제의 과음 때문일 수도 있다. 노리치에서 받은 배신감과 실망감으로 어제 저녁 호스텔 1층의 술집에서 여행 중 최초로 술을 취할 정도로 마셨다. 겁이 많은 나는 어디 낯선 곳에서 만취할 만큼의 음주는 절대 못한다. 계단 하나만 오르면 침실일 정도로 안전한 장소였기에 그 정도의 음주가 가능했다. 첼시와 토트넘의 런던 더비를 보며 맥주를 마셨는데, 슬슬 정신이 희미해질 무렵에서야 손흥민이 교체 투입 됐다. 참 뜻대로 되는 게 지지리도 없는 하루구나, 라는 씁쓸함으로 잠을 청했다. 한국의 뉴스들이 최근에 워낙 답답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또 외국에 오니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국내 포탈은 자주 접속하지 않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오랜만에 소식들을 살펴보다 마침내 존 버거의 부음까지 들었다.
그야말로 숙취 같았던 하루의 시작이었다. 덕분에 오늘 하루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정리하며 차분하게 보낼 수 있었다. 체류에 가까웠던 한 도시에서의 여정을 이렇게 마무리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열 흘 남짓한 날들동안 찍었던 수많은 사진들을 돌아보았고, 벌써부터 기억이 희미한 부분이 있어서 놀랐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강제와 당위, 또 의무를 지독하게 혐오하지만, 여행을 재깍재깍 기록하는 일 만큼은 권고를 넘어 의무 사항이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매일매일의 여행기를 정리하는 건 그리 쉽지 않으며, 솔직히 말하자면 무척 귀찮은 일이다. 방학 숙제를 하는 느낌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대부분은 형편 없는 졸고에 가까운 수준에 머무르는 것도 아쉽기는 하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기차를 타면 된다는 주의지만, 써야할 때 쓰지 못한 글은 어떤 식으로든 만회할 수 없다는 거대한 진실을 간신히 동력삼아 부족한 여행기들을 땜질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벌써 한 도시가 끝났다. 사실 3일 정도 후에 뮤지컬 관람을 위해 잠시 돌아오기는 하나, 실질적인 런던 여행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조금은 뻔뻔한 성격이라 평소에 고마움을 느낄 일은 정말 드문데, 어쨌든 초반 열흘의 여행이 비교적 무탈하게 마무리된 데에는 충분한 감사를 표해야 할 것 같다. 더불어, 작가 존 버거를 추모한다. 다소 쌩뚱맞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싶다. 당신의 책과 함께, 불행하지 않을 여행을 기원합니다. 이날의 플레이리스트는 당연히, 넬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