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맨체스터 (2016~2017 세계 여행)
약간의 윤리적 불편함도 여행에서는 꼭 필요할 지도
맨체스터에는 지하철이 없는 대신 트램이 다닌다. 노면 전차다. 이 곳 사람들에게야 일상이겠지만, 여행자인 내게는 그저 낯선 광경이다. 특히 해질 무렵이 되어 세상이 조금 어둑해지고, 신호등 불빛에 트램이 달리는 풍경은 근래에 느낀 가장 강한 이국적임이었다. 여행이 어느덧 20일 째를 향하고 있고, 그렇기에 빨간 2층 버스가 지나가면 지나가나 보다, 물을 '후어터'라 발음해도 여긴 그런가 보다 할 정도로 영국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트램을 보자 새삼 내가 여행지에 있다는 게 실감났다. 누군가에게는 더 없는 평범함이 기분좋은 놀라움이 되는 것도 여행의 본질 중 하나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올드 트래포드 구장이 호스텔을 기점으로 남서쪽에 위치한 곳이었다면, 오늘 향했던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 이티하드 스타디움은 호스텔의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어제와는 꽤 다른 감흥을 느끼며 경기장까지 갈 수 있었다. 이티하드 스타디움은 중심지와는 꽤 떨어진, 어떻게 말하자면 조금은 낙후된 동네에 있었다. 홀로 번쩍하며 서있는 경기장이 다소 이질적으로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가는 중간중간에는 철도 선로까지 있었다. 하지만 맨체스터에서도 다소 외딴 곳에 위치한 그 곳의 분위기가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한참 사진을 찍다가, 문득 이들의 일상에 무작정 카메라를 들이미는 게 썩 올바른 짓인가 하는 질문을 품게 되었다. 노란 트램이 라이트를 키고 왔다갔다 하는 모습은 앙증맞고 귀여웠으나, 그 동안 그저 '이국적'이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그동안 너무 사려없이 사진을 찍고 다닌 건 아닐까 싶었다. 여행자라는 신분은 그리 특권적인 지위가 아니다. 물론 여행지에 와서 그동안 살아오며 느끼고 본 것들과는 꽤 다른 모습들에 감흥을 느끼고, 이를 기록하고 싶은 욕구가 드는 건 당연한 일이겠으나, 조금은 더 신중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지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성실하게 분투해야 할 거룩한 생활임에도, 여행 기간 동안 그저 내 임의대로 이들을 대상화해온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피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나가는 트램 하나를 찍거나, 낯선 골목의 풍경을 촬영하는 정도만으로 그들의 존엄을 침해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영국은 그래도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고, 여기도 다소간의 빈부 격차는 있겠으나 아직까지 빈곤가에까지 부러 발을 들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앞으로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계획하고 있는 곳들 중에는 아프리카를 포함하여 경제적으로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닌 국가들이 꽤 있다. 문화를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여러모로 다른 현지의 모습들을 오직 신기하다는 이유 만으로 단순히 카메라에 담아내고 그들의 삶을 피사체로 대상화해버리는 건, 그들에게 다소 무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전에 읽었던 인상적인 칼럼들 중에, 김사과 작가의 '망함에 대해'가 있다. 그녀가 예술학교에 재학하던 어느 날을 회상하고 있는 글이다. 거기서 그들은 현장 학습을 가던 중에 지방의 한 쇠락한 마을에 들어섰고, 그걸 흥미롭게 느낀 몇몇 학생들이 값 비싼 카메라를 들고 채증하다시피 다른 이의 치부를 들추는 게 역겨웠다는 경험으로 시작하는 칼럼이었다. 조금 긴 여행을 다니는 중에 그녀의 글을 떠올려 보니, 혹시 내가 그런 우를 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여행이라는 이름 아래의 낭만과 현지다움을 좇으며, 역설적으로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애로 사항과 불편함에는 지나칠 정도로 무감각하게 지내왔다는 자각이 들었다. 이게 뭐가 그리 큰 문제인가, 어차피 나는 이 곳 시민도 아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또 이 사람들의 인간적 어려움과 경제적 고됨은 내 책임과는 무관하지 않은가, 이런 반론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영국이 아닌 아프리카 등의 다른 국가에서였다면, 굉장히 폭력적인 사고방식일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탄자니아의 어느 마을에 갔는데, 그 곳의 도시화와 발전된 삶의 모습을 보고 정작 나는 실망할 수도 있던 것이다. 그게 아프리카다운 게 아니라면서 말이다. 도시화와 기계 발전이 가져 온 질병의 감소나 삶의 질 향상과도 같은, 현지 주민들에게는 훨씬 절실한 미덕들은 차치해놓은 채, 오로지 내 여행의 유희에만 천착하는 배려없는 태도를 지닐 수 있었다. 오늘은 그런 철 없는 생각을 갖기 전에 스스로에게 한 번 경고할 수 있는 소중한 하루였다.
3년 전 가을이었다. 속해있던 학회의 발표 대회차 운 좋게 중국을 방문했고, 하루 정도 남는 시간이 있어 우리 팀은 베이징을 여행했다. 당시 우리 팀에는 중국에서 오랫동안 살다온 학생이 하나 있었고, 그 친구를 가이드 삼아서 패키지 여행에서는 흔히 갈 수 없는 베이징의 골목 골목을 누벼볼 수 있었다. 중국도 우리나라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고, 따라서 그 골목은 아주 오래되고 낙후되어 있었다. 다만, 예쁘기는 했다. 그 전의 일정들을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신시가지 부근에서 보냈던 우리들은, 그 골목을 '중국스럽다' 혹은 '아기자기하게 예쁘다'고 평하며 사진을 찍고 재미있게 웃으며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배려가 없었던 그 날의 방문이었다. 그저 미관적으로 오밀조밀하고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현지 주민들의 삶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그저 철 없게 서로의 사진들을 찍어댔다. 하지만 그렇게 낙후돼 있는 골목을, 오로지 미적 기준으로만 재단하여 이런저런 웃음소리와 소음과 함께, 반나절 정도의 유희거리로 소비해서는 안 됐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이것이 조금은 혼자 유난한 불편을 느끼는 것처럼 비추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약간의 윤리적 불편함이 여행 전체의 감흥에는 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둘 중 하나를 굳이 택해야 한다면, 난 조금의 불편함 정도는 감수하는 쪽이 '낫다'가 아니라 '맞다'고 생각한다.
분명 사실이다. 여행지에서, 현지 사람들의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은 때때로 중요한 감흥의 순간이 되기도 한다. 오늘의 트램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는 한낱 교통수단일 뿐인 노면 전차가, 내게는 꽤 기분 좋은 '이국적임'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여행의 낭만과 이국적임, 또 감동을 찾아 다니는 순간에, 현지 사람들에 대한 존중 역시 반드시 계속 견지해야 할 자세임을 한 번 더 되새겼다.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입장에서, 다른 이들의 일상을 손 쉽게 평가절하하고 대상화 할 자격과 권리 같은 건 여행자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망함에 대해'의 필자 김사과는, '그 망함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것은 강렬한 미적 경험에 가까울 것이기 때문이다', '낙관과 풍요 속에서라면 결코 볼 수 없는 인간의 본모습을 시각화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비판했다. 정작 중요한 걸 망각하지 않을 수 있는 여행이 되도록, 조금 더 많은 신중과 고민을 기해야 할 듯하다.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방식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 역시도, 이국적인 풍광들 이외에 여행이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주요한 선물이 아닐까.
물론 이렇게 계속 말하자니 맨체스터가 무슨 낙후된 동네 같아 보이지만, 이건 이곳만을 염두해놓은 생각은 아니다. 맨체스터는 참 조용하고 고요하며, 비가 아주 많이 내리는 동네다. 무엇보다, 트램도 예쁘고. 여행을 하며 아무리 발전된 도시를 돌아다니더라도, 현지의 사람들과 생활상을 관찰하고 촬영할 때는 기본적인 존중과 예의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지는 조금 더 세상을 경험하며 알아가고, 정립해나가야겠지만. 사실 이번 여행에서의 이토록 가장 철학적인 사고까지 하게 된 것에는, 맨체스터가 지독하게도 할 일이 마땅히 없는 곳이라는 게 한 몫 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여행의 플레이리스트는 루시드 폴의 '사람이었네'다. 남은 여행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는 동안, 오늘 어렴풋이나마 느꼈던 이 감정을 쉽게 잊지는 않기를 스스로에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