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에든버러 (2016~2017 세계 여행)
'꿈'이 불현듯 찾아올 가능성만큼은 아예 차단하지는 않는 것
어제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오늘은 하루종일 그칠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에든버러는 계속 젖고 있다.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비가 이처럼 많이 내리는 건 거의 처음이다. 너무 자주는 말고, 이 정도 간격으로 한 번 씩 비가 내리는 것이 딱 괜찮은 듯하다. 거의 일주일 가깝게 지내고 있는, 그래서 아주 익숙한 에든버러의 곳곳이 비를 맞으니 다소 새롭게 느껴진다. 평소에도 참 멋지고 걸어다니기 좋은 곳이지만, 비가 내리니 운치가 훨씬 더 살아난다. 전체적으로 회색 및 갈색톤의 오래된 건물들이 많고, 따라서 웅장하게 보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메말라 있다는 감정도 받았는데, 오늘 내린 비가 도시 전체를 우수에 젖게 하여 오히려 더욱 생동감 있게 만들었다. 비가 퍼붓기 보다는 잔잔히 내렸고, 우산 없이도 걸어 다닐만 했다. 빗속에서 걸어다니는 건 생각보다 매력있는 일이다. 오늘처럼 가방 안에 우산이 있음에도 비를 맞을 때는, 마치 영화 <클래식> 속의 주인공이 된 느낌이다. 물론 나는 조인성이나 조승우 둘 중 누구도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손예진도 이 곳에는 없다. 영화 <라라랜드> OST들 중 하나인 'Audition'도 역시 떠올랐다. 그 추운 센 강에 맨 발로 뛰어들었던 엠마 스톤의 이모처럼, 나도 젖을 걸 뻔히 알면서도 빗속을 활보했기 때문이었다. 엠마 스톤의 이모는 그러고 한 달을 감기로 고생했으면서도, 다시 센 강에 뛰어들 거라 이야기 했다. 어쩐지 빗 속을 걷는 나와 그녀가 묘하게 접점을 이루는 느낌이었다. 물론 비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아서 가능했던 것일지도 모르지만.
'Audition'의 부제는 '꿈을 꾸는 바보들'이다. 영화속에서 엠마 스톤이 1인극 오디션 형식을 빌려 이 노래를 불렀는데, 센 강에 뛰어들 정도로 조금은 정신 나갔고 미쳐 보이는 행위들이, 실은 세상을 바라보는 다채로운 시각을 형성하는 열쇠고, 이것이 우리를 어떤 곳으로 이끌지 모른다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사실 '꿈'과 '바보'는 '빵과 버터'처럼 오래도록 붙어 쓰인 클리셰적인 단어들이다. 클리셰들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다. 첫째는 너무나도 빈번하게 사용되어 더 이상의 유효한 울림을 전하기는 어렵다는 것과, 두 번째는 위선적이고도 어줍잖은 훈계의 언어로 수렴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꿈'과 '바보'의 결합체는, 사람들의 열정을 분발하는 데만 그치지 않아서 더 악질적이기도 하다. 종종 '바보'에 가깝도록, 그 어떤 희생과 부조리에도 반드시 '꿈'이라 불리는 목표를 추구하도록 촉구하는, 그런 기성 사회의 폭력적 프로파곤다에 복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기 위해서 세상은 몇 가지 장치를 설정해놓았다. 우선, '꿈'을 하나의 강박으로 강제한다. 마치 '꿈'이라는 게 없으면 성숙한 어른이 아니라는 양, '꼭 하고 싶은' 무엇인가를 반드시 갖도록 요구한다. 불행한 건, 아무 것이나 '꿈'이 될 수는 없다는 현실이다. 사회는, 사회의 지속가능성과 유지에 도움이 될 만한 여러 미덕들을 '생산성'이라는 카테고리에 분류해놓고, '생산성'과 '비생산성'을 마치 '선'과 '악'처럼 구분한다. 이렇게 꿈을 설정하고, 사회는 다음 작업에 착수한다. 열정과 희생의 강요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너의 꿈이라는 것도 쉽게 얻을 수는 없으니, 바보처럼 정진하도록 끊임없이 독촉한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서의 낙오자들에 대해서는 일말의 책임도 지지 않는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하다가, 재능이 없어서, 노력이 부족해서,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실패했을 뿐이라고 쉽게 비난하고 단정짓는다. 그러면서 어디선가 정말 '바보'처럼 '꿈'만을 보고 달려온 사람들의 신화적 성공담을 꺼내오고, 낙오자들의 실패담과 극명히 대조하는 작업을 거치며 꿈과 성취의 이야기를 지극히 미시적인 차원의 담론에 머무르게 한다.
어떤 사회든 이렇겠지만, 그 중에서도 정도라는 게 있을 것이다. 혹여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가 있느냐가 먼저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열정과 헌신만을 요구할 게 아니라, 그렇게 힘껏 달리다 부상을 입거나 지쳐 주저앉아도 차선책이 있을거라는, 미약한 낙관이라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정말로 '꿈'을 발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지다. '생산성'과 '비생산성'이라는 냉혹하기 짝이없는 이분법적인 구분 안에서 '꿈'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그래서 이 후에 후회와 아쉬움이 들어도 오직 자신의 선택에만 책임질 수 있는 수준에서 그치는, 그런 여유와 생각의 시간을 충분히 부여될 수 있어야, 조금은 덜 모질게 살아갈 수 있다. 다소 섣부르고도 단정적인 결론일 수 있지만, 이 두 가지 조건 모두에 한참이나 미달하면서도 '바보처럼 꿈을 좇'으라고 요구하는 사회란 굉장히 위선적이고도 꼰대같으며, 그래서 아주 질이 나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도 언젠가부터 이런 '꼰대같음'과 '질 나쁨'을 참 충실하게도 답습하고 있다. 그에 대한 반발심이어서 그런가, 언젠가부터 나는 '꿈'이나 '열정', '최선', 혹은 '노력'과도 따위의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알레르기 반응 같은 기분이 먼저 든다. 누군가 저 단어들의 첫 글자라도 입 밖에 내뱉으면, 혹시 저 사람은 공감 능력이 아예 결여된 사이코패스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아니면 아직도 노력과 열정의 신화적 미궁 안에서 안락하게 갇혀 있는 팔자 좋은 사람이거나. 냉소라면 냉소고, 무력함이라면 무력함이다. 그러다보니 '하고 싶은' 것들보다는 오직 '해야 할' 일들만을 생각하게 됐다. 쉽게 말하자면 뭘 하고 살든 돈이나 죽지 않을 만큼 벌면 되지, 하는 마음이다.
대작 드라마들이 유난히도 많이 쏟아진 작년 한 해였지만, 오히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JTBC에서 방영된 소박한 청춘물 <청춘시대>였다. 그 드라마의 대사들이 워낙 좋았는데, '죽을만큼 노력해서 평범해질 거야'라는 한예리의 대사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선명하다. 우리 사회의 젊음들을 관통하고 있는 한 문장이었다. 죽을만큼 노력하여 그 동안 오래도록 원했던 꿈을 쟁취하겠다는 건 사치에 가깝고, 오로지 남들처럼만 살 수 있는 '평범한 생활'에 목숨을 걸겠다는 것이다. '꿈'이니,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니, 혹은 '가슴 뛰는 순간' 같은 건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동떨어진 소리들이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절박하고 간절한 세대이며, 그런 우리 세대의 시대정신은 비관과 자학에 가깝다. 그런데도 세상에는 여전히, 젊을 때의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바보처럼 우직하게 꿈을 향해 정진하라고 되도 않은 소리를 늘여놓은 이들이 많다. 그 비슷한 이야기가 한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의 입에서 나오는 걸 보며, 어딘가 버려둔 희망을 애써 다시 찾을 '노오력' 같은 건 안 해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 정도였다. 그는 언젠가 또,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같은 말도 했다지. 종종 온 몸이 죽어라 피곤하여, 그래서 너무 깊게 자느라 꿈도 못 꾼다는 걸 그는 모르는 모양이다. 이럴 정도니, <라라랜드> OST 'Audition'의 부제 '꿈을 꾸는 바보들'을 처음 접했을 때도 상당한 거부감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아니 세상에, 거 아무리 모든 꿈이 이루어진다는 할리우드가 배경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한거 아니오, 감독 당신 너무 전작부터 재능과 노력, 그리고 광기의 만능주의에 천착하고 있는 거 같소, 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엠마 스톤의 노래는 '꿈을 꾸는 바보들'을 위한 헌사였다. 자신 이모의 기행을 나즈막하게 읖조리면서 시작한 이 음악은, 점차 진행됨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미쳤다'고 비춰질 지 모를 '열정'을 점진적으로 예찬하였고, 그것이 어떻게 세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끼칠 수 있는지를 힘있게 설득했다. '꿈'이라면 우선 기피감부터 드는 내게 이 노래만큼은 왜 그렇게 강한 거부감이 들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았더니, 우선 3분 이상 음악이 지속되면서도 단 한 번도 꿈을 꾸어야 한다고 강제하지 않는다. 그것만으로도 불편할 요소는 상당히 제거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동안 너무 많이 변질되어 이제는 무의미한 클리셰로 남은 '꿈', '열정', '미침', 그리고 '노력'등의 가치의 본질을 조심스럽게 상기시키고, 그게 엠마 스톤의 음색, 그리고 음악과 더불어 잔잔하고도 큰 감동을 선사했다. '꿈'이니 '열정'이니 하는 것들이 각각 악의적이고, 무책임하고, 무관심한 몇몇 기성 세대들의 꼰대적 언사 때문에 클리셰로 전락하였지만, 생각해보면 이 단어들 자체에는 죄가 없다.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을 풍성하고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가치들이다. 그러니 가사에도 이런 것들이 세상을 다른 색으로 볼 수 있는 열쇠라고 언급하는 것이리라. 이 시대에 '진짜' 꿈을 갖는 것은, 아주 차가운 센 강에 맨 발로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위험하고 미친 짓이라는 걸 노래의 화자는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꿈을 가져야 한다고 쉽게 선전하지 않는다. 다만 그 어려운 꿈을 갖게 됐을 때, 혹시 인생이 조금은 더 달라질 수 있지 않겠냐고 찬찬히 설득할 뿐이다. 그러면서 이미 꿈을 꾸고 있는 (이 미친) 바보들을 격려한다. 진정 힘이 되는 건 아주 저명한 누군가의 어줍잖은 멘토질이나 꼰대짓이 아닌, 옆에서 진심으로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이들이다. 어쩌면 이 것이야말로 위안의 본질일 지도 모르고. 'Audition'은 그런 의미에서의 위안이었다.
정확히, 또 엄밀히 말해서, '꿈 꾸는 바보'가 되기에는 내게는 너무 많은 불신과 냉소가 우선한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을 삶 전체와 영원히 격리시키는 것과, 이를 염두는 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에 먼저 몰두하는 태도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꿈'은 분명 아직까지는 현실 밖의 모호한 개념이다. 그 허상과도 같은 개념을 누군가가 하나마나한 소리로 위로랍시고 내뱉을 때는 가끔씩 역겨움도 느낀다. 그러니 '꿈 꾸는 바보'가 지금의 내가 견지하는 태도와 얼마나 먼 소리인 지는 말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나는 그래도 아직 비가 내리면 우산 없이 빗 속을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너무 많은 비는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오늘 정도의 비라면 얼마든 다시 맞을 용의가 있다. 이건 어쩌면 내게 남은 정말 몇 안 되는 낭만들 중 하나다. 눈이 내리면 길이 미끄러워지고 더러워지는 게 걱정되며, 그러면서 마찬가지로 행복함을 좇기 보다는 불행하지 않을 날들을 먼저 기원한다. 좌우명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밴드 넬의 보컬 김종완이 이야기 했던 '비가 오면 그냥 젖어야겠죠'이다. 하지만 그런 무력함으로 비를 맞으면서도, 가끔은 오늘처럼 그 안에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게 유난히도 기쁜 날이 찾아올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김종완 본인도 2012년 발표했던 'Standing in the Rain'에서는 '비가 오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지'라더니, 작년 신곡 'Day after day'에서는 '내리는 비에 춤을 추면 되지' 같은 긍정을 내비추기도 했다. 여행 중 수많은 날들 동안 비를 맞으면서도 오늘처럼 기쁜 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 가끔은 심한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꿈'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일단 기겁부터 하는 것처럼, 비가 조금만 내려도 우산을 쓰고 다녔다면, 오늘 같은 날 역시도 절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냉소와 비관, 혹은 무력함으로, 내리는 비와 같은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래도 우산만은 쓰지 않아 '꿈'이 불현듯 찾아올 가능성만큼은 아예 차단하지않는게, 어쩌면 꽤 중요한 삶의 자세일 지도 모르겠다고 오늘 이리저리 정처 없이 걸어다니며 생각했다. 그래서 에든버러 도심에서 한 시간 이상이 소요되는 거리의 바닷가까지 다녀오며 몸이 많이 젖었음에도, 그렇게 언짢거나 불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꿈'이나 '노력', '하고 싶은 것'과 '해야할 것'들에 대해 요즘 많이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미약하게나마 마음이 정리된 듯했다. 물론 이는 평생을 살아가며 고민하고, 번복하고, 다시 고민해야 할 주제겠지만. 오늘의 플레이리스토르는 당연히 엠마 스톤의 'Audition'을 고르려고 했으나, 돌아오는 길에 들었던 Birdy의 'People help the people'이 어쩐지 정말 좋아서 이걸로 골랐다. 몇 시간 내내 'Audition'을 들으며 온갖 생각을 했음에도 새로운 음악으로부터 감동 받을 여지 정도는 남겨두는 게 오늘 고민의 결론과도 어느 정도 궤를 같이하지 않나 싶다. 지금 당장은 꿈도 못 꾸고, 바보도 못 되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막상 써놓고 보니 너무 어거지로 이것저것 갖다 붙이는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