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바다의 매력

영국 에든버러 - 뉴캐슬

by Nell Kid
세상에 자연만한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뉴캐슬은 성스러운 도시다. 이름부터가 무려 뉴'캐슬'(Castle)이다. 딱 봐도 성과는 무관할 수 없는 곳 처럼 보인다. 이곳을 추천받은 건 여행 이틀째, 토트넘 핫스퍼 구장 근처의 펍에서 어떤 영국인들과 함께 맥주를 마실 때였다. 꽤 긴 기간동안 영국을 둘러볼 건데 어디가 좋겠냐고, 토트넘이 경기 시작하자마자 한 골을 허용하여 다소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던 그 살벌한 때에, 잠시 물어보았다. 거기서 몇 군데 진심어린 추천을 받았다. 그 중 가장 먼저 이야기 나온 도시가 바로 뉴캐슬이었다. 성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여기서의 성스럽다는, 상스럽다와 거의 같은 의미의 성스러움이다. 남쪽에 본머스가 있다면, 잉글랜드 북동부에는 뉴캐슬이 있다며 이곳을 그렇게나 예찬했다. 조심스럽게 구글 지도에서 저장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지나며 몇몇 영국 사람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을 기회가 더 있었는데, 뉴캐슬은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었다. 누군가는 그랬다. 이곳이 잉글랜드의 이비자 같은 곳이라고. 이비자라니. 세상 다른 곳의 대지의 신은 가이아여도 그 곳만큼은 디오니소스가 군림하고 있는 곳 아닌가. 이런 측면에서도 정말 성스러운 도시군. 따라서 한껏 정든 에든버러를 오늘 아침 떠나면서도, 어쩐지 큰 아쉬움은 들지 않았다. 머무를만큼 머물렀기도 했고.


한반도로 따지자면 강릉이나 속초 정도에 위치한 도시가 바로 뉴캐슬이다. 한 마디로, 영국의 동해안에 인접한 곳이다. 에든버러도 영국의 동쪽에 있으니, 이곳을 연결하는 기차는 본의 아니게 바다 열차가 됐다. 기차 안에서 바라본 풍경이 뜻하지 않게 좋아 한참을 감상했다. 정말로 영국의 이비자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기차 안 이동 매점에서 코카콜라 한 병을 충동 구매했다. 그렇다, 나의 행위에는 사실 별로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한껏 좋아진 기분을 약간의 탄산으로 더욱 치어업 베이비 좀 더 힘을 내 시키기 위함에서였다. 치익, 탄산 빠지는 소리가 경쾌했다. 열차에 오른지 한 시간 반 쯤 되었을 때 뉴캐슬에 도착했다. 숙소는 역에서부터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는데, 지도상으로 단 두 번의 우회전만 하면 되어 꽤 간단했다. 에든버러 첫 날, 캐리어를 끌고 그 언덕을 올라가던 게 생각났다. 오늘의 평탄한 아스팔트 길이 이렇게나 고마울 수 없었다. 뉴캐슬에서 머무르게 될 호스텔은, 글래스고에서 처음 이용했던 호스텔과 같은 프랜차이즈 숙소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을 자랑하고, 무엇보다 우선 깔끔하다. 무려 직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아침마다 방 안을 정리해주는 게, 굳이 호스텔인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이들은 게다가 똑같은 유니폼까지 입었다. 조금은 고급진 숙소에 머무르는 착각도 생기게 한다. 방 안 마다 화장실과 욕실이 따로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한정된 변기를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이 사용하기에 당연히 더 청결할 것이고, 행여 변기 안에 못 볼 꼴의 남의 똥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무르는 참상을 경험할 확률도 적다. 단점은 주방이 없다는 건데, 어차피 나는 거기서 커피밖에 안 끓이니 딱히 불편한 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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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분주하게 일어나 이곳까지 오느라 조금은 지쳤고, 체크인을 한 뒤에는 휴식을 취했다. 성스러운 곳에 왔으니, 밤 늦게까지 깨어있을 체력도 비축해야 했다. 그러면서 구글에 'Newcastle Must See'를 검색했다. 관광지들이 몇 개 주욱 나왔는데, 그렇다고 마땅히 끌리는 곳도 없었다. 순간 굉장한 실망만을 안고 돌아왔던 런던 근교 노리치가 떠올랐다. 아, 그놈의 노리치. 그리고 그 비싼 기차값. 새삼 열이 받는 장소다. 몇 년 전 잉글랜드 축구팀 리버풀이 어쩐 일인지 우승 경쟁을 할 때 꽤 중요한 경기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자, 당시 그 팀의 주장 스티브 제라드가 선수들을 불러 이런 명대사를 하나 남겼다. "우리는 노리치로 간다." 안타깝게도, 그 해 리버풀은 우승하지 못했다. 노리치는 그 정도 기억으로만 남았어야 했다. 정말 거기를 왜 갔는지, 거 참. 혹시 이 뉴캐슬도 노리치만큼 볼 것 없는 도시는 아닐까 내심 겁이 났다. 직전 도시였던 에든버러가 워낙에 훌륭한 곳이었다. 오죽하면 이틀을 더 연장했을 정도였다. 도시의 경관 자체가 에든버러의 그것과 비교할 수 없었다. 에든버러는 내게 유네스코라는 국제 기구의 신뢰감을 회복시켜 준 위대한 도시였다. 하지만, 스페인 이비자가 박물관과 미술관, 혹은 역사적 유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 그토록 자자한 명성을 얻은 건 아니다. 본디 나는 이곳을 성스러운 마음으로 찾아왔다. 성(Castle)스러움을 통하여, 새로운(New) 삶을 찾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뉴캐슬(Newcastle)에 기대한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성스러움은 얼어죽을. 거리로 나왔는데 평범도 이렇게 평범한 곳이 있을 수가 없었다. 뭐, 에든버러라는 유적 도시에 오래도록 머물다 보니 이런 평범한 도회적임도 꽤 신선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내가 이럴려고 여기온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자괴감이 들어 조금 괴로울 지경이었다. 솔직히, 아니 이건 조금 비속어를 섞어, 까놓고 말해서, 명동 거리가 더 나아 보였다. 최소한 거기서는 조금 다채로운 외국어라도 들을 수 있다. 어딘 중국어, 저긴 일본어. 뉴캐슬의 중심 거리는, 하아, 성스러움도 없었고, 상스러움도 없었다. 한국에서도 클럽을 다닌 횟수가 거의 전무하고, 그 와중에 겁도 많고 소심하여 화끈함 같은 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살아오다, 이렇게 이역만리 떨어진 영국땅에서 비로소 인생의 새 페이지를 열어보겠다는데, 어찌 뉴캐슬은 이리 황량할 수 있는가 싶었다. 하지만 어차피 그 동안의 내 여행은 15세 이하 관람불가 영화나 건전가요 수준에서 머무르는 정도였다. 그래, 처음부터 화끈함은 없었으니, 일관성이라도 챙겨야지. 말만 이렇게 하는거지, 사실 나는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 원래 이런 애들이 입으로만 아는 체 할 뿐이다. 잠깐의 일탈심리를 반성하고, 나는 다시 핸드폰을 꺼내어 지도 어플을 실행했다. 어디를 가면 괜찮을까 고민하다, 문득 이곳이 동해안 근처임이 생각나서 바로 바다로 향했다. 똑같은 동해 바다인데, 왜 외국의 동해 바다는 더 설레고 기대되는 건지, 사대주의 때문인가. 뉴캐슬 도심에서 바다까지는 교외선으로 40분 정도 소요된다고 지도는 설명하고 있었다. 음, 이건 충분히 갈 만 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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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캐슬의 교외선 이름은 '메트로(Metro)'다. 아무리 철도의 나라 영국이라지만, 도시 자체의 교외선이 있는 곳은 몇 안 된다. 그 중에서도 지하철까지 있는 도시는 훨씬 드물고. 런던과 글래스고가 아마도 유이하다. 그나마 글래스고에는 노선이 하나밖에 없다. 여담이지만, 도시마다 지하철을 부르는 명칭이 다른 게 재미있다. 런던에서는 'Underground'고, 글래스고에서는 'Subway'다. 따라서 런던에서 지하철을 타려면 'U'자 표시를 찾아다녀야 하고, 마찬가지로 글래스고에서는 'S'표시가 적힌 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뉴캐슬의 메트로는 지하철과 교외선이 섞인,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지하철 1호선 같은 느낌이다. 노선 대부분의 역들은 지상에 위치하나, 도심 근처의 철도는 지하로 지난다. 따라서 승차할 때의 승강장은 지하였는데, 목적지의 역은 작은 간이역과 비슷했다. 철도 수리때문에 메트로가 바다까지는 운영되지는 않았고, 중간에 내려 버스로 환승해야 했다. 런던에서의 지하철 파업 이후로 열차와 관련된 돌발 상황은 이제 별로 놀랍지도 않다. 그건 내가 여행 베테랑이 됐다기 보다는, 이곳의 백업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있기 때문이다. 지하철이나 열차가 본래 계획에 차질이 생겨 운행되지 못하는 상황에는, 반드시 대체 버스를 운영하여 공백을 최소화 한다. 이건 영국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다. 촌각을 다투는 사람이 있다면 이 과정이 조금 번거롭고 초조하겠지만, 나처럼 남는 게 시간이요, 가진 것도 시간 뿐인 여행객에게는 그저 고맙고 든든한 연계 체계다.


영국의 동해 바다는 정말 좋았다. 정말 좋았다 이외에는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정말 좋았다. 그야말로 바다다운 바다였다. 역시 이러니저러니해도 어느 나라든 바다는 동해구나 싶었다. 주변의 지형들도 바다와 조화를 이루어 더욱 멋졌다. 에든버러의 회색빛 웅장한 건물들 사이에서 일주일 정도 생활하다, 탁 트인 바다를 보니 신선한 상쾌함도 느꼈다. 그렇다. 나는 이렇게나 정이 없는 사람이다. 떠난 지 열 두 시간도 안 되어 그토록 사랑했던 에든버러를 험담하다니. 바닷가의 정취가 아주 훌륭했고, 시원했다. 이 곳의 동쪽으로 계속 가면 덴마크에 도달한다. 한국의 속초나 강릉에서부터 일본까지의 직선 거리보다 훨씬 더 길다. 길겠지, 아마, 그렇겠지. 실제로 확인을 해 보지는 않아서 모르겠지만, 아마 비슷하진 않을 거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의 동해보다도 훨씬 더 끝 없이 넓은 것처럼 느껴졌다. 이쯤되니 정말로 사대주의 때문인 것 같은데. 하지만 이 곳의 바닷가가 똑같은 동해임에도 한국에서보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이유가 문득 생각났다. 덴마크까지의 거리 때문이 아니라, 해변에 잡다한 상점이나 노점이 없어 오롯이 바다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게 그 이유였다. 네온 사인의 번잡한 간판들도 없었다. 그러니 주변 절벽을 비롯한 지형들과 바다의 어우러짐을 더욱 눈여겨볼 수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동해에도 이 정도의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 분명 있을 곳이다. 문제는 그런 곳마다 숙박 업소와 횟집 등이 무분별하게 입점한다는 점이다. 여행을 다닐 때마다, 한 도시를 디자인하고 계획할 때에 있어서의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안목이 얼마나 중요한 지 매 번 느끼게 된다.


에든버러도 그랬고, 영국의 동해안은 전반적으로 기후가 따뜻하고 청명하다. 덕분에 서쪽의 맨체스터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던 맑은 하늘을 감상할 수 있다. 어제 에든버러에 비가 와서, 그러니까 즉 구름이 영국의 동쪽 지방을 지나서 그런가, 이게 지리학적이나 지구과학적으로 맞는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무슨 이유에서든 뉴캐슬에서는 푸른 바다만큼이나 푸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바다를 오후에 갔다보니 일몰 때문에 맑은 하늘 오래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해질녘에 오묘한 빛을 내며 변하는 경광을 감상할 수 있었다. 여기가 동해니,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아닐테고. 아닌가. 서양에서는 반대인가. 과학의 과자만 들어도 치를 떨 정도로 이 과목을 학창시절 내내 저주하고 증오했었는데, 가끔은 이런 과학적 호기심이 피어날 때가 있다. 오늘 하늘을 보면서라든지, 아니면 위스키 공장의 증류소를 견학할 때 라든지. 도대체 과학이라는 게 실생활에 무슨 쓸모가 있다고 내가 이 따위 과목을 공부해야 하나, 라고 항상 시험때마다 어마어마한 불평불만을 내뱉고는 했다. 이제야 과학의 효용 가치를 조금 알 것 같다. 그걸 술을 마실 수 있는 이 나이가 돼서, 거기에 한국으로부터 비행기로 14시간 떨어진 곳에 와서야 느끼게 된 게 유감이지만. 잠깐, 이렇게 따지자면 과학에 대한 무지는 내탓이 아니라 전적으로 교육부 잘못 아닌가. 나에게는 잠재력과 숨은 호기심이 있었는데 그걸 끌어내지 못했으니. 오호 통재라 이 개탄스러운 교육 환경이여.


본디 바닷가는 그런 매력이 있다. 특히 겨울 바다가 더 그런데, 그걸 한 마디로 하자면 성스러운 떨림이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삶의 우수와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에 젖은 두 남녀가 각각 홀로 바다를 보러 왔는데, 정작 파도 대신 서로의 눈을 보고, 두 눈이 마주칠 때 함께 바다 바람을 맞고, 그렇게 이러쿵저러쿵하다가 이내 백사장을 함께 걷지는 않을까, 하는 착각이 들게 만드는 그런 매력. 이를 홍상수 영화식으로 더 자세하고 생생히 표현하자면, 눈이 맞은 다음에 나는 뭐 하는 사람이에요, 당신 정말 예뻐요, 어떻게 이렇게 예쁠 수 있어요, 나 당신처럼 예쁜 사람 처음이에요, 따위의 말을 늘여놓다가 갑자기 장면이 바뀌고, 나는 그녀에게 우리 술 마실래요, 라고 물어본 뒤 함께 횟집 같은 곳에 앉아 마주보며 소주를 마시고, 그러면서 다시 붉어진 얼굴로 예뻐요, 정말 예뻐요, 나 당신을 사랑하는 것 같아요, 사랑해요, 이렇게 고백하고, 여자는 도도한 표정으로 저를 아세요, 제가 누구죠, 저에 대해서 뭘 알죠, 이런 걸 물어보고, 나는 다시, 알아요, 아니 몰라요, 몰라도 돼요, 그런데 정말 예뻐요, 사랑해요, 이렇게 답하며, 이러다 갑작스럽게 화면이 클로즈업 되는, 뭐 이 비슷한 매력이 바닷가에 있다. 영국에서는 횟집이 없으니 단촐한 펍에 가야겠지만. 홍상수 감독이 자신의 신작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왜 맥줏집을 배경으로 영화를 찍은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물론 내 여행은 다시 말하지만 <걸어서 세계속으로>보다 더 건전한 여정이다. 홍상수 영화는 둘 째 치고, 뽀로로 비슷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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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성스럽지도, 상스럽지도, 홍상수스럽지도, 또 뽀로로 같지도 않은 하루였지만, 청명한 하늘과 끝없는 바다를 보며 기분은 무척이나 상쾌해졌다. 이런 말 하면 그 높은 언덕에 성 쌓고, 돌 옮기고, 마을까지 이룬 에든버러의 역사에 조금 미안하지만, 새삼 자연만한 게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바닷가가 정말 예뻐서 다행이었다. 조금은 무미건조할 수 있던 뉴캐슬이었는데, 근거리에 그리도 멋진 바다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곳은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 되었다. 물론 처음 관심사에서는 상당히 변질되긴 했지만.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로는 캐스커의 '세상의 끝'을 선곡했다. 영국에 30일 이상 머무르고 있는데, 여기가 섬 나라라는 걸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성스러움도 상스러움도 없긴 했지만, 그래도 하나의 수확은 있었다. 나중에, 그러니까 아주 많이 늙었을 때 돈을 좀 모았으면, 이런 한적한 바닷가에서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의 핵심이 '바다'가 아니라 '돈'인 게 조금은 슬프다. 열심히 살아야지. 아, 돌아오는 길에는 그믐 비슷한 달을 보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들 중 하나인 장강명 작가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표지같은 모습이었다. 그림같은 풍경이라니, 이건 이럴때 쓰는 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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