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뉴캐슬-리버풀 (2016~2017 세계 여행)
버스와 꼬마와 축구경기
비틀즈의 도시이자, 내 가장 친한 친구의 표현을 전적으로 따르자면, '잉글랜드 프로축구판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 리버풀로 이동했다.뉴캐슬이 영국의 극동쪽에 위치했다면, 리버풀은 반대로 극서 지방에 있다. 따라서 오늘의 이동은 본의 아니게 영국을 횡단해야 하는 여정이었다. 영국이 아무리 남북이 길고 동서로는 좁은 나라라 할지라도, 한 나라의 극과 극을 횡단하는 건 어디든 어려운 일이다. 교통 사정이 괜찮다면 한 시간 정도만에 도착할 수 있는 인천 조차도 서울에서 가기에는 조금 부담스럽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자. 거기서 동의가 안 되면, 인천에서 속초, 혹은 강릉까지의 거리를 상상해보는 것도 괜찮다. 뉴캐슬에서 리버풀까지의 이동은, 대략 그런 느낌이었다. 다행히 오후 1시 버스를 예약해서 체크아웃 직전까지 푹 쉴 수 있었다. 어제 혼자서 뉴캐슬의 밤문화를 맛이라도 보겠다고 술집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꽤 많은 맥주를 마셨더니, 다소의 숙취감도 느껴졌다. 꽤 많은 체크아웃을 하다 보니, 이제는 시간을 계산하여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런던에서 카디프로 가는 날 아침에 온갖 부산을 떨어대던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혼자하는 여행이니 이 정도 뿌듯함이라도 있어야 그나마 덜 외롭고, 동기부여도 된다.
그리 심하지는 않은 숙취를 그래도 조금 달래고, 또 장거리 이동을 위한 열량을 보충하기 위해, 나는 오늘도 Five Guys라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집을 찾았다. 햄버거 가게라고 흔하디 흔한 맥도날드나 버거킹 취급을 하면 곤란하다. 이곳의 햄버거는 완전 식품이다. 햄버거의 두께부터가 우선 어마어마하다. 고기 패티도 두 장이 들어가있고, 잔뜩 늘어난 치즈는 당장 물어뜯고 싶은 내 원초적 야만성을 자극한다. 이곳은 우선 기본 햄버거를 주문하고, 거기에 토핑들을 추가하는 시스템이다. 나는 기호에 맞게 피클, 할라피뇨, 양상추, 토마토, 양파, 버섯, 그리고 핫소스를 선택했다. 33일의 여행 중 근 25일에 가깝디시피 먹어댄 밀도있는 햄버거 경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내 입맛에는 저 조합이 최선이다. 그렇게 완성된 햄버거는, 따로 주문한 어마어마한 양의 감자 튀김과 함께 갈색 봉지에 담겨 나온다. Five Guys를 이야기 하며 감자 튀김 이야기를 또 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곳은 정확히 말해서 햄버거&프라이 가게이기 때문이다. Five Guys에 들어가면 다소 쌩뚱맞아 보이는 땅콩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런던같이 사람들이 가득 찬 곳에서는 줄을 기다리며 앞에 놓인 땅콩을 몇 개 집어 먹는 것도 나름의 재미다. 땅콩이 이렇게나 잔뜩 있는 이유는, 바로 감자 튀김을 튀길 때 신선한 땅콩 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감자 튀김을 한 번 맛 보면, 맥도날드 등의 프랜츠 후라이는 면발처럼 느껴질 정도로, 두께도 넉넉하여 씹는 맛도 있다.
완전 식품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햄버거 세트를 순식간에 흡입하고, 남은 콜라를 원샷하듯 빨대로 빨아들였다. 아, 이 고전적인 치즈버거의 아름다움이란. 빵과 빵, 즉 탄수화물과 탄수화물 사이에 존재하는 먹음직스럽고 육즙 가득한 고기 패티, 그 단백질에 풍미를 더하는 치즈, 그리고 햄버거의 기본 요건인 이들 재료들을 한껏 빛내주는 토핑들과 소스까지. 어느 정도의 자본력만 있다면 한국에 반드시 입점시키고 싶은 그런 햄버거 가게가 바로 Five Guys다. 먹을 때마다 매 번 감탄하게 되는 음식점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곳의 햄버거 만큼은 경제학 이론에서의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을 완벽하게 무시한다.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햄버거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적 없었다. 손으로는 이 글을 쓰고 있으면서도, 내 혀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두꺼운 햄버거의 촉감과 질감, 그리고 맛과 향을 부지런히 복기하고 있다. 런던을 떠나고 가장 아쉬웠던 게 이 햄버거 가게를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Five Guys가 뉴캐슬 숙소에서 단 3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고작 몇 번 먹어봤으면서도, 나는 마치 학창시절 내내 마음을 애태웠던 첫사랑을 재회한 것 만큼이나의 감동을 느꼈다. 역시, 사랑의 깊이는 함께 나눈 시간과 반드시 비례하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식사를 하고, 천천히 인터넷 검색을 하며 시간을 때우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됐을 때 터미널로 향했다. 오전의 뉴캐슬은 충격적일 만큼 심심하고 지루했다. 단 몇 시간 전, 그러니까 어제 저녁에, 여기 전체가 광란의 나이트 클럽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런 요망한 도시 같으니라고. 오래 머물만한 곳은 못 되는 듯했고, 실제로도 2박 3일의 체류가 참 적절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꽤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도시였다. 어쨌든 그 동안 방문했던 영국의 도시들중에 이토록이나 대놓고 밤 문화가 발달된 곳은 없었다. 뉴캐슬이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나이트 라이프'를 이야기 할 정도였다. 직전의 도시였던 에든버러에서 야간 시간대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유희거리가 '유령 투어'였음을 떠올려 보자. 뉴캐슬은 정말, 어마어마하게 성스러운 도시였다. 도시가 성스럽다고 해서 모든 거주민들과 여행객들에게 은총과 축복이 내려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남들이 기쁘고 성스러운 걸 보는 것 만으로도 어제 저녁은 꽤 놀라운 시간이었다. 뉴캐슬, 아마 이제부터 너의 이름을 듣는다면, 나는 아무도 이해 못 할 약간의 미소를 머금게 될 것 같아.
리버풀은 이번 여행에서 영국에서의 마지막 도시다. 그건 곧, 오늘 승차했던 버스가 영국에서의 마지막 시외버스라는 의미다. National Express라는 이름의 이 버스 체계를 알게 된 건 카디프에서였다. 열차값보다 훨씬 산 버스의 가격에 환호하고 열광했던 게 벌써 보름이 훨씬 지났다. 그 이후로 도시간 이동에 있어 내가 가장 먼저 고려했던 선택지는 단연코 버스였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프리미엄 우등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고, 그 특징 중 하나로 자리마다 USB 충전 포트가 있다는 걸 설명하는 기사를 본 적 있다. '프리미엄'이라는 수식어가 우습게도, 영국의 모든 National Express 버스들은 좌석마다 충전 포트를 비치하고 있다. 좌석도 나름대로 푹신한 편이고. 거기에 버스마다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물론 그 화장실의 청결 상태는 운전사의 성실함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하나하나 따지고보면 물론 '프리미엄'과는 거리가 멀겠지만, National Express 버스들은 꽤 괜찮은 가격에 만족할 만한 승차감을 제공했다. 최소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그렇게도 많은 버스를 타면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다만 돈이 좋다는 생각 정도는 아주 가끔 들었다. 이게 열차였다면 이미 몇 시간 전에 도착했을 텐데, 따위의 가정을 할 때 였다. 하지만 배낭 여행객인 내게는 이만한 교통수단이 또 없었고, 꽤 많은 거리를 버스로 이동했는 데도 책임감 있게 안전하게 운전해준 영국 버스 운전사들의 직업 윤리에 경의와 감사를 표한다.
뉴캐슬에서 리버풀로 오는 길에는 맨체스터를 거쳐야 했다. 1박 이상을 했던 영국의 도시들 중에서 단연 최악을 꼽자면 맨체스터다. 아직 리버풀을 본격적으로 여행하지 않아서 100% 확신은 못하겠지만, 결과는 변함 없을 것이다. 체류기간 내내 비가 내렸고, 그렇다고 볼 것들이 많은 편도 아니었으며, 호스텔 역시도 가장 형편없는 곳이었다. 그런 맨체스터인데, 버스가 이곳을 지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틋함을 느꼈다. 꼴에 3박 4일 있었으면서도, 맨체스터 버스 터미널을 비롯하여 이런저런 도시 경광들이 애틋했다. 여행을 떠나는 건 분명 이런 이유에서였다. 한 번이라도 발을 디딘 곳을 잠깐 스치기만 해도 그 날의 공기, 날씨, 온도, 첫인상 등이 모두 생각나며 인식과 시각의 지평이 한껏 넓혀지는 듯한 짜릿한 경험. 내게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시티라는 두 개의 축구단 정도로만 인식됐던 맨체스터가 이렇게 애틋하게 느껴질 날이 올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다. 심지어 그 곳에서 여행하고 있을 때조차도 맨체스터가 기억속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을 거라는 기대조차 없었다. 자유 여행의 대부분은 뜻하지 않은 것들을 마주하고 경험하며 이루어 진다. 그 경험들의 방정식을 통한 산출값 또한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뜻하지 않은 때에 찾아오는 경우들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 도중에 쉽게 실망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게 어떤 형태의 기억으로 남을 지는 누구도 모르는 거니까.
이런 생각들로 다소 기분이 먹먹해지고,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한껏 제고된 감수성에 만취할 무렵에, 갑작스럽게 눈이 아주 커다란 아이 하나가 불쑥 옆에서 튀어나와 내게 얼굴을 내밀었다. 버스에 타면서부터 시끄러웠던 꼬마였다. 귀엽기는 했으나, 그게 다였다. 나는 아이들을 별로 안 좋아한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어떻게 애들을 싫어할 수 있냐, 너도 한 때 애였지 않느냐, 뭐 이런 비판 아닌 비판을 많이 들어왔으나, 그렇다고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자유분방히 돌아다니는 애들이 마냥 예쁘게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애들이 다 그렇지라며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부모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 예쁘고 귀여운 건 자기 새끼라서 그런 거고, 남들이 보기에는 명백한 소음 공해다. 오늘의 이 꼬마도 상당히 공해스러운 녀석이었다. 동그라고 커다란 눈에는, 나는 장난꾸러기입니다, 라고 쓰여있는 듯했다. 하긴, 어른인 나에게도 지치고 지겨울 만큼의 긴 운행 시간이었으니, 저 꼬마애는 오죽할까, 이런 측은지심도 들었지만 그렇게 지치고 지겨우면 자야지! 왜 버스 복도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시끄럽게 소리를 지를까, 도대체 왜! 그리고 도대체 왜 부모는 이 아이를 훈육하거나 제지하지 않는 걸까. 뭐 그런 원망과 분노, 짜증이 섞인 눈초리로 꼬마아이를 바라 보았는데, 애가 배시시 웃었다.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어 '쉿'이라고 했더니, 그걸 또 따라하고 있었다. 내가 자기랑 장난을 치려는 줄 알았는지 계속 내 주위를 맴돌았다. 맙소사.
그래도 인류애적인 넓은 마음으로, 예전에 개를 키울 때 했던 손장난과 몸짓을 취했는데, 그게 이 꼬마의 취향을 저격한 듯 하였다. 자지러지게 웃으며 나를 따라하는 꼬마에게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더 놀아줄 수도 없는 애매한 상황에 처했다. 왜 하필 맨체스터를 지나며 나 혼자의 감수성과 고민이 폭발하려는 이 시점에, 그러니까 사색다운 사색을 모처럼 만에 조금 즐겨보려는 이ㅍ때에, 꼬마가 나타나서 나를 방해하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버스에는 다른 승객들도 많았는데 유난히 내게만 관심을 보였고 장난을 걸었다.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라서 신기함을 느꼈나. 그런데 걔도 아랍 계통인 것 같던데. 그렇다면 동질감인가. 어찌됐든, 부모마저 훈육과 제재의 의무를 유기해버린 이 불행한 버스 안에서, 나는 꼬마의 어린이집 선생님이자 베이비시터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아예 나중에는 내 옆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말들을 늘여놓았다. 영어가 아니어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다. 그래도 애가 하는 말이 뭐 특별한 게 있을까 싶어 대충 꼬마의 손짓을 보고 알아 듣는 시늉을 했다. 개를 키웠던 경험이 여기서도 조금 도움이 됐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우리 집 개의 속마음을 조금이나마 느껴보기 위해 다양한 도킹을 시도했던 게 기억이 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꼬마가 내게 새로운 몸짓을 요구하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이 와중에도 왜 쟤를 지루하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러면서도 또 꼬마를 웃기기 위해 궁리하는 내 자신도 참 어이 없었다.
세상 모든 부모는 위대하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어린 꼬마가 겨우 입을 떼어 어느 정도의 문장을 완성할 수 있을 때까지 저런 모습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래서 혹시라도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아이를 낳는 건 신중에 신중을 기할 것이다. 이 전에는 이 나이 또래의 어린 아이들을 보면 동생같았는데, 요즘에는 내가 결혼만 일찍 했다면 너같은 아들이 하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다. 어쩐지 나이를 먹은 것 같아 새삼 서글펐다. 꼬마의 나이는 세 네 살 쯤으로 보였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에서 금메달 수상 경력을 지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국가대표 승마선수의 아이 나이를 떠올려 보았다. 그걸 기준점으로 잡으니 꼬마가 더더욱 아들뻘로 보였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부모됨에 있어서 큰 회의를 느꼈다. 꼬마는 한참 후에야 부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고, 나는 온 몸의 기운이 다 빠져있었다. 남은 운행시간 동안은 그냥 잠이나 좀 자면서 시간을 보내야지 싶어서 에든버러에서 구매했던 꼬마 위스키의 남은 두 모금을 다 마셨다. 그러고 조금 자다가 일어났더니 버스는 리버풀에 거의 근접해있었다. 너무나도 다이나믹했던 꼬마 때문에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 데도 지쳐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안 그래도 무거운 캐리어가 더 무겁게만 느껴졌다. 평소에는 호스텔만을 사용했었는데, 리버풀의 호스텔들이 생각보다 비싸기도 하고 모처럼만에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내 생에 최초로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예약했다. 이름은 거창한데, 쉬운 말로 하면 '민박'이다. 방 하나를 통째로 혼자 쓰는 건 여행 초반의 본머스 이후 처음이다. 그걸 과시하기라도 하듯, 방에 들어서자마자 여기저기에 짐을 펼쳐놓았다. 그래서 지금 이 방은 상당히 개 판에 가깝지만, 어쩐지 그걸 보면서도 흐뭇함이 든다.
오늘은 리버풀과 첼시의 빅매치가 있는 날이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는 플레이오프나 포스트시즌 같은 게 없고, 오직 정규시즌의 결과로만 순위를 결정하는데, 따라서 오늘처럼 상위권팀들의 격돌은 승점 3점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맞대결에서 승리를 하면 그만큼 더 달아날 수 있고, 반대로 패배한다면 꽤 큰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처럼 시즌의 절반이 지난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펍에 들어가 남은 후반전을 시청했다. 맨체스터의 올드트래포드에서도 한 번 경험했지만, 의외로 경기장 주변 분위기는 적막함에 가깝다. 게다가 오늘같은 빅매치가 있는 날에는 도로까지 통제하여 거의 소개령에 가깝게 인적이 드물다. 그래서 오늘 경기의 뜨거움을 느끼는 건 쉽지 않았지만, 근처 경기장으로부터의 함성이 들려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숙소는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와 걸어서 1분이 채 안 되는 거리에 위치해 있다. 한 마디로 이 동네는 리버풀에 죽고 리버풀에 사는 곳이다. 그러다보니 나도 명예 리버풀 시민이 된 것처럼 경기를 관람했는데, 결과는 다행히도 리버풀이 동점골을 넣으며 무승부로 마무리 되었다. 중간에 패널티킥 위기가 있었는데, 골키퍼가 선방하며 패배를 면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때 리버풀의 메인 스폰서가 맥주 브랜드 '칼스버그'였던 적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펍에서는 '칼스버그' 맥주만 연달아 마셨다. 술이 들어가고, 리버풀의 동점골도 들어가니, 그제서야 버스에서의 꼬마의 만행이 다소 용서되는 느낌이었다.
조금 기분 좋게 취한 상태로 구글 지도를 실행했다. 내가 그동안 방문했던 영국의 도시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런던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리버풀에 오는 건 그저 너무나도 먼 일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영국에서의 마지막 종착지인 리버풀에 도착했다. 물론 이곳에서 열흘 넘게 머무를 것이며, 그래서 마지막 이별치고는 다소 길고도 질척거리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이 도시 이후에는 또 다른 낯선 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묘한 감정을 자아낸다. 조금은 먹먹하고, 애틋하고, 또 한 편으로는 후련하면서도 걱정되기도 한다. 리버풀에서의 12일이 너무 긴 것 아닌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지난 여행을 정리하고 복기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그러는 사이에 벌써 이곳에서의 하루가 흘렀다. 역시 순간이라는 건 아무리 노력해도 붙잡을 수 없기에 매 번 아쉽고, 소중하고, 후회되는 놈이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아델의 'When We Were Young'이다. 그냥 'Young'하다 못해, 너무 어리디 어렸던 오늘 버스에서의 장난기 넘치는 꼬마 아이 때문에 선택한 노래다. 결론은, 안 그래도 빡센 여정이 그 녀석 때문에 존나 빡셌다는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