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리버풀 (2016~2017 세계 여행)
여전히 유효한 비틀즈의 상상력
고백하자면, 나는 한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 즉, 밴드 활동을 했다는 소리다. 학교 축제에도 올랐고, 연말에는 정기 공연도 했다. 몇 십 명이 들어올 수 있는 공연장을 대관한 규모였다. 내 방에는 기타도 두 개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전형적인 밴드맨 같다. 청춘의 낭만은 기타 스트로크와 함께 한다는,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식의 낭만이 가득했던 나의 20대 초반 처럼으로도 보인다. 최소한 저기에 거짓은 없다. 다만 조금 실상은 달랐다. 우선은 기타들부터. 우리 집 두 개의 기타들 중 하나는 내 것이 맞다. 낙원 상가에서 18만원 정도를 주고 구매했다. 하지만 다른 하나는 대학 동기의 것이다. 나와 같은 밴드에 몸 담았던 친구였다. 아마 그 친구도 18만원 비슷한 정도의 돈을 내고 밴드를 구매했으리라. 어쩐 이유인지 내가 그 기타를 보관하고 있는데, 그 친구는 단 한 번 도 내게 그 기타의 안부를 물어본 적 없다. 우린 그런 밴드였다. 속된 말로 나일롱 밴드고, 시대의 범죄적 흐름에 발 맞추자면 페이퍼 컴퍼니 밴드다. 대학교 같은 과 같은 반 동기들이 정기적으로 술을 마시기 위해, 뒷풀이 전에 기분 삼아 연습을 잠깐 하던 밴드에 가까웠다. 내가 이곳에서 연주했던 음악은 각각 3분 내외의, 데이브레이크의 '좋다'와 izi의 '응급실'이었다. 연말 정기 공연에서도 이 두 곡에 참여했다. 한 학기에 한 곡씩 연습한 셈인데, 모르긴 몰라도 바흐나 모차르트의 오케스트라 교향곡도 이렇게 길게 붙잡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니 아주 정직하게 말해서, 나는 제대로 밴드 음악을 해 본 경험이 거의 전무하다. 기타는 너무도 어려운 악기였다. 기타를 처음 잡고 나서야, 나는 어릴 적 연습했던 피아노가 얼마나 상대적으로 간단한 악기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한 곡의 반주만 겨우 가능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기타리스트들을 존경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남은 인생에서 밴드란 정말 최선을 다 하여 오직 듣고 즐기겠다고. 그래도 이름뿐인 밴드였지만, 순기능이 없진 않았다. 전에는 오직 보컬에만 주목했는데, 이제는 밴드 전체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적재적소의 드럼과 화려한 기타, 그리고 묵묵하면서도 매력있는 소리의 베이스 음이 그 전에는 모두 뭉뚱거려 MR과 다름없는 '반주'였다면, 이제는 독립된 연주들로 인식되는 정도의 수준은 되었다. 그러면서 밴드 음악에 더욱 매료됐다. 아마 그런 것도 있었을 테다. 나는 도무지 불가능한 기타 연주나 밴드 합주를 직업삼아 돈을 버는 이들에 대한 막연한 동경 비슷한 것들. 자주 듣는 밴드 수준이었던 넬을 본격적으로 '덕질'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 부터였다. 보컬과 멜로디라는 단순한 이분법에서 벗어나 조금 더 다채롭게 그들의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카타르시스와 울림을 느꼈다. 그 덕에 나는 넬의 음반을 모으고, 공연을 따라다니고, 영상도 찾아서 보며, 가끔은 그들에 대한 글도 쓴다. 밴드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밴드 활동을 대학교 1학년 때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넬을 '덕질'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결국은 기타 코드 하나 제대로 손에 익히지 못하고 밴드를 그만두었지만, 대신 인생의 아이돌 하나를 얻을 수 있었다.
리버풀에 오기 전까지, 나는 영국 다른 도시들의 국가는 'God saves the Queen'이어도 이곳 사람들의 국가만큼은 'Let it be'이지 않을까 하는 환상이 있었다. 물론 정말로 공식적인 국가가 'Let it be'가 될 수는 없겠지만, 세상 모든 밴드들의 아이돌이자 모체, 그리고 전설인 '비틀즈'가 탄생한 곳이니 도시 여기저기에 이들의 음악이 울려퍼질 거라 생각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이 함께 'Let it be'를 부르고 있다면, 지금은 은퇴했지만 한 때의 기타리스트였다는 음악가적 직업윤리와, 또 지금은 한 한국 모던 락 밴드의 열려한 팬의 당연한 도리로 그들에 합류하여 나 역시도 목성껏 'Let it be'를 외쳐야겠다고 다짐했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리버풀은 분명 비틀즈의 도시다. 실제로 구글에서 'Liverpool Must See'라고 검색하면 두 번 째로 나오는 게 'The Beatles Story'라는 박물관, 혹은 전시관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예상과는 달리 비틀즈의 흔적은 찾아보기 다소 힘들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여기저기에서 모차르트 초콜릿을 팔아대며 이곳이 바로 모차르트의 고장임을 끊임없이 상기했던 것과는 정반대였다. 어쩌면 나의 숙소가 도심으로부터 버스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외진 곳에 있어서 비틀즈의 향기를 느끼기에는 다소 어려운 측면도 있을 것이다. 도시 규모가 작은 편이니, 여기서의 20분은 서울 도심에서의 20분과도 분명 다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리버풀까지 왔는데 비틀즈의 자취를 이렇게나 찾기 어려워서야. 이번 여행의 궤적은 이랬다. 런던에 가서도 대영 박물관은 근처도 안 갔고, 카디프에서는 숙소 바로 앞 카디프 성에 들어가지도 않았으며, 뉴캐슬에서도 몇몇 유명한 다리가 있었지만 방문하지 않았다. 요약하자면 '여기에는 이것' 따위의 당위적 울림에 단 한 번도 응답하지 않은 셈이다. 딱 하나 참여했던 것이 스코틀랜드 지방의 위스키 공장 견학이었다. 그건 사실 당위에 못 이긴 여정이었다기 보다는 주님이 탄생하신 성지로 순례하는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리버풀에서의 비틀즈만큼은 내게 당위였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고, 오히려 이제는 클래식 반열에까지 오른 비틀즈의 음악을 어린 시절 피아노 연습을 하며 짜증을 냈던 사람이지만(Yesterday라는 곡을 연주하며 사과 하나하나를 지워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럼에도 리버풀에서 비틀즈의 흔적을 찾지 않을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학교 축제와 정기 공연에서 무대에 올랐던, 비록 허접할지라도 어쨌든 기타리스트였으니까. 원래 한 번 기타리스트는 영원한 기타리스트인 것이다. 거기에 밴드 넬의 열정적 팬이기도 하고. 런던에 위치한 대영 박물관에서 미라 몇 점을 안 보는 건 아무 상관 없겠지만, 리버풀에서 비틀즈를 느껴보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는 무책임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기껏 스코틀랜드까지 가놓고, 스카치 위스키 한 잔 안 마시는 불경행위와 비슷하달까. 따라서 나는 부둣가 근처에 위치한 'Beatles Story' 전시관으로 향했다. 아주 오랜만에 입장료까지 지불하면서 들어간 곳이었다. 전시회나 박물관을 워낙 싫어하고 지루해하는 탓에, 여행에 와서도 가급적 이런 곳에는 가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니 비틀즈 전시관 역시도 딱히 재밌을 거란 기대감은 없었다. 다만, 밴드 전설에게 바치는 오마주 삼아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했다.
가이드 기기를 하나 빌려 관람하기 시작했다. 기기 대여는 무료였다. 선택할 수 있는 언어가 몇 가지 되었다. 영어부터해서 이런저런 유럽의 언어들, 그리고 중국어까지. 한국어는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영어를 세팅했다. 페이지가 로딩이 됐는데, 그게 마치 '지금부터 리스닝 시험이 시작됩니다'하는 토플이나 토익 문구 같아 조금은 섬뜩했다. 전시관은 비틀즈의 결성부터 해체, 그리고 이후 개인 활동까지의 연대기 순으로 동선이 큐레이팅돼있었다. 리버풀에서 평범하기 그지없게 시작한 이 소소한 밴드가, 어떤 발자취를 따라 전세계적인 아이콘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는지 자연스레 파악할 수 있었다. 전시관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비틀즈의 '보이후드'였다. '비틀즈'라는,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 위대한 밴드의 탄생과 성장이 이 전시관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기념관처럼 고리타분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나는 두 시간 정도의 시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이들 밴드 멤버들이 사용했던 악기들을 포함하여 여러 자료들이, 상당히 사려깊고도 꼼꼼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거기에 이들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순간순간을 당시의 실제에 가깝게 재현해놓기도 했다. 정말로 사용되었던 물품들은 물론이고, 철저한 고증으로 당시 클럽 간판 하나까지 자세하게 표현해놓았다. 그러다 보니 단 두 시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안에도 비틀즈라는 밴드에 이입하여 그들의 역사와 당시의 흐름을 경험할 수 있었다.
'The Cavern'과 같이 그들이 연주했던 유명한 클럽의 무대가 마련돼 있었고, 'American Invasion'이라 불리었던 비틀즈의 미국 상륙 때에 사용됐을 법한 비행기 좌석들도 비치돼있었다. 관객들은 1960~70년대 식의 클럽 테이블에 앉아 그들이 연주했을 무대를 바라보고, 또 비틀즈가 탑승했을 듯한 비행기 의자에 올라 그 기분을 느껴볼 수 있었다. 뻔한 관람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밴드의 발자취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는 오히려 체험에 가까웠다. 오감이 함께하니 비틀즈를 더욱 생생히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들어도 토플 리스닝 아저씨 목소리 가이드의 설명을 해석하는 어려움만 빼면 말이다. 화질 나쁜 영상 자료나 남겨진 음악, 그리고 비틀즈와의 동시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던 그들을 생동감 있게 만날 수 있었던, 꽤 감동적이기까지 했던 전시였다. 비틀즈의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그 시대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면 더욱 큰 감흥을 느꼈을 것이다.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그들의 아우라가 이렇게 숨쉬는데, 비틀즈를 직접 보고 그들의 음악을 눈 앞에서 들었던 이들이라면 어떤 수준의 영감을 얻었을까 궁금했다. 특히 음악을 업으로 삼았던 이들이 만약 실제로 비틀즈의 음악을 듣고 보았다면 그 충격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을 테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 이후, 전시관은 어느덧 이들의 해체와 각 멤버들의 개인 활동을 전시하고 있었다.
가장 마지막은 존 레논의 'Imagine'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한 하얀 방이었다. 그 벽면에는 'Imagine' 가사의 일부가 적혀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오늘을 살고, 평화롭게 지내며, 인류애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해보라는 그 가사에 역시 조금 울컥했다. '나를 몽상가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나 혼자서만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언젠가 당신도 우리와 함께하기를, 그래서 세상이 하나가 될 수 있기를 바라요.(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이 부분 역시도 정말 아름다워 한참을 곱씹었다. 세계 최대강국의 어느 새로운 대통령은, '자국 우선주의'를 외치며 이런저런 행정명령들로 다른 국민들을 배척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어떤 대통령은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취임 연설 이후로, '자기 꿈'만을 이루는 데에만 아주 열심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일의 걱정으로 오늘 쉽게 잠을 청하지 못하고, 세계에는 전쟁이 여전하며, 따뜻한 인류애보다는 척박한 이기심이 여전히 우선한다. 이 미친 세상에서 'Imagine'이라는 맑고 평화로운 가사를 마주하는 건 조금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 낭만과 평화를 상상하는 것조차 조금은 사치라서, 불행하게도 존 레논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독하고도 거창한 몽상가로 남을 것 같았다. 그런 비관적 확신이, 'Imagine'가사 앞에서 유독 초라했다, 그 초라함 때문에 'Imagine'은 더욱 빛났다.
모든 기술이 진보했고, 당시의 혁신이었던 비틀즈의 사운드 믹스와 레코딩은 이제는 '옛' 것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만큼은 '옛' 음악이 아니다. 멜로디와 가사 모두 세련됐고, 전혀 촌스럽지 않다. 누구도 비틀즈의 음악을 들으며 그것이 '옛'날에 녹음되었다는 이유로 '옛' 것 취급하지 않는다. 비틀즈의 세계관과 상상력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모든 음악이 이들의 음악처럼 언제나 위대하거나 대단할 수는 없다. 그럴 수 없기에 비틀즈는 비틀즈로서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다. 위대한 음악이라고 하여 꼭 대단한 힘이 있는 건 아니다. 존 레논이 아주 오래 전 'Imagine'을 발표했고, 이 곡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음에도, 그 후 세상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진일보한 건 절대 아니니까. 다만 궁핍하고도 빈곤한 상상력의 한계를 매일 마주함에도, 그나마 남은 감성과 마음이 완전히 시들지 않았던 건 비틀즈를 포함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공이 크다. 존 레논의 상상은 앞으로도 실현되기 정말 요원해보이지만, 그 상상력으로 함께 꿈을 꾼 여러 사람들 덕분에 일상이 완전히 메마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 존 레논, 그리고 비틀즈의 자취를 이들의 태생지에서 따라볼 수 있는 건 축복같은 경험이었다. 비틀즈 전시관을 다녀왔지만, 마지막 존 레논의 'Imagine'이 정말 인상깊어서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이것으로 정했다. 더 많은 이들의 상상으로, 세상이 조금은 더 풍요롭고 꿈꿀 만 한 곳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60년대 레코딩 시스템보다 더욱 촌스럽고 천박한, 어느 나라의 블랙리스트 같은 것부터 먼저 사라져야 할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