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의 단상

영국 리버풀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지역사회에서 한 세대의 정서적 고향을 지켜내는 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가치 있는 일

스포츠에는 더비 매치라는 게 있다. 역사적이나 지역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두 개의 팀이 각각의 자존심을 걸고 한 판 붙는 경기들이다. 역사적인 라이벌이라면 한일전을 비롯하여, 영국과 프랑스의 국가 대항전, 또 클럽 축구로는 스페인의 엘클라시코(레알 마드리드 vs 바르셀로나) 등이 있다. 지역 라이벌은 같은 도시를 연고로 하는 두 팀 사이에 자주 형성된다. 손흥민이 몸 담고 있는 팀으로 유명한 토트넘 핫스퍼의 경우에는 또 다른 명문 클럽 아스널의 북런던 라이벌이다. 라이벌, 혹은 더비 매치는 스포츠를 더욱 짜릿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이곳 리버풀에도 '머지사이드 더비'라 명명되는 유서깊은 더비 매치가 있다. 리버풀 FC와 에버튼, 두 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곳의 축구를 이야기 하며 에버튼을 언급하지 않는 건, 잠실야구장에 관하여 설명하면서 두산이나 LG 중 하나를 누락하는 것과 비슷하다. 오늘은 에버튼의 홈 경기가 열리는 날이었다. 숙소를 기준으로, 단 1분 거리에 리버풀 FC의 홈 구장 안필드가 있다면, 걸어서 10분 남짓한 거리에는 에버튼의 경기장 구디슨 파크가 위치한다. 영국에서 많은 도시를 방문했지만, 이토록 근거리에 두 개의 축구장이 존재하는 건 처음이었다. 왜 두 팀이 경기가 그토록 많은 주목과 관심을 받는 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팀의 색깔 역시, 리버풀 FC는 빨간색이고, 에버튼은 파란색으로 극명하게 다르다. 숙소를 나오니, 파란색 목도리를 한 군중들이 우루루 구디슨 파크로 향하고 있었다. 리버풀 FC는 오늘 원정 경기를 떠났기에 다행히도 그렇게 혼잡하지는 않았다. 기대감을 잔뜩 안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나는 시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날이 상당히 좋았다. 어제는 흐리고 비도 내리더니, 오늘은 아주 맑은 날이었다. 이건 좀 영국같지 않은 날씨였다. 한 번 비가 내리면, 그 다음 날에는 맑은 하늘이 찾아올 거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지만, 영국의 날씨는 쿨해도 그렇게 쿨할 수 없다. 닮고 싶은 삶의 자세다. 어제의 결과가 어찌됐든, 오늘의 날씨를 결정하는 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무심함이 바로 영국의 하늘이다. 이게 바로 경제학의 매몰비용인가. 그러니 어제와 그저께 비가 내렸다고, 오늘은 맑겠지, 하는 서툰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여기서 만큼은 모든 날이 독립 사건이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 수학 문제에서 이런 걸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비올 확률, 맑을 확률, 비온 뒤 맑을 확률 등이 주어지고 어떤 날에 비가 오지 않을 확률을 구하는 것. 슈퍼컴퓨터 시대에 그게 무슨 구시대적 노가다람, 아무튼. 날씨의 랜덤함은 맨체스터에서 유독 심했다. 그곳에서는 정말 하늘에 대고 너는 양심도 없냐며 따지고 싶은 악천후가 이어졌다. 다행히 그 후로는 보편적 상식과 인과관계에 합당한 기상 환경이 대부분이다. 스코틀랜드 지방의 날이 유독 좋았고, 뉴캐슬이나 이 곳 리버풀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그러니 아주 높은 확률로, 맨체스터가 내 기억 속에서 가장 날이 나쁜 날로 남을 듯하다. 좋은 날을 핑계삼아 부둣가 주변을 한참이나 산책했다. 평화롭고도 안온한 토요일 오후였다. 보온병에 담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조금은 나른한 느낌까지 들었다. 실은 아침에 숙소에서 뒹굴거리다 마신 맥주 한 캔의 알딸딸함이겠지만. 리버풀에 도착한 이후로 매일같이 부둣가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데, 비가 오면 비가 오는대로, 날이 흐리면 흐린대로, 또 맑으면 맑은대로 나름의 느낌이 있는 곳이다. 굉장히 매력있다.


어제 비틀즈 전시관에서 구매했던 입장표로 부둣가 근처의 다른 전시관도 관람할 수 있었다. 표의 유효기간이 오늘까지였던 관계로, 첫 일정은 'The Beatles Story'라는 전시관이었다. 이 곳은 전시관이라기 보다는 MD샵에 가까웠다. 비틀즈라는 한 위대한 밴드로부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굿즈들을 판매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MD(모든)샵인가. 혼자 다니다 보니 날이 갈수록 유머감각이 퇴화하는 중이다. 티셔츠의 종류도 무척 다양했고, 밴드인 만큼 기타 케이스나 드럼 스틱도 팔았으며, 엽서 등의 문구류도 기본적으로 비치되어 있었다. 팬들이 굿즈를 구매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게 예뻐서도 아니고, 실용성이 높아서도 아니다. 마치 등산객의 심정과 비슷한데, 바로 그 곳에 산이 있기에 그들이 산을 오르듯, 그저 굿즈를 팔고 있으니 그걸 사는 것이다. 가수들의 콘서트장 근처에는 기념 굿즈를 판매하는 매장이 꼭 있는데, 어떤 경우에는 첫 날부터 매진되어 남은 날에 공연을 예매한 관객들은 굿즈를 구경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들도 허다하다. 물론 상품의 질이 워낙에 안 좋거나 대중들의 일반적 취향에 전혀 부합하지 못한다면, 몇 주를 판매해도 제자리 판매고를 유지하는 굿즈들도 존재한다. 재작년 밴드 넬의 어쿠스틱 콘서트는 3주 동안 개최되었는데, 보틀이나 다른 상품들은 꾸준히 팔렸던 반면에 사람들이 티셔츠는 그렇게 안 샀다고 한다. 오죽하면 보컬 김종완이 우스갯소리로 멘트 중에 "이런 반응일 거면 닥치고 우리 티셔츠나 사"라고 했을 정도다. 넬도 밴드니, 비틀즈의 굿즈들처럼 '밴드적'인 것들을 많이 개발하여 판매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피크라든가, 스틱이라든가, 케이스라든가, 아니면 넬의 로고가 달린 엠프라든가. 옷도 다양한 디자인을 연구하여 후드티나 일반 라운드티 등으로 다각화 해도 좋을 듯하고. 영국까지 와서 남의 사업체 판매고나 신경쓰고 있으니, 이들을 어지간히 좋아하나보다.


사실 이런 잡생각을 조금 오래 할 수 있었던 건, MD샵과 다름 없던 이 전시관에서의 유일한 체험거리인 비틀즈 4D 애니메이션 상영 시각이 꽤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틀즈의 음악들을 배경으로 한 10분도 안 되는 영상이었는데, 어제 구매한 표가 아니라 새로 돈을 내서 봐야했다면 분노했을 만큼 아주 지루했다. 정말 비틀즈'빨'이 아니라면 굳이 앉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 롯데월드에서의 4D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우수했는지 새삼 절감했다. 굿즈는 이런 것이다. 이 정도의 영상임에도, 사람들은 '비틀즈'라는 이름값 때문에 돈과 시간을 내어 그곳까지 와서 애니메이션을 감상한다.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물론 상품의 질이 현저히 최악이어서는 안 되겠지만, 어느 수준 이상만 되면 이름'빨'을 받아 그리 적지 않은 판매고를 기록할 수 있는 것이다. R&D비용은 한참전에 다 뽑고도 남았으리라. 오늘 같은 수준 낮은 영상도 자리가 꽉 차는데, 어지간한 질의 기념 상품들은 오죽할까. 소위 말하는 '덕후'들의 열정과 구매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장강명 작가의 소설 <열광금지, 에바로드>에는 '에반게리온'에 환장한 '덕후'의 이야기가 아주 재밌고도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덕후'들은, '덕후'가 아닌 다른 이들을 '머글'이라 부른다. '머글'은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나오는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들을 지칭한다. '머글'을 '덕후'로 만드는 건 어려워도, '덕후'를 '호갱'으로 이끄는 건 꽤 쉬운 일이다. 한 연예인이나 스포츠 팀에 매료되면, 그들과 연관있는 상품들을 소유하고 싶은 욕망이 정말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앞으로의 미래는 '덕후'들의 것이라고 예언했다. '덕후'들은 개발과 판매의 영역에서도 아주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았다. 물론 영국에서까지 넬을 '덕질'하는 나 좋자고 하는 소리이기는 하다.


영상이 끝나고, 샵을 몇 바퀴 돌며 혹시라도 내가 만약 이런 분야에서 종사하게 된다면 어떤 상품을 기획하면 좋을지 잠시 머리를 굴려보았다. 음악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으로까지 기능했고, 또 지금도 유효히 기능하고 있는 비틀즈인 만큼, 분명 눈으로 보고 고민해두면 필히 훗날 내 인생을 윤택하게 하는 데 꽤 일조할 수 있을 듯했다. 생각해보니 이게 여행을 떠난 지 39일 만에 처음으로 해 본 생산적인 생각이었다. 오, 좀 기특한 걸. 물론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매우 사소한 상품 하나하나가, '비틀즈'라는 이름값이 포함되니 얼마나 가치 있어 보이는 기념품으로 변신했는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역시 비틀즈라는 이 거대하고도 위대한 밴드의 아우라란. 그러니 그토록 조악한 수준의 애니메이션을 보고도 '시간 낭비'라고까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비틀즈야 워낙 유명한 밴드고 전세계적인 브랜드니까 영상 수준이 저래도 사람들이 굳이 여기까지 와서 3D 안경을 쓰고 시청하는 걸텐데, 도대체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무슨 배짱과 정신으로 '아라리요' 따위의 영상을 찍어냈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대미는 비틀즈의 멤버 폴 맥카트니가 장식했다. 설마 싶긴 하지만, 혹시 2018년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출연진 모두가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추는 참상이 진행되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그놈의 'K'만 주구장창 붙여가면서 말이다. 거기에 '하나되는 코리아'만 추가하면 제대로 완성인데. 2008 베이징 올림픽은 '먼 곳에서 친구들이 방문하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한 마디로 시작됐다. 개막식이 정말로 말춤과 아리랑의 향연이라면, 이왕 그렇게 된 거 시작부터 어두운 화면에 'Do you like 김치?' 혹은 ' Do you know 박지성?'이라는 자막을 올리며 컨셉 전체를 B급 정서도 물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문화 컨텐츠를 기획하고 생산해내며, ­­이들을 융성하는 전반적인 과정이 정부의 정책이 완전히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것이 엉뚱한 방향으로 발효되면 문화는 발전은 커녕 답보와 퇴보할 뿐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가만히라도 있는 게 낫다. 비틀즈와 같은 뮤지션은 'K-밴드', 또는 '한국형 비틀즈'와 같은 이름조차 민망한 정책적 기획으로는 절대 탄생할 수 없다. 심하게 말하자면, 비틀즈는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인디밴드다. 물론 이들이 나중에는 대형 기획사와 앨범 및 스튜디오 계약을 맺기도 했으나, 그 시작은 리버풀의 작은 클럽에서 이루어졌다. 작은 장소에서 공연을 하고 사람들이 이들을 알게 되며 차츰차츰 인지도와 명성을 높였고, 거기에 그들만의 독창적인 음악이 제 때를 만나고 널리 인정을 받으며 상업적으로까지 큰 성공을 거두게 된 것이다. 비틀즈는, 그들처럼 탄생했던 수많은 인디밴드들이 상상할 수 있던 최고의 신데렐라 스토리를 이루어낸 밴드였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해도, 평범한 음악가를 '존 레논'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혹여 미래에 '존 레논'이 될 지도 모를 비범한 음악가를, 음악 외적인 이유로 자신의 잠재력을 포기토록 하는 불운한 여건을 정책적으로 소제해주는 게, 문화 정책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확률을 높이는 방향이다.


인디밴드와, 사회 및 경제 정책이 무슨 연관이 있나 싶겠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최근의 홍대나 연남동, 혹은 경리단길이나 가로수길 같은 '핫'한 곳들을 보자. 이들로부터 공통적으로 들리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임대료'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이곳을 찾아왔는데, 정작 이들로부터의 독특한 분위기로 지역의 명성이 제고됨에 따라 임대료가 천정부지로 치솟아, 프랜차이즈를 비롯한 대규모 자본이 유입되고 정작 이전의 상권과 예술가들은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이것을 누군가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명명했다. 한 때 홍대 앞은 인디씬의 성지였다. 그 성지들 중에서도 유독 유명했던 라이브 클럽들이,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꽤 많이 폐업하고 말았다. 이는 곧 뮤지션들에게 무대의 상실, 더 나아가 일자리와 직업의 상실을 의미한다. 왜 우리에게는 비틀즈가 없는지 불만을 하기 전에, 이런 악순환의 고리부터 끊어낼 방도를 궁리하는 게, 진정 문화 융성을 위한다면 먼저 할 일이다. '무한도전'이나 '복면가왕'에 출연하여 유명해진 '혁오'나 '국카스텐'이 있지 않냐고 반문할 지도 모르지만, 역설적으로 말해서 음악인들은 정말 운 좋게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못한다면 유명세는 고사하고 일상 생계의 유지와 정착조차도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이는 비단 인디음악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화가들, 작가들 등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생활고를 겪는다는 건 새삼 확인할 필요도 없는 명확한 사실이다. 극단적이기까지 한 블랙 메탈 음악이나, 시규어로스와 같은 실험적인 음악이 유독 북유럽에 많은 건 그 나라의 기초 복지가 워낙 잘 돼 있어서 굳이 대중적인 음악을 고집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 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척박한 나라에서 예술을 하는 사람들 중에, 그 정도의 지원까지 바라는 이들은 없을 것이다. 대학 진학과 취업을 '일반적'인 진로로 규정해놓고, 그 밖의 방안들은 '비범함'으로 인식하여 모든 실패와 좌절의 책임을 각자 개인에게만 쥐어주는 사회 풍토를 그들도 익히 알고 있다. 다만 가까스로 자리 잡은 생계의 터전마저 자본과 시장 논리에 반복적으로 빼앗기는 구조적 문제만큼은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하지 않겠는가. MBC 라디오의 배순탁 작가에 따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은 '일상의 붕괴'라 불리어도 무방할 만큼의 심각한 사회 문제다. 누군가의 일상이 무너지든 말든, 여기저기의 연설에서 '한국형 문화'를 외쳐대며 자신의 할 일은 다했다고 뿌듯해할 뻔뻔함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먼저 타파되어야 할 악행일지도 모르겠다.


비틀즈가 아주 오래 전에 공연했던 술집 'Cavern'은 어느정도의 유지, 보수를 거쳐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캐번 클럽', 그리고 비틀즈의 '캐번 클럽 시절'로 잘 알려진 그 'Cavern'이다. 지하철 역을 연상시키는 듯한 아주 비좁은 통로와 무대는 지금도 여전하며, 오늘 들어갔을 때에도 이름 모르는 한 가수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맥주나 음료를 한 잔 씩 들고 그의 음악을 듣거나 서로 이야기하는 중이었다. 토요일 오후였고, 지하의 혼탁한 술집이었는데, 젊은 층 뿐만 아니라 꽤많은 중장년층의 사람들도 각자의 향수를 이곳에서 공유하고 있었다. 비틀즈의 초기 활동이 이 클럽에서 이루어졌으니, 어쩌면 이들 중장년층들에게는 이곳이 그들에게 '덕질'의 장소였으며, 그들에게도 분명 한 때 '비틀즈'를 위시한 여러 밴드들의 '덕후'였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적인 스포츠 대회가 종료될 때마다, 여러 언론은 엘리트중심의 체육 교육을 비판하며, 이제는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과 동메달의 갯수를 더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즉 엘리트 체육에서 생활 체육으로의 저변 확대와 인식 전환을 소리 높여 요구한다. 그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겠지만, 음악을 비롯한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이 '중간층'을 두터이 하는 작업을 절대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이 술집에서 새삼 얻었다. 어쨌든, 예술가들에게, 이런 클럽이나 술집은 하나의 '터전'이지 않은가.


'Cavern' 술집에 와서 자신들의 청춘을 복기하고 추억하는 중장년층을 보며 더더욱 그런 확신을 받았다. 1990년대 홍대 앞 인디 문화가 정점이던 시절을 향유했던 어떤 이가 중장년층이 되었을 때, 그 뜨거움을 환기할 만한 장소가 얼마나 남아있을까. 개인의 '그깟' 추억팔이 하나를 위해서 시장의 흐름과 자본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저지하는 게 말이나 되나 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한 세대의 정서적 고향을 지켜내는 건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모두 가치 있는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며 결국 이득을 본 건 누구였는가. 지역 주민이 아니라, 대규모 자본이 아니었던가. 동시에 한 세대의 문화적 고향을 자처하던 곳은 그 자취를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비틀즈'라 불릴 만한 그룹이 탄생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밴드나 그룹이 기적적으로 탄생하더라도 그들이 활동했던 서울의 'Cavern' 술집 같은 곳은 이미 사라지고 없을 확률이 높다. 오직 사업적으로만 봤을 때에도, 어렵게 탄생한 문화 컨텐츠를 2차, 3차적으로 활용할 방법이 없게 된 셈이다.


유명 외국인들에게 'Do you know 김치, 싸이, 박지성'을 물어본 뒤 그렇다는 대답을 운 좋게 들어, '글로벌 스마트 코리아'라고 자위하는 수준에서 만족하겠다면 어쩔 수 없다. 정서나 문화 저변 같은 요소들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본과 자금의 흐름에만 천착하는 신자유주의의 성지로 남겠다는데 도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러기에는 '문화강국'이란 목표가 너무 거창하고 민망하며, 위선적이다. '군사강국'도 아니고 '문화'를 국가적 어젠더로 설정하여 융성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부터가 무척이나 놀랍기도 하고.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산책을 하며 반복하여 들었던, Snow Patrol의 'Run'이다. 평소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을 이 깊고도 어려운 고민을 팔자 좋게 할 수 있는 게 또 여행의 매력이다. 어쩐지 의식있는 사람이 된 듯 한 느낌도 받았다. 그걸 공유할 누군가가 없다는게 조금 외로웠지만, 그 사람이 있었다면 이런 생각도 애초에 안 했을테니까. 여행을 통해 시각을 넓힌다는 건, 단순히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의 물리적 가짓수만 늘리는 것과는 분명 다른 의미다. 절대 혼자인게 아쉬워서 하는 말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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