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으로 자라지는 못하더라도

영국 리버풀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괜찮은 어른 정도는 되도록 노력하는 일

여행이라는 게 단순히 표현하자면 놀고 먹는 거고, 그래서 아주 잘 놀고 먹으며 여행하고 있지만, 그 놀고 먹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 오늘은 몇 가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해결이라기 보다는 확실히 했다는 게 조금 더 적확한 표현이긴 하겠지만. 우선 이번 주 토요일의 축구 경기 티켓 관련 일정을 최종 확인해야 했다. 몇 주 전에 예약했는데, 오늘이 되어서야 정확한 일정과 장소 등이 메일로 고지되었다.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게 드레스 코드였는데, 다행히 오늘 메일을 주고 받으며 한 시름 놓을 수 있었다. 처음 공지된 드레스 코드에는 청바지 등은 아예 제한(Stricktly Restricted) 된다고 적혀 있었다. 아니 세상에, 내가 가지고 온 바지는 청바지와 츄리닝밖에 없는데, 그럼 난 어쩌라는 거지. 절박한 마음으로 구단에 이메일을 보냈다. 음, 저기 너네들의 드레스 코드를 읽어 보았는데 말이지, 나는 배낭 여행자라 그리 멋진 양복이 없는데, 그럼 나 입구에서 귀가 조치 되는 거니, 양복 없다고 집에 돌려보내면 돈은 돌려주니, 아니면 패키지 식사만 못 하고 경기는 볼 수 있는거니, 따위의 요지였다. 어떤 옷을 입을 예정인지 물어보길래, 가지고 온 옷들 중에서 가장 덜 '캐쥬얼'해보이는 조합으로 설명했더니, 그 정도면 괜찮다는 최종 확인을 받았다. 역시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는 킹스맨의 나라다웠다.


축구 경기와 관련된 일이 어느정도 마무리 된 이후에는, 학교 담당자에게 문의했던 이메일을 확인했다. 휴학에 관한 문의였는데, 최종적으로는 올 해 1학기 까지는 별도의 서류 제출 없이 휴학생 신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았다. 이 학기까지는 입대 휴학으로 인정된다고 한다. 올레. 총 6번의 일반 휴학을 할 수 있는데, 그 중 한 번은 이미 입대 전에 썼고, 이번 여행 때문에 잘못하면 최대 2번의 휴학 가능 학기를 더 소진하는 게 아닌가 싶었었다. 메일을 받고, 잘만 조절하면 휴학 찬스를 최대한 아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부풀었다. 대학 생활의 꽃은 휴학에 있다. 최소한 내 생각은 그렇다. 한 두 학기 정도 일상을 통째로 정지시키고, 그 진공 상태에서 그 동안과는 조금 다른 인생을 별다른 제한 없이 살아볼 수 있는 건 대학 기간내에서의 휴학이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하다. 휴학을 어학이나 자격증 공부 기간 등과 동일시 하며, 그 금쪽같은 시간을 어떻게서든지 꽉꽉 채워 보내야 한다는 편집증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도 있긴 있다. '쉬고 싶어서'라는 휴학 사유에 대해, 공부를 안 하더라도 무엇이든 간에 몰입은 해야한다는 그들의 성실하고도 강박적인 열정을 평가절하할 마음은 없다. 다만 '휴학'의 방점은 휴(休)에 있다. 그냥 좀 쉬어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강박적인 세상인가. 가만히 있는 꼴을 이토록이나 못 보는 곳도 아마 드물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일단 휴학계를 내놓고, 그 기간동안 아무 것도 안 한다며 불안해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는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야말로 휴학의 디폴트 값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는 나도 가끔은 막연히 불안해지고, 이게 맞는 짓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내가 이 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생각도, 철도 없이 쉬어보겠나 싶은 마음으로 그 불순한 '생산적 강박'들을 물리치곤 한다.


마지막으로는 다음주에 아일랜드로 넘어갈 배편을 한 번 더 확인하고 그 전 날 일정을 계획했다. 영국에서의 아일랜드 이동은 비교적 간단하지만, 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영국 내에서의 이동에 비하면 훨씬 긴장되는 게 사실이며, 배를 타고 국경을 넘는 것도 이번이 평생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 조금 막막하기도 하다. 누군가는 영국에서 아일랜드로 배를 타고 가는 건 제주도에서 마라도를 갈 때 만큼이나 간단하고, 또 '해외 여행'이라 칭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라고 하지만, 이를 겪어 보지 않은 내게는 별다른 감이 안 서는 게 사실이다. 거기에 나는 배를 타고 마라도로 간 적도 없다. 홀리헤드 항구까지의 거리도 리버풀에서 꽤 되어, 전날부터 상당히 꼼꼼하게 준비해야 한다. 보니까 기차와 버스를 반복하여 몇 번 갈아타야 하던데, 이 죽일 놈의 캐리어를 끌고 그 짓을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팔이 저려오는 느낌이다. 그날만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야지. ­이 정도 '사무적'인 볼 일이 마무리되자 어느덧 시각은 오후 한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물론 열 한 시가 지나서야 잠에서 깨었긴 하지만, 이 게으른 사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어제와 그저께 숙소에서 칩거하다시피 휴식을 취한 관계로, 오늘의 컨디션은 무척이나 쌩쌩했다. 다소 우려스러웠거나 불확실 했던 지점들도 명쾌히 해결돼서 기분도 괜찮았다.


어쨌든 고작 축구 한 경기를 보겠다고 양복을 구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 가장 컸다. 정 안 되면 타이타닉에서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처럼, 식당에 잠입하여 뻔뻔하고도 유머러스한 보헤미안 청년으로 그 고귀한 양복쟁이들 사이에서 식사를 해 볼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불가능한 시나리오였다. 첫 째, 그 곳의 관리원들이 그 정도로 허술하진 않을 것이며, 둘 째 그처럼 뻔뻔하고도 재치 있게 말을 할 영어 실력이 안 되고, 그러니 케이트 윈즐렛이 거기 있다 한들 내가 그녀에게 말이라도 걸어볼 수나 있을 것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디카프리오가 아니다. 커다란 곰 발바닥에 등을 맞더라도 그로 환생할 수는 없을 테다. 휴학을 위해 별다른 증빙 서류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역시 아주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외국에서 단 한 번이라도 '공인 인증'과 관련된 웹사이트에 접속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공포감은 곰의 앞 발 만큼이나 두려울 것이다. 은행사이트라면 그나마 괜찮은데, 무수한 엑티브 엑스들과 팝업,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려고 할 때마다 다시 나타나는 필수 다운로드, 그로 인한 웹사이트 종료, 그리고 이 모든 걸 몇 번을 반복해야 겨우 뭐라도 해볼 수 있는 정부 기관 홈페이지들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놈의 보안 절차를 그리도 많이 만들어 놓고도 허구한 날 해킹을 당하는 것도 어지간한 능력이다 싶을 지경이다. 접근성도, 보안력도 최악인데 그걸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닥뜨릴때마다, 'go.kr'로 끝나는 사이트들에 절대적인 혐오감이 피어 오른다. 천만 다행으로, 앞으로의 몇 개월동안은 그런 고통은 겪지 않게 되었다.


숙소에서 조금 더 밍기적거리다가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 정류장이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스런 점이다. 이건 사실 숙소로 돌아올 때 훨씬 더 빛을 발하는 장점인데, 어두컴컴하고도 적막한 그 주택가를 홀로 걸어오는 게 꽤 무섭기 때문이다. 여기도 주택가고, 그러니 사람 사는 동네일 텐데, 어쩐지 두렵고 위축되는 느낌이다. 사람을 그 정도로 불신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큰 서양 애들이 떼로 몰려올 때마다, 혹시 쟤네들이 위험한 분들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뜨거운 커피를 보온병에 담아 다니는 건, 다소 쌀쌀한 날씨에 그 그윽한 향으로 내 몸을 보신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정말 최악의 상황에서는 커피를 뿌리고, 그것도 안 되면 보온병을 채로 던져서 시간을 벌어보려는 호신용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마음도 없지만은 않다. 다행히 아직까지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투명 인간이 된 것처럼 아무도 내게 눈길조차 주지 않지만, 차라리 그게 낫다. 아무리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인기 종목이고, 또 내가 야구의 광팬이라고는 하지만, 그게 꼭 나의 보온병 제구력이 좋다는 보장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얘네들 나라는 야구보다 몇 배는 기동력이 중시되는 축구와 럭비가 인기 스포츠다. 이길 수가 없다.


매일같이 오다가 지난 이틀은 숙소 근처에서만 휴식을 취했는데, 그 때문인지 오늘의 리버풀의 부둣가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두컴컴하기 그지 없는 동네에 있다가, 번쩍번쩍한 불빛들과 고층 빌딩들을 보니 생기를 느꼈다. 사람 사는 곳 같달까. 현재 묶고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는, 이 전에도 말했다시피 세탁기도 없고, 와이파이도 없고, 집주인도 없고, 게다가 사람도 없다. 방은 많은데 사람은 나 밖에 없는 기분이다. 내 옆 방은 첫 날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계속 비어있다. 한 층의 복도, 화장실, 주방 모두를 나 혼자 쓰고 있는 셈이다. 이게 편하고 눈치 볼 사람도 없어서 좋긴 하다. 게다가 어차피 내 돈도 아니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이미 지불할 돈은 다 지불했으니, 집주인에게는 미안하지만 라디에이터 온도도 최대로 해놓고 아주 따뜻하고도 윤택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여기 층에는 나밖에 없다 보니 어제는 욕조에 물을 받아 놓고 반신욕까지 하는 사치를 부렸다. 그런데 이거 인기척이 없어도 너무 없고, 또 주변도 축구장과 1분 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여, 문득문득 섬뜩할 때도 있다. 빨래를 비롯한 살림살이들과 휴식 및 재충전을 핑계로 숙소 근처에서만 이틀을 있다가, 오늘 마침내 시내로 나와 바닷가까지 구경하니 개운하고도 후련한 기분까지 들었다.


저녁을 먹는 그 짧은 사이에는 비까지 내린 모양이었다. 시내 곳곳이 작은 물방울들을 머금고 있었다.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날씨 운이 좋았다. 다 먹고 기분좋게 식당을 나왔는데 그 순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조금 난감하지 않겠는가. 비 내린 직후의 특유의 분위기가 좋았다. 불빛이 물방울들에 반사되어 바닥에서도 빛나는 듯했는데, 그게 어쩐지 색다른 조명 같기도 했다. 특히 부둣가에서의 야경이 평소와는 또 다른 분위기였다. 원래 강이든 바다든 물가 근처의 야경은 어디서든 괜찮은 법이다. 잠실나루 근처든, 광안리든, 런던 템즈강 근처든, 그리고 이곳 리버풀 부둣가든. 그런데 여기에 비까지 내리면, 더욱 은은하게 감성을 자극한다. 영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군림하며 역사상 최고의 호황기를 누릴 무렵에, 리버풀은 그 무역의 중심지였다. 런던보다도 더 중요한 도시였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의 영광은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울 정도로 많이 쇠락한 상태다. 그 쓸쓸함이 리버풀 부둣가에 유난히 짙게 배여있는데, 여기에 비까지 내리니 '추적추적한 쓸쓸함'이 되었다. 불안정하고 몰락한 경제 상황이 만들어낸 쓸쓸한 분위기를 무작정 즐겨서는 안되는 일이다. 그건 여행이 아닌 현실의 일상을 이곳에서 매일 살아내야 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 테니까. 그러면서도, 또 다른 도시에서는 쉽게 느낄 수 없는 그 '정취'를 찾고 있는 나의 모순됨을 발견하기도 했다.


존중의 가치를 망각하지 않는 것이, 여행을 다니며 항상 유념해야 할 자세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리 쉽지 만은 않다. 물론 여행이라는 것의 가장 큰 본질은 일상으로부터의 자유와 그것을 통한 유희고, 그러니 여행을 통하여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반드시 거듭나야하거나 발전해야 하는 강박 같은 건 존재할 수 없다. 특히 내가 가장 혐오하는 태도들 중 하나가 모든 것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비뚤어진 교조주의인데, 한 사람의 기쁨이나 슬픔, 고됨과 어려움, 혹은 극복으로부터 항상 어떤 교훈을 뽑아낼 수 있다고 믿고, 또 실제로 그럴려고 하는 이들을 보면 그저 경악스러운 뿐이다. 그들 나름대로는 삶을 정진시키겠다는 자세일지도 모르겠으나, 그걸 남의 삶에도 적용시키려고 할 때는 그저 추악하고 폭력적인 꼰대짓, 혹은 멘토질이다. 기쁨은 기쁨이고, 슬픔은 슬픔이며, 거기서 가르침을 느끼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발생하는 모든 에피소드들이 죄다 교훈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패는 실패로, 좌절은 좌절로, 희열은 희열로 머무는 경우들이 오히려 더 많으며, 어떤 경험이 한 개인의 실제적 성장으로 이어지리라는 믿음은 왜곡된 신화에 가깝다. 나의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삶의 의미나 중요한 교훈을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다. 여행은 여행으로 이미 가치있는 경험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존중하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계속 유념한다는 건, 이 여행을 통해 나를 더 배려심 많은 인간으로 성장시키겠다기보다는, 최소한 기본은 할 줄 아는 괜찮은 어른 정도는 되겠다는 소박한 의지에 가깝다. 그런데 이것이, 여행의 유희적 성격과 충돌할 때면 종종 감당하기 벅찬 느낌을 받는다. 한 때는 번영했으나, 이후에는 쇠퇴했던 도시만이 가지는 독특한 분위기가 분명 있다. 그런 현실에 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번영과 쇠락 사이의 괴리와 이질감이 종종 '낭만'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관광지가 아닌 평범한 골목들에도, 그게 이국적이라는 이유로 무의식적으로 우선 카메라 셔터를 들이댈 때가 많다. 오늘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비 온 뒤의 눅눅한 도시 분위기가 유난히 좋았고, 그래서 여기저기를 걸어다니다 조금 색다른 느낌이 있는 곳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댔는데, 그러다 순간 이게 지금 올바른 행위인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아니 어차피 한 번 오고 말 곳이고, 이 곳이 이렇게 된 데에 나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저 평범한 골목 하나 촬영하는 건데 굳이 이런 불편한 고민을 해야 하나 싶은 마음도 드는 것도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게다가 나는 리버풀 주민도 아니고, 그 골목이 실은 이 도시에서는 나름대로 경제 수준이 괜찮은 곳일 수도 있지 않겠냐며, 오히려 스스로의 무지로써 누군가의 삶의 질을 오인하고 평가 절하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고민도 되었다.


작년 한 해 동안 인터넷 상에서 가장 많이 쓰인 용어들 중 하나가 아마 '프로불편러'일 것이다.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걸 굳이 꼬집어 지적하는 이들을 비꼬는 단어였다. 혹시 내가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하지만 작위적이어서 문제인 윤리적 잣대를 들이밀며 여행의 재미를 반감하고, 자아도취적인 도덕적 우월감에 자기 만족하려는 건 아닐까 하는 질문을 거듭했다. 나름대로 '존중의 자세'라고 명명했긴 하지만, 어느 곳은 사진을 찍어도 되고 또 어느 곳은 안 되는 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마땅히 없고, 결국 찍고 싶은 것들은 다 찍고 도시 분위기를 누릴 만큼 누리다가 끝에서야 조금 이런 생각을 함으로써 '나는 잘 하고 있는 거야' 따위의 위선을 행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반성도 들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로도 나는 40일 가까이 여행하며, 조금 새로운 느낌을 받을 때마다 카메라를 누른 적이 많았고, 비록 하루에 촬영한 사진들을 선별하여 SNS 등에 포스팅할 때나 약간의 가책을 받았을 뿐, 다시 다음 날에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곤 했다. 그러니 여행을 하는 도중에 문득 떠오르는 '존중'이라는 단어가, 실은 '이쯤이면 충분히 봤다' 식의 충족감의 다른 이름인 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현지인들을 존중하고 누군가의 삶과 삶의 터전을 오직 유희거리로만 치부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완전히 망각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한 개인의, 또 한 사회의 존엄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오늘 저녁에는 이런 장황한 반성문을 써놓고도, 내일이면 다시 또 누군가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이국적 낭만'이라 여기며 감탄하고 만족하는, 그런 부족한 사람이겠지만, 무의식적 실수를 조금씩이라도 줄여나가고 절제하는 것이 어쩌면 이 여행에서 내가 체득할 수 있는 중요한 삶의 윤리일 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설레는 곳이 어디냐고 내게 물어보면, 나는 첫 번째는 잠실 야구장이고, 두 번째는 인천 공항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운이 좋게도, 많지 않은 나이에 해외를 몇 번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정말 감사하게도 얻고 그것을 소중하게 활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내가 밥 먹듯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는 여건은 또 아니고, 그러니 지금이나 앞으로나 비행기 타는 일은 더없이 설레고 재밌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해외 여행을 가끔이라도 나갈 때마다, 여길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오겠어 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즐기고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하곤 한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여행의 유희를 극대화하려는 결심이 누군가의 삶의 존엄에까지 손상을 입혀서는 안 된다. 세상 어떤 여권과 출입 허가 도장에도, 그럴 권리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동안 몇 번 해외 여행을 하며, 윗세대의 여행 풍토를 비웃고 부끄러워 한 적이 몇 번 있다. 떼로 어울려다니며 소란을 일으키고, 쓰레기는 여기저기에 유기해놓으며, 또 주위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의 후안무치함에 냉소와 조소를 모두 띠운 적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쩌면, '힘들게 온 여행'이라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오직 나만의 편익만을 증대시키기 위해 고민과 사려 없이 사진을 찍어대고 다른 이들의 삶을 유희화 하는 나의 행위가, 윗세대들의 보기 안 좋은 모습과 본질적으로 뭐가 그리 다를 게 있을까 싶기도 하다. 5월 이후에는 아프리카로 갈 예정인데, 여행 일정 중 포함된 오지 비슷한 곳에서, 식수를 구하기 위해 먼 곳까지 왔다갔다 걷는 아이들을 보며 그것을 그저 이국적인 생활 방식일 뿐이라고 오직 신기해하며 사진을 찍어대는 게 윤리적으로 옳을까. 그렇게 누군가의 일상을 유희화 하는 것이 아프리카 오지에서 옳지 못하다면, 그것은 아프리카의 대도시나 유럽 어디에서든 통용돼야 하는 원칙이 아닐까. 나는 삶의 곤궁함 안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고,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데 기여할 능력일랑 아예 없고, 솔직히 말해서는 그럴 만한 의지도 별로 없다. 참 못됐게도, 나는 항상 내가 먼저고, 나의 즐거움이 최우선이다. 하지만 상식과 기본은 지키고, 그래서 혹시라도 침해할 지 모를 누군가의 존엄을 가능한 어떻게든 존중하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의식으로 인해 설사 여행의 즐거움이 조금은 반감된다고 해도 말이다. 이제는 해외 여행이 그래도 어느 정도 보편화되어, 윗세대라 할 지라도 예전처럼 타인에게 폐를 끼치면서까지 여행하는 이들은 많이 드물다. 그들도 그것이 굉장히 촌스럽고 예의 없는 행위임을 깨닫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조금 더 엄격하고도 까칠한 윤리 의식을 판단 잣대로 삼아, 남에게 민폐가 되진 않더라도, 혹여 그 사람들의 존엄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들은 자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물론 조금은 불편하고, 답답하겠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이런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날이 분명 올 테니까.


<위아 영>이라는 영화가 있다. 30대 초반 정도 되는 젊은 다큐멘터리 감독은, 40대 정도의 다른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을 '늙고' '구시대적'인 인물이라 여긴다. 다양한 에피소들을 거쳐 영화의 엔딩이 압권인데, 중년 부부의 눈앞에 아주 어린 나이에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아이가 하나 나타난다. 중년 부부는 이 아이를 조용히 응시한다. 그 어릴 때부터 첨단 기계를 자유로이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청년이 되었을 때, 그 아이의 눈에는, 스스로를 '젊고' '세련됐다'며 자부하는 30대 다큐멘터리 감독 역시 '늙고' '구시대적'인 사람일 테다. 윗 세대의 여행 방식을 촌스럽다고 비난하곤 했지만, 나 역시도 자정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내 아랫 세대에게는 같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지금 자라는 세대의 사람들은, 내가 받았던 교육보다, 인권이나 존엄 등의 가치에 훨씬 더 예민한 감수성을 견지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받은 이들일테니까. 물론 단순히 욕먹지 않기 위해 여행 중간중간 이런 다짐을 하는 건 아니다. 누군가의 존엄을 지키도록 노력하는 건 절대적 의무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대단하진 못하더라도 괜찮은 어른 정도는 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고민하고, 또 익히려고 한다.


여행은 일상과의 괴리다. 그게 본질이기도 하겠고. 이 괴리 안에서, 평소에는 타성에 젖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들을 하나씩 되짚어 볼 기회를 갖는다. 젊어서 고생은 돈을 받아도 할 필요가 없고, 아프니까 청춘이면 청춘같은 단어는 개나 줘버리고 이미 아팠던 당신들이 청춘 한 번 더 하세요, 라는 게 평소 생각이지만, 그런 꼰대적 언사들 중에 유일하게 맘에 드는 것 하나가 바로 '여행을 많이 다녀라'다. 아마 의식 근육이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에 시각의 지평을 넓히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싶다. 이건 단순히 유럽의 어마어마한 건축물을 보거나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입이 벌어지는 자연 경관을 '문자 그대로' 보고 오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물론 그런 경험만으로도 풍요로운 추억을 가진 인생을 살겠지만, 거기서만 그친다면 그건 조금 아쉬운 일이다. 훌륭한 경관이나 건축물들을 자극제로 삼아, 여행을 떠나기 전의 일상에 매몰된 상태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던 고민과 질문을 품을 때, 성장까지는 못 되더라도 인식의 세계를 조금 넓힐 수는 있을 것이다. 그 확장만큼, 나쁘지 않은 어른이 될 가능성도 높아질 테고. 이 정도의 윤리 의식이면 충분하겠지 정도의 자족을 하는 순간부터 '꼰대'가 되어가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퇴보다. 여행이나, 아니면 다른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반드시 성장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는, 퇴행해도 상관 없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소리다. 가끔은 불편하기도 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건, 한 편으로는 정신적인 안티에이징 작업이다. 비록 그때마다 답을 찾을 수는 없더라도, 더 나은 가치를 존중하고, 고민했던 습관이 쉽게 잊히지는 않을 테니까.


비 온 뒤 리버풀의 쓸쓸한 풍경도 오래 기억 될테지만, 오늘 고민했던 이 질문들 역시도 쉽게 잊어버리지는 않기를 소망한다. 짧게는 몇 달 뒤 아프리카에 갈 때 까지, 그리고 이왕이면 아주 먼 훗날 사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순간까지 안고 가기를 바라는 고민이다. 여행을 혼자 오니 이렇게 의식 있는 척도 해보고, 그래서 조금은 성장한 듯한 코스프레도 가능하고, 좋네 좋아. 그런데 이 나라 정부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관계자들은 어떻게 약간의 양심과 자기반성 조차 없을까. 자기들도 그런 보안절차들이 불편하다는 걸 모를 리는 없을 텐데. 다시 한 번 느끼지만, 휴복학 증빙 서류를 별도로 제출하지 않아도 되는 건 정말 큰 행운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녁까지 되도 않은 와이파이 환경에서 그 숱한 증명서를 떼려고 별 짓을 다했을 테니까. 아마 그 사람들은 자기들 홈페이지가 뭐가 그리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을 테니, 꼰대라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학교의 확인 메일을 받기 전까지 혹시나 해서 몇 번 정부 민원서류 발급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해봤는데, 한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이런저런 가축들의 새끼들이 자연스럽게 입 안에서 튀어나왔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로는, 영화 아가씨의 OST인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다. 그냥 참 좋은 음악이다. 점점 '오늘의 플레이리스트'와 하루 동안의 여행이 접점을 잃어가는 듯하지만, 매일같이 여행기를 쓰다 보니 노래 고르는 것도 이젠 일이다. 내가 DJ도 아니고. 그 사람들은 노래 고르며 돈이라도 받지. 좀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어디 이동할 때 '여행'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들을 순서대로 듣다 보면 그날 그날의 기억이 조금씩 떠올라, 그 맛으로 노래 하나씩은 꼭 적고 있다. 써놓고 보니 머리 아프고 의식있는 척은 혼자 다 했던 하루였던 듯하여 어쩐지 부끄럽다. 그래서 이제 꼰대든, 홈페이지든, 뭐든 잠시 신경을 끄고, 옆에 놓인 와인 한 병을 마실 것이다. 이렇게 쓰니까 어쩐지 허세스럽긴 하다만. 그래도 생각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꽤 긴 시간 글을 쓰면서도 와인에는 손도 안 댔다. 이건 좀 기특한 구석이다. 이제 '여행' 플레이리스트를 전체 재생 해놓고 술을 마셔야지.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9시가 다 됐고, 이제 사람들은 열심히 자기 앞의 인생 1인분을 해내기 위해 치열히 노력할 이 시간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태평하고도 여유롭게 와인을 마시는 이 짜릿하고도 낭만적인 순간. 이 맛에 여행을 다니는 걸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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