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고 고마워

영국 리버풀 (2016~2017 세계 여행)

by Nell Kid
버텨줘서, 견뎌줘서, 고맙다고.

참으로 한가로운 날이었다. 어제 노예제 박물관도 다녀왔고, 토요일의 축구 경기까지는 별 다른 일정이 없었다. 비틀즈가 공연했다던 'Cavern Club'에서 저녁 8시에 어쿠스틱 솔로 공연이 있다고 해서, 오후에 천천히 여기를 다녀오는 게 오늘 일정의 전부였다. 오전에는 장을 보고 조금씩 짐을 쌌으며, 홀리헤드로 가는 차편을 예약했다. 영국에서의 실질적인 마지막 도시는 리버풀이지만, 배를 타는 곳은 홀리헤드라, 아일랜드로 옮기기 하루 전에는 그 곳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심야 버스를 타고 그 곳으로 가서 조금 기다리다가 바로 페리를 탈까 고민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좀 위험한 아이디어였다. 우선 기차나 버스가 하나라도 연착이 되어버리면 답이 없어지고, 그 날 아침에 리버풀에서의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저녁까지 기다릴 곳도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확실히 하는 편이 낫겠다 싶어 홀리헤드에 숙소까지 예약했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입국 심사대 앞에서 이곳에 50일 정도 머무르겠다 했을 때, 꼬장꼬장 질문하던 심사관이 문득 떠올랐다. 그 때 50일이라 대답하면서도 설마 그 날이 올까 싶었는데, 벌써 영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받아놓은 날은 정말 빨리 오는 듯하다. 전역일만 빼고.


숙소에서 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대형 마트가 하나 있었다. 물이 다 떨어져서 쇼핑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맥주와 간단한 간식거리도 함께 구매할 예정이었다. 육류 코너의 스테이크 고기를 보고 조금 고민했다. 저걸 사서 구워먹을까. 숙소에 주방도 있고 가스레인지도 있으니, 요리를 하려면 할 순 있겠는데, 문제는 스테이크는 한 번도 구워본 적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 스테이크는 '굽는' 고기가 아니라 '써는' 고기다. 차라리 삼겹살이 있었다면 그걸 골랐을 텐데, 스테이크는 답이 없었다. 대충 알기로는 아주 뜨겁게 달군 팬에 굽는 것인데, 그 팬을 어떻게 달굴 지부터 나는 잘 모르니 저 고기는 분명 아주 설익거나 어마어마하게 타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게 뻔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런저런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며 쉬운 요리법들 몇 개를 공부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단한 파스타 정도를 만들 줄 안다면 꽤 유용할 듯하다. 요리의 고단함은 잘 모르지만, 설거지의 끔찍함은 국방의 의무 덕에 아주 잘 알고 있다. 훈련소와 경찰 학교 모두에서 어쩌다 보니 설거지를 배정받았는데, 식사 때마다 식판들을 다 집어 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한식은 반찬의 가짓수가 너무 많다. 그건 설거지할 그릇이 늘어난다는 걸 의미한다. 파스타 정도가 딱 적당한 듯하다. 면을 삶고, 사온 통조림 소스를 붓고. 만드는 것도 별로 안 귀찮은 데다가, 설거지도 그리 부담스럽지 않고. 이건 요리가 아니라 조리에 가깝겠지만.


마트에서의 물이 아주 쌌다. 빗물을 채로 받아서 팔지 않는 이상 이렇게 저렴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기쁜 마음에 네 통을 묶음으로 구매했다. 2리터짜리 네 개인데, 숙소로 돌아와 냉장고에 집어 넣고 나서야 저걸 3일 이내에 다 마시지는 못 할 것 같다는 불안한 확신이 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물은 캐리어에 박아놓고 다녀야 하는데, 지금도 뚱뚱한 캐리어에 생수통까지 들어간다니. 하아. 뭐 이건 나중 일이니까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싶었다. 방에 들어오니 어질러진 옷들과 쓰레기가 눈에 띄었다. 이렇게 맘껏 내팽겨치는 것도 당분간은 마지막이다. 침대 2개가 있는 침실을 혼자 쓰면서, 건너편 침대의 상태는 한 마디로 '개판'이다. 그 침대가 라디에이터 근처에 있기 때문에, 모든 젖은 것들을 침대 위에 다 펼쳐놓고, 또 기타 잡동사니들을 다 그 주변에 흐뜨려 놓았다.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건 정말 편리한 일이다. 호스텔이 아닌 에어비앤비 숙소를 쓰며, 리버풀에서는 참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 침대 위에서 술도 마시고. 호스텔과 에어비앤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침대 위에서의 자유로움이다. 방 하나를 통째로 쓰는 에어비앤비의 특성상, 뭘 가져와 먹든 마시든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다. 호스텔에서는 다르다. 조금 엄격한 호스텔에서든 침대 위 음주는 '추방' 사유가 된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호스텔에서, 아마 리버풀의 방을 특히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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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낮잠을 자고, 공연장이 있는 시내로 향했다. 웹사이트에는 입장료와 티켓값을 모두 구매해야 한다고 나와 있어 또 돈을 뜯기겠구나 싶었는데, 입장료도 없었고, 티켓값도 없었다. 올레. 기쁜 마음으로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비틀즈가 연주했다던 'Cavern' 술집에 온 만큼, 맥주도 'Cavern 에일'로 골랐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별로였다. 향도 애매하고, 청량감도 그닥이었다. 조금은 밍밍한 느낌이랄까. 영국에서 40일 넘게 여행하다 보니 맥주를 꽤나 많이 마셨고, 그 미묘한 맛의 차이를 이제 조금 알 것도 같다. 생맥주로만 한정하자면, 최고의 맥주는 '블루문(Blue Moon)'이다. 영국 근교 브라이튼에서 마셨던 필스너도 참 맛있기는 했지만, '블루문'의 향과 풍미는 정말 놀라울 정도였다. 단점은 비싸다는 것이다. 영국이 맥주로 유명하다고 해서 가격까지 싼 건 아니다. 파인트 단위의 생맥주 한 잔은, 최소 2.5 파운드(3,200원)에서 많기는 5파운드(7,500원)까지 호가하기도 한다. 블루문은 비싼 축에 속했다. 마셔 보면 그게 왜 비싼지 이해는 된다. 다만 자주 마실 수는 없는 술이었다. 5파운드면, 파인트 네 캔의 스텔라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돈이다. 오늘 마트에서 맥주 8캔을 샀는데, 그게 도합 6파운드 정도였다. 그래도 영국을 떠나기 전에 한 번은 블루문을 더 마실 생각이다. 50일 가량의 여행을 추억하고 기념하며


오후 7시 45분 즈음에 기존의 공연이 끝나고, 새로운 공연 준비가 시작됐다. 8시 부터는 'Ronny Hughes'라는 뮤지션이 일렉트릭 기타 하나를 들고 공연했다. 라이브 클럽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조금 웅성거리기도 했지만 사람들 대부분이 무대의 음악을 들었고, 그 웅성거림마저 하나의 음악처럼 느껴지는 곳이었다. 얼마 전 뉴캐슬의 댄스 클럽에 갔을 때는 설명 못할 소외감과 뻘줌함만 실컷 느끼다 왔는데, 이 곳의 라이브 클럽은 그러지 않았다. 아마 이건 내가 한국에서도 넬 콘서트를 몇 번 다녀봐서 조금 더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넬의 공연은 내 콘서트 관람 역사에서 분기점이 되었을 정도다. 이 전까지의 공연이라하면,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오프닝 안에서 가수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등장하는 게 내게는 정석이었다. 하지만 넬의 공연은 달랐다. 등장 음악이 나오고 멤버들이 천천히 무대로 손을 흔들며 걸어 나온 뒤, 각자의 악기들을 몇 번 '드르륵' 하며 합을 맞추다가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 모든 게 새로운 광경이었다. 같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느낌도 있었고. 밴드의 매력이 저런 거겠구나 싶었다. 그 전에 나도 1년 간 밴드를 했음에도 그런 매력은 못 느꼈던 게 조금 슬픈 일이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한 번도 이런 라이브 클럽에 가보지 않은 걸 조금 후회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바쁘지도 않았는데 공연장에 자주 가지는 못했다. 홍대 부근의 라이브 클럽들이 비싼 편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한 달에 한 번 쯤은 라이브 클럽들을 방문해야지. 오늘은 유난히 귀국 후의 일정들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공부하거나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은 보일 기미조차 없으니, 괜히 좀 미래가 불안해지는 것고 사실이다.


넬의 공연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지금까지도 가지 못한 게 절절히 한이 맺혀있는 그들의 공연이 하나 있다. 바로 2014년의 시크릿 스테이지였다. 보컬 김종완의 '공연하고 싶구만'이라는 이 짧은 트윗에서 비롯된 사단이었는데, 그러고 일주일도 안 되어 예정에 없던 단독 콘서트가 공지되었다. 금액도 저렴했다. 평소에는 11만원 정도이지만, 급작스러운 공연이었던 만큼 전석이 현장판매로 진행되었고, 따라서 가격은 5만원이었다. 그게 11만원이더라도 없는 돈을 어떻게든 마련해서 가려고 노력했겠지만, 가격까지 저렴하니 이건 무조건 가야 하는 공연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예정되어있던 과외 수업을 해야 했다. 그 수업을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좋은 좌석을 위해서라면 전 날 밤부터 줄을 기다리는 것도 충분히 각오하고 있었는데, 과외 학생과 일정 조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따라서 눈물을 머금고 콘서트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급하게 계획한 콘서트에서 뭐 새로운 게 있겠어,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나를 위로했으나, 평소에는 쳐다도 안 보던 곡들이 셋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걸 보고 집에 돌아와 한참을 멍해있었다. 거기다 앵콜 순서에서는 관객들과 함께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세상에. 이 망할 자본주의. 내 인생을 망쳐버린 나의 스케줄, 나의 과외. 이미 1년 전에 떼어낸 맹장이었지만, 그래도 맹장염에 걸렸다는 거짓말이라도 해서 시간을 바꿨어야 했다고 스스로를 엄청나게 자책했다.


이를 비롯하여, 공연과 관련된 이런저런 개인적인 추억과 기억으로 노래들을 들었다. 세 번 째 노래가 끝났을 즈음, 가수가 멘트를 하고 나는 그걸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을 때, 자신이 이곳과 가장 먼 곳에서 여행왔다고 생각하는 사람 있으면 말해보라고 그가 물어보았다. 다양한 국가들이 나왔다. 호주도 있었고, 아르헨티나도 있었고, 그리고 나, 대한민국이 있었다. 그는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 사이에서 고민하더니, 내게 무대로 올라오라고 이야기 했다. 훗훗. 2010년 월드컵에서는 아르헨티나에 완패했지만, 오늘은 내가 이겼다, 메롱. 비행기로 무려 14시간이 걸린다고. 챔피언스리그에서 리오넬 메시를 상대했던 박지성이 된 듯한 위풍당당한 발걸음으로 무대에 올랐다, 는 사실 거짓말이고, 이 많은 사람들 앞에 선다는 게 그저 아찔했다. 아니 이런 건 줄 알았다면 한국에서 왔다고 얘기 안했지. 오 하느님. 가수는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리고 악보집을 뒤적거리더니 'Imagine' 페이지를 펼쳤다. 내가 며칠 전에 'Imagine'에 참 감동을 받았고 그 노래를 한참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걸 무대에서 부르게 될 줄이야. 노래방도 별로 안 좋아하는 내가 비틀즈가 섰던 무대에서 노래를 하게 되다니. 잠깐, 이거 생각해보니 정말 비틀즈가 공연했던 곳이잖아. 거기서 내가 노래를 부르다니. 이건 우리 가문 최대 사건 아니겠는가. 넬도 여기서 공연해보지는 못했다. 비틀즈, 아델, 그리고 나. 이제부터 나는 음악가다.


그래서 무한한 책임감을 갖고 노래를 불렀다. 무대에 오르기 전 근처의 관객에게 내 핸드폰을 건네며 이걸 좀 담아달라고 굳이 부탁했었다. 이 순간이 모두 저 핸드폰이 담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벅찼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 미래의 아들아, 딸아, 손자야, 손녀야, 니네 아버지, 혹은 할아버지가 이 세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비틀즈가 노래했던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단다. 그것도 비틀즈의 존 레논이 만든 'Imagine'을 말이지. 처음에는 엄청나게 떨렸지만, 어차피 혼자 온 여행이고, 여기서 다시 만날 사람이 누가 또 있겠냐 싶은 마음에 최대한 즐겨보기로 마음 먹었다. 음정을 잡는 게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가수 분이 옆에서 도와주었고, 많이 엇갈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같이 듀엣 형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간주 부분에 이르러서는 조금 여유도 생겼고, 이왕 이렇게 된 거 내가 조금 더 오버한다고 잃을 건 없겠다 싶은 마음에 팔을 흔들며 관객들의 호응도 유도했다. 관객들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도, 그 호응에 응답해주었다. 역시 문화인들. 음악가의 도시인들 답게 음악가를 알아보는구만.


끝 무렵에는 그가 반주를 하고, 내가 솔로로 한 소절을 부르게 되었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노래를 불렀다. 'Maybe you say I a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be as one' 이 부분이었다. 'Imagine'의 가장 감동적인 가사를 내가 무대에서 부르게 되다니. 나중에 내 아이에게 불러줄 최초의 자장가보다 몇 배는 더 성의있고도 감명깊게 부르려고 애썼다. 가사 한 줄이 끝날 때마다 관객들이 환호해주었는데, 조금 감정이 복받쳤다.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꿈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한국에서 이곳 영국까지의 여행을 준비하고, 현지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션이 공연했던 그 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는 그 순간 자체가 말로는 어찌 표혈할 수 없는 먹먹한 감동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가수는 내게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하라고 했다. 조금 거창하게 'Love and Peace', 'The world without nuclear weapons', 혹은 'Hey Trumph, don't do that'이나 'Save the earth' 정도의 범지구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를 말했다면 참 멋있고 좋았을 텐데. 넬의 김종완은 대부분의 멘트를 '땡큐'와 '다음 곡 할게요'로 채우고, 나도 그것만 계속 봐서 그런지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정도로 마무리하고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 후 무대에서 내려갔는데, 아마 이 순간은 내가 치매에 걸리더라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려와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들고 있던 남은 맥주를 마셨다.


'Imagine'의 다음 곡은 퀸의 'Bohemian Rapsodhy'였다. 이 명곡의 첫 시작은 'Is this the real life?'다. 내 마음이 그랬다. 이게 정말 현실인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이거 실화냐?' 싶은 감흥이랄까. 어떻게 보자면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 만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를 기회를 얻었던, 그런 별 거 아닌 일일 수도 있을 테지만, 내게는 참 남달랐던 순간이었다. 남달랐다는 표현도 정말 모자라다. 노래를 별로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비틀즈가 공연했던 무대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이 경험을 어디가서 할 수 있을까. 또 그 감흥을 어디에서 느껴볼 수 있을까. 사실 그가 나를 지목하여 무대에 올라오라고 했을 때,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부끄러웠고, 내 부족한 영어로 거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용기를 냈다기 보다도, 얼떨결에 그냥 올라오라니 올라간 것에 가까웠다. 그러고 나서야 현실 감각을 되찾았는데,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감당이 안 됐다. 하지만 그에 맞춰 천천히 노래를 따라부르고, 또 기어코 내 솔로 파트까지 소화하며, 영국에서의 여행이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이 때에, 'Imagine'은 순간과 우연이 선물한 내 여행의 BGM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거기에 대학 초년생 시절 밴드맨으로서의 자부심을 섞어, 어쨌든 최선을 다 하여 무대를 즐겼다.


여행을 다니면서 뿐만 아니라, 처음 여행을 계획하고 이를 기다릴 때의 감정과 일들도 많이 떠올랐다. 자세히 이야기하기에는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그 시간들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다. 고백하자면, 내 여행은 사실 그런 현실로부터 도피로서의 의미가 컸다. 'Imagine'의 가사는,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정말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가사를 한 이름모를 가수의 반주와 목소리에 맞춰 부르며, 정말 오랜만에 나 스스로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버텨줘서, 또 견뎌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이런 경험과 순간을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고. 참 아무 생각없이, 그러니까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분석할 필요도 없이, 명징히 '행복'한 순간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삶에 교훈을 주는 숱한 격언들과 잠언집, 그리고 문장들과 어록들이 존재하지만, 언어화되지 않은, 그리고 결코 언어화 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감정 만이 선사할 수 있는 삶의 의미들이 있다.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정말 오래도록 기억할 것은 물론, 어떻게든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최선을 다 할 순간이, 이렇게 나를 방문했다.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영화 <본 투비 블루>의 OST였던, 에단 호크의 'My Funny Valentine'이다. 존 레논의 'Imagine'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건 며칠 전의 플레이리스트로 정했기에, 그나마 오늘 많이 와닿았던 이 노래로 골랐다. 오늘은 정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다. 혼자만의 맥주 파티를, 아주 늦게까지 즐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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