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

슈뢰딩거의 고양이 2

고양이의 궁금증... 너는 누구야?

by Anarchist

나는 고양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글을 읽으실 당신들이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을 만한 곳에 어디에나 널려 있는 도시의 어느 고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상상속의 고양이여서 당신들이 고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양이인 것이지

음…. 어쩌면 나는 고양이가 아닐 수도 강아지일 수도 있고 카나리아라던가 개구리 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 자신일 수도 있는 신비한 존재인 것이다.




나는 이렇게 태어났다.

슈뢰딩거... 라는 어떤 학자의 생각속에서 탄생하였다고 한다.

나는 실체가 존재하지는 않는다… (라기 보다.. 실체의 존재를 명확하게 말 할 수가 없다. )

왜냐하면 나는 슈뢰딩거의 사고실험으로 탄생한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나는 드래곤이나 바하무트, 기린(중국신화에 나오는… ), 불사조… 여도 사실 상관이 없다. )

나를 이야기하기위해서는 전자와 양자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가 없다.

빛의 이중 슬릿 실험으로 빛이 파동인지 입자인지에 대한 수많은 논란들이 있어왔다.

양자의 중첩과 회절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의 한 복판에 바로 내가 있었고, 그것에 대한 실험으로 내가 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그 실험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어느 상자에 들어있다. 상자안에 들어있는 나는 실존한다.

실제로 나는 상자안에 갇혀 있는 것이다. (물론 상상이지만…)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이 슈뢰딩거라는 사람은 나를 죽이기 위해 어떤 장치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양자가 하나 통과할 만한 크기의 구멍을 만들어 놓고…

이 양자의 거동에 따라 (양자가 구멍을 통과하느냐 통과하지 못 하느냐 에 따라) 작동하는 청산가리가 담긴 통의 장치가 동작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양자의 움직임은 우리의 관찰을 하기 위한 빛을 맞게 되면 빛의 입자에 의해 간섭을 받는 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 빛에 따라 양자의 거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뚜껑을 열어 봤을 때에만 나의 생사가 확인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 있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고 나 본인만이 스스로의 생사를 알고 있는 것이다.




만약 수많은 내가 존재하여 수많은 실험을 한다고 가정하자.

확률상으로 50%의 확률로 나는 죽거나 살거나 한다.

자 그렇다고 하면 확률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상태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한가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다… 확률은 말.. 그대로 “율”이다. 사건이 일어나는 바로 그 순간이 아니라… 수학적인 계산치라는 거다. 사건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우리의 예측에 의해 경우의 수가 생기는 것일 뿐이지 확률이 결과를 말해주지는 않는다….

마치 일기예보상 내일 비 올 확률이 20%라고 하면 과거의 수십, 수백 년 동안의 동일한 날짜에 비가 내렸던 날과 내리지 않았던 날들을 조사해본 결과 100일중 20일 비가 왔었으니 내일도 비가 올 확률은 20%라는 뜻이다. 정말 내일 비가 올지 안 올지는 내일이 되어봐야 아는 것과 같은 이치로…




나는 상자를 열어 보기 전까지는 살아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상태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살아있는지 죽어 있는지 아는 것은 오직 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생사는 뚜껑을 열어봐야만 확정이 된다는 슬픈 현실이다. 나의 생과 사는 어느 상태도 아닌 “중첩”이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존재방식으로 존재하는 나는 관찰에 의해 생사가 정해지는, 매우 불쌍한 존재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존재를 결정해줄 관찰자가 필요하다. 그 관찰자가 없이는…. 나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고양이라고 말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중첩된 상태로 존재하긴 하지만… ) 나를 관찰해줄 사람이 없다는 점은 참 슬픈 일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나는 50%의 확률로 존재하는 고양이이고 나는 누군가가 확인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면 죽어 있는지 살아있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술한 것처럼 관찰에 의해 특정되는 존재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어쩌면 당신의 몸은 지금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뇌만 어느 포르말린 병에 담기어진채로 뇌의 전극만이 전기신호를 줌으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라고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냐는 말이다.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시뮬레이션으로만 존재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사고실험으로 존재하는 바로 나처럼…아니.. 시뮬레이션이라면 당신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어떤 존재일 수도 있다.


인간의 감각은 뇌의 전기신호일 뿐이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뇌를 스스로 관찰해 본 적이 없다.

당신은 지금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당신은 존재하지 않고 당신의 정보만이 남아있어 당신이 살았던 시간을 끊임없이 재생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 당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당신은 지금 몇%의 확률로 살아있는가???


당신을 관찰해주는 사람은 어디에 존재하며 당신의 존재를 특정해 주는 존재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 나 슈뢰딩거 고양이의 질문이다….


당신은 과연 나에게 대답해 줄 수 있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드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