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초단편

슈뢰딩거의 고양이

우리는 선택함으로 미래를 바꿀 수 있는가

by Anarchist

그는 점심의 메뉴를 고르는 중이다.

‘음… 저것은 어제 먹었던 거고… ‘

‘음.. 저건 안 먹어본 건데… 저걸로 먹어볼까…?’

옆에서 지켜보던 회사 선배인 황 대리가 답답한 듯이 한마디를 던진다.

‘이봐 자네는 점심메뉴 하나 정하는데 무슨 생각을 그리 오래하는 거야?

점심은 매일 먹을 수 있다고… 난 이걸로 결정. 자네는 어떻게 할 거야?’

그리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황 대리님.. 저기.. 그거 아세요? 고양이… 죽어있는지 살아있는지 두 가지가 다 가능한 고양이 말이에요.”

“그런 고양이가 세상에 어디 있어? 가만… 어디서 그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잘 생각이 안 나는데… 뭐였더라…?

“슈뢰딩거. 슈뢰딩거예요. 슈뢰딩거의 고양이예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게….

슈뢰딩거라는 사람이 실제로 실험을 한건 아니고 그 사람도 단지 상상을 한 것뿐이지만 이게 참 재미있어요.

-어떤 고양이가 밀폐된 상자 안에 갇혀 있다. 상자 안에는 1시간에 2분의 1 확률로 1개 분해되는 알파 입자 가속기가 있고 청산가리 통이 들어 있다. 만약 알파 입자가 방출되어 청산가리 통의 센서가 감지하면 청산가리 통은 깨지고 고양이는 죽고 만다. 1시간 후 과연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상자를 여는 순간 세계는 고양이가 죽은 세계와 죽지 않은 세계의 두 갈래로 나뉜다

알파 입자는 미시세계의 것이고 양자역학으로 서술된다. 그것이 거시 세계의 고양이를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이다. -

즉 다시 말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입자 하나로 인해서 고양이 한 마리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중대한 사건이란 말입니다. 물론 고양이 대신 다른 동물을 집어넣어도 상관은 없겠죠. 예를 들면 개라던지.. 소나 말도 괜찮고…. 어쩌면 그 안에 사람을 집어넣을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말이죠… 그 상자 속의 고양이는…

과연 살았을까요? 아님 죽었을까요?

만약 말이죠. 제가 아주 매운 김치찌개를 시켜서 맛있게 먹었다고 해봐요. 그런데 그게 잘못되어서 제가 설사를 한다거나… 해서 오늘 있을 거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아니면 반대로 기분이 좋아서 옆 부서의 미스김에게 데이트 쪽지를 날릴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제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과연 정해져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차피 세계는 딱 두 가지밖에 없지요. 뚜껑을 열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고양이가 죽어 있는 상황과 살아있는 상황. 그 이외의 상황은 존재하지 않겠죠? 아마?

이건 뚜껑을 열고 안열 고의 문제가 아니죠. 뚜껑을 연다고 혹은 열지 않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까? 딱 2가지. 죽어있느냐. 살아있느냐.

그런데 또 이런 경우가 있어요. 이 실험을 아주 여러 번 하는 겁니다. 그럼 수많은 고양이들이 실험을 위해 죽게 되겠지요. 어쩌면 고양이 대신에 실험용 쥐를 사용하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이 실험을 아주 여러 번하면 죽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해요. 그렇다면 상자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죽으러 들어간다는 말과 같다고 볼 수 있죠. 그렇게 치면 이미 들어가기 전에 이 고양이의 운명은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그럼 만약. 고양이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칩시다. 그럼 이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예요. 실험용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살아났다고 해서 기뻐해 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걸요. 다만 이 고양이의 업적이라고 한다면 살아나는 확률 쪽에 한 표를 던져주었다는 의미밖에 없겠죠. 그렇다면 세상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 걸까요?

역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요? 고양이가 살아났다고 해서 변한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선배는… 마치 우리 인생이 슈뢰딩거 상자 안에 고양이 같다는 생각해 보신 적 없으세요?

머 결국엔 뚜껑을 열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


“헛소리 말고 밥이나 먹어. 나는 자네가 떠들어 대고 있을 때 이미 김치찌개 2인분을 시켰고, 이제 자네가 밥을 먹느냐 안 먹느냐는 자네의 선택에 달렸으니까. “


각 물리학적 입장에 따라 고양이가 죽었을까 살았을까에 대한 답변은 다르다. 고전 역학자들은 실재론자들이며 우리가 그것을 확인하든 안 하든 고양이는 죽었거나 안 죽었거나이다.

1시간 후의 일은 어떻게든 결정되어 있으며 그것은 관찰과 무관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양자론자들은 관측에 지배받는다고 이야기한다. 고양이는 죽었거나 살았거나이고 우리가 그것을 열어봤을 때에만 의미를 지닌다. 즉, 그것의 결과는 관측에 의존한다. 하나는 결정론적인 사고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비결정론적인 사고를 취하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관측 행위는 결괏값에 항상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능 세계론은 기본적으로 확률에 의한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그들에 의하면. 통계적 입장 역시 확률론을 받아들인다. 만약 어떤 이가 여러 번 이 실험을 반복한다면 어떤 통계적인 값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고양이가 죽을 확률이라는 것이다.


이 논쟁은 양자역학의 기초를 다져 오늘날 톱쿼크와 같은 물질 기본단위 연구의 길을 트는 동시에 철학사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슈뢰딩거, 막스 보른, 오토 한 등 양자역학을 설명한 독일 괴팅겐대학교 교수들은 통근기차 속 토론에서 이런 복잡하고 심오한 이론체계를 확립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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