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코스트에서 퍼스로
사랑하는 골드코스트의 가족들을 남겨두고 서호주로 날아간다. 소라형과 예솔이 커플이 골드코스트 공항까지 차로 데려다 주었다. 처음 호주에 8만원 들고 와서 정말 어떻게든 잘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렇게 공항까지 와서 내가 가는 걸 아쉬워 해주는 가족까지 생겼다. 빌린 돈을 다 갚고 비행기 값도 벌었고 퍼스로 가서 기선이까지 잠깐은 먹여 살린 돈도 모았으니 나는 생각보다 여기서 잘 살았다. 정말 잘 살아남았다. 호주 가족들과의 영원한 이별은 아니니 그리고 퍼스에서는 새로운 삶이 또 기다리고 있으니 즐겁게 떠나기로 했다.
“오빠, 퍼스 간다고 우리 가족 잊으면 안돼요. 이건 별 거 아닌데 오빠 쓰세요”
예솔이가 웃으며 연두색 노트를 하나 준다. 노트를 열어보니 짧은 편지와 가족 사진, 골드코스트 가족의 비상 연락처 그리고 혼자 살면 잘 안 챙겨먹을 게 걱정이 됐는지 간단히 해먹을 수 있는 요리 레시피 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노트에 다시 골드코스트로 돌아 오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일기로 써서 다음에 만났을 때 보여 달란다.
예솔이랑 소라형은 겉으론 강해 보이지만 정말 내 사람이다 싶은 사람들한테는 다 퍼주는 그런 사람들이다. 다시 재회하기로 기약하고 내가 타던 서핑보드는 골드코스트 집 베란다에 놔두고 왔다.
골드코스트에서 퍼스까지는 비행기로 5시간 반이 걸린다. 한국 인천에서 태국 방콕 가는 거리랑 비슷하다. 심지어 시차는 두 시간이나 난다. 호주에 살면서 잘 못 느끼다가 새삼 이 나라가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느꼈다.
맛있는 기내식을 먹고 한숨 푹 잤더니 비행기 창 밖은 이미 어둡고 슬슬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국내 이동이라 특별한 입국 심사없이 간단하게 부친 짐만 찾아서 밖으로 나왔다. 저녁이라 그런지 퍼스는 골드코스트보다는 좀 쌀쌀한 느낌이다. 기선이도 오늘 아침에 시드니에서 퍼스로 왔다. 시드니에는 기선이 이모님이 사셔서 며칠 있다고 오늘 나와 만나기 위해 여기로 온 것이다.
아침에 기선이에게 연락을 받았다. ‘Coolibah lodge’ 라는 백패커에 체크인을 했단다. 공항에서 나와서 구글맵을 확인해보니 대충 노스브리지 쪽에서 내리면 걸어서 찾아 갈 수 있을 거 같아 아무 버스나 타고 기사님한테 노스브리지로 가는지 확인하고 올라탔다.
한 20분 정도 가서 노스브리지에서 내렸다. 이미 깜깜한 밤이라 어디가 어딘지 잘은 모르겠지만 호주의 삶이 다 들어 있는 무거운 배낭을 매고 땀을 흘리며 열심히 찾아다녔다. 기선이한테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면서 열심히 찾았다. 사실 기선이도 오늘 처음 여기 온 거라 잘은 모른다.
드디어 쿨리바에 도착. 다른 건물들보다 안쪽으로 쑤욱 들어가 있어서 더 찾기 힘들었다. 그리고 기선이가 밝게 웃으며 반겨준다. 카타르에서 헤어지고 반년 넘게 만이다. 극적인 재회의 포옹을 하고 이미 밤 12시가 넘어서 가방은 조용히 내 자리 침대에 사뿐히 올려 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할말이 많다.
사람들이 자고 있으니 숙소 정문 앞에 있는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맥주 몇 병을 사서 담배를 하나씩 물었다. 그리고 기선이는 면세점에서 사온 레종 커피맛 담배를 한보루 꺼내놓는다.
“야 이거 호주에는 없는 거 같던데? 이거 여기 애들 주니까 진짜 좋아하더라”
나도 호주에서 맛 없는 담배만 피우다가 맛있는 한국 담배를 피우니까 기분이 좋아진다.
“호주 담배 얼마나 비싼지 모르지? 이거 아껴야 해. 지금 많다고 여기저기 다 주고 다니다간 나중에 후회한다. 일단 넣어놓고 진짜 필요할 때만 꺼내서 피자. 지금은 이걸 피면 돼”
호주는 담배가 너무 비싸서 담뱃잎과 종이 그리고 필터를 따로 사서 말아서 피는 담배를 펴야 한다. 물론 맛은 없다. 기선이는 아직은 담배를 마는게 익숙하지 않은지 자꾸 종이가 찢어지거나 필터가 빠진다. 언젠가 익숙해 지겠지. 호주에서 살아 남으려면 담배를 끊던가. 아니면 담배를 잘 말아 피던가 둘 중에 하나다. 담배를 끊는 건 내 생각엔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렇게 그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고 새벽 3시쯤에 잔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