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이다. 서호주는 골드코스트보다는 아침 공기가 조금 차갑다. 그래서 습기 하나 없는 시원한 공기가 더 맛있다. 오늘부터 퍼스 구경을 조금씩 시작하면서 외국 생활은 이런 거다 하는 걸 보여주기로 했다. 그리고 둘 다 일은 아직 못 구했지만 느긋하게 생활을 시작하기로 했다.
일단 밥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히 재료도 없고 요리 할 줄도 잘 모르겠고 해서 아침 점심 저녁 거의 서브웨이만 먹은 것 같다. 그때는 몰랐다. 서브웨이도 돈이 있어야 먹는다는 것을. 뭐 해 먹기 귀찮다고 서브웨이만 먹다가 돈이 급격하게 떨어져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기선이가 처음 영어로 서브웨이에서 주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생각보다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일단 메뉴를 고르고 빵을 선택해야 하며 토스트 할지 안 할지도 말해야 하고 어떤 치즈를 넣을건지 야채를 넣고 싶은 것과 빼고 싶은 것과 소스도 뭘 뿌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샌드위치를 반으로 자를지 말지까지 말해야 한다.
나는 항상 서브웨이에 가면 항상 먹는 것이 있다. 햄 샌드위치다. 항상 큰 걸로 주문한다. 빵은 허니 오트에 치즈는 스위스 치즈 물론 토스트도 한다. 빵이 나오면 모든 야채를 넣고 올리브만 빼달라고 한다. 피클을 좀 많이 넣어 달라는 말도 잊지 않는다. 소스는 마요네즈와 바비큐 소스를 둘 다 뿌려달라고 하고 샌드위치가 너무 크니까 반으로 잘라 달라고 한다. 그리고 사이다 하나까지 시키고 계산도 하고 멀찌감치 계산대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영어 선생님이었지만 영어를 떠먹여주듯이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부딪혀 보게 하고 도저히 안될 때 살짝 도와주기만 한다. 영어는 그냥 가르쳐주기만 하면 절대 늘지 않는다. 모든 언어는 실전이다. 이제 기선이 차례다.
“어..어.. 치킨데리야키 주세요”
일단 메뉴 주문은 성공이다. 그리고 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빵 선택도 완료다.
“풋롱 아니면 6인치?”
점원이 묻는다.
기선이는 당황하며
“왓? 익스큐즈미?”
그러자 점원은 두 손으로 손바닥을 마주하고 늘였다 줄였다 하며 샌드위치 사이즈를 보여준다.
“아.. 큰 거요”
“토스티드 (toasted)?”
기선이는 귀가 빨개져서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묻는다
“야 뭐라고 하는거고?”
“토스트 할꺼냐고”
그러자 기선이는 다시 점원을 쳐다보며
“예스!”
이제 점원은 이제 노란치즈와 흰색 치즈를 보여주며 어떤 걸 할꺼냐고 묻는다. 기선이는 노란치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치즈 고르기는 쉽게 끝난다. 아직 한참 남았다. 오븐에서 토스트 된 빵이 나오고 점원의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여기에 안 먹는 거 있어요?”
토스트에 들어갈 야채를 고를 시간이다. 기선이의 단어 실력 점검시간이다.
“음.. 당근하고 양파하고 음.. 이건 뭐지? 올리브하고 토마토 또.. 음..”
귀가 더 빨개지고 식은 땀이 흐르며 가만히 서 있길래 살짝 도와줬다.
“이럴 때는 여기 있는 야채 이름 다 말할 필요없고 안먹는거 있으면 이거 빼고 (Except this) 다 (Everything)! 이런식으로 말하면 돼. 안먹는거 없으면 에브리띵! 이렇게 말하면 돼.”
기선이의 표정이 드디어 밝아진다. 이제 마지막 단계인 소스를 고르고 맛있게 호주에서 같이 먹는 첫 식사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