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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r 10. 2020

서로 신기해 하는 외국인들

퍼스

숙소인 Coolibah Lodge는 차이나타운을 지나 꽤 구석에 있는 곳이었다. 거기 머무는 사람들은 서양인들밖에 없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놀기 좋아하는 이 친구들은 자주 우리에게 술을 권하곤 했다. 전 세계 어딜 여행 가도 아일랜드 사람들처럼 술 좋아하는 민족은 못 봤다. 물론 한국인 빼고다.


숙소 대문을 열고 주욱 들어가면 방이 있는 건물 앞 야외에 테이블과 허름한 당구대가 있어서 백패커들이 어울려서 놀 수 있게 해놨다. 다들 서양인밖에 없는데 우리만 동양인이니 더 신기해 하는 눈치다. 여기 있는 서양인들은 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것 같다. 다들 안전화에 안전모를 가지고 하나 둘씩 퇴근한다. 기선이와 둘이 앉아서 서양인들이 절대 못 알아듣는 언어로 웃고 떠들고 담배 피고 술 마시고 하고 있으니 하나 둘씩 말을 걸어 온다.


"너희들 어디서 왔어?”


“우리 한국에서 왔어”


“북한? 남한?”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딜 가도 똑같은 질문이다. 외국인들은 의외로 남한과 북한에 대해 궁금해하고 관심이 많다. 그리고 나는 이 똑같은 질문에 항상 웃으며 똑같은 답을 한다.


“나는 좋은 사람이야 (I’m the good one)”


그러면 다들 아 하며 웃기 시작하며 화기애애해진다. 그리고 이 친구들이 가지고 있는 넘치는 술을 다같이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한 친구가 묻는다.


“이건 무슨 담배야? 한국 담배야? 냄새가 특이한데?”


기선이가 레종 하나를 꺼내서 건낸다. 이 친구가 한 모금 빨더니


“와 이거 미친 거 아니야? 담배에서 커피 맛이 나는데? 역시 한국 사람들은 똑똑하다니깐. 어떻게 이런걸 만들지? 호주에는 이런거 없어 아일랜드에도 없고”


난리가 났다. 세상에서 가장 감동한 표정이다. 황홀한 표정이다. 저건 진심이다. 이 엄청난 반응에 다른 몇몇 친구들도 몰려와서 몇 개 나눠줬다. 


역시 비슷한 반응이다. 이런걸 펴본적이 없으면 그럴만도 하다. 기선이는 의기양양해 하며 말한다.


“한국에 가면 이거 말고도 다른 맛도 많아. 바닐라 맛도 있고 초콜릿 맛도 있고”


다들 흥분하며 이제 음악을 조금씩 틀고 놀기 시작했다. 나는 강남 스타일이 나오기 전부터 해외에 있어서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잘 몰랐었다. 오늘 확실히 알았다. 강남스타일 한방이면 다 끝이다. 다른 노래는 에피타이저 같은 느낌이다. 다른 노래에도 춤을 추다가도 강남스타일에는 다 같이 단결해서 똑같이 춤을 춘다. 싸이는 위대한 한국인이다.


술을 먹으면 이상해 지는 애들이 꼭 있다. 우리나라도 물론 있지만 아일랜드에도 있는 것 같다. 한 친구가 갑자기 바지를 벗고 고추를 꺼낸다. (다행히 그날은 남자밖에 없었다.) 그리고 크기 자랑을 하더니 그것을 와인잔에 넣는다. 소주잔이 아니다. 와인잔이다. 거기에 꽉 찬다. 그리고 힘을 주더니 잔을 깨드린다. 말도 안되는 걸 봤다. 눈을 의심할 정도의 크기였다. 뭐 딱히 부럽지는 않았다.


특별히 어디 안 갈때는 메인 거리에 있는 Coffee Club에 앉아 있는다. 딱히 뭘 안해도 같이 여기서 지내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것 같다. 커피 한잔 시켜놓고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듣고 지나가는 예쁜 여자들을 구경하다 보면 금세 시간이 간다. 기선이는 서양 여자들이 이렇게 많이 걸어 다니는 걸 처음 본다. 예쁜 여자가 지나가면 나한테 무슨 말을 하다가 하던 말을 멈추고 한참 쳐다보곤 한다. 그래서 우리 둘은 선글라스가 필수다.



막상 여기서 일을 구하려는 것도 아니고 마가렛리버로 가기 전 퍼스 여행을 하기로 한거라 그냥 돌아다녔다. 몇 시간 동안 걸어서 숙소에서 한참 벗어난 곳으로 가보기도 했고 어느 날은 만사가 귀찮아서 숙소에 누워 있다 아일랜드 친구들이랑 얘기하며 보내기도 한다. 


숙소로 가려면 차이나타운을 무조건 지나야 하는데 중국 식당 앞에 항상 점원이 서 있다. 그리고 지나칠 때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기선이한테만 중국어로 말을 걸며 전단지를 건내다. 그래서 신기해서 다음날은 내가 점원쪽으로 걸어도 기선이한테만 말을 건다. 기선이에게서 동족의 스멜이 느껴지나보다. 그래서 받은 전단지를 나중에 유심히 보니 한문으로 적혀 있긴 했는데 복사가 잘 못됐는지 몇 글자가 잘렸다. 전단지마저도 ‘메이드 인 차이나’ 스러움에 한참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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