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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r 11. 2020

스파르타식 영어교육하기

퍼스

프리멘틀 구경을 갔다. 마을 자체가 멋스러운 곳이다. 마을 전체에 여유가 가득하다. 건물 전체가 외국에 온 느낌이다. (물론 여기는 외국이다.) 바다가 너무 평화롭다. 카푸치노 거리에 가서 카푸치노도 마셨다. 기선이는 음미 따윈 하지 않고 그냥 원샷 때린다. 강남 스타일이다.



프리멘틀은 호주에서 여행한 모든 곳 중에 가장 이쁜 곳 중에 하나였다. 같은 호주 하늘인데도 어떻게 그렇게 파아란지. 바다색은 어떻게 그렇게 푸른지. 얼굴을 간질간질 하는 딱 좋은 바람에 따뜻한 햇빛도 있다. 사람들은 웃고 있고 다들 천천히 걷고 있다. 완벽한 곳이다. 



퀸 엘리자베스 공원도 가봤다. 인터넷에 정보를 조금 검색해보니 버스를 타고 가서 걸어 올라갔다 내려온다던데 우리는 시간도 많고 돈은 별로 없고 해서 숙소에서 무작정 걸어서 가보기로 했다. 열심히 걷고 걸어 가는데 계속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공원이라고 해서 그냥 꽃이나 나무들 옆으로 비잉 둘러져 있는 길을 걷는 건 줄 알았는데 거의 등산이다. 기선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지만 나는 조리를 신고 있다. 


그래도 막상 올라가니 퍼스 시내가 다 보인다. 퍼스에 왔으니 여기는 가봐야지 하고 왔다. 여기 오래 살았으면 한번씩 바람 쐬러 오지 않았을까.



기선이 계좌를 만들러 갔다. 


호주에서 일을 하려면 급여통장이 필요하다. 계좌 만들기는 쉽다. 여권과 비자 번호, 전화번호 그리고 카드를 받을 주소만 있으면 된다. 호주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은행이 있지만 그냥 편하게 내가 골드코스트에서 처음 만든 커먼웰스 (common wealth) 은행으로 하기로 했다. 사실 커먼웰스 은행의 로고가 노랑색과 검정색이라서 그냥 한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깔은 노랑색이다.


기선이는 서브웨이 주문 사건 이후로 영어에 조금 자신감이 떨어져 있다. 여기서 영어에 자신감을 붙이고 다시 늘리려면 부딪히는 수밖에 없다. 은행앞에 도착했다. 나는 입구에서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나 여기서 담배 하나 피고 있을 테니까 계좌 만들고 와”


기선이는 사색이 되서


“야 식당 같은거나 뭐 사는거나 하는거는 내가 하겠는데 이건 좀 아이다이가. 도와도. 이건 좀 솔직히 무섭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준비물 다 챙겼지? 여권?”


“어”


“전화번호는 외울꺼고. 주소랑 비자번호는 폰에 적어놨을꺼고”


“어”


“그럼 뭐가 문제야. 얼른 들어 갔다와”


기선이는 아주 난처해 하며


“야 그래도 은행이다이가. 그러면 안 도와줘도 되니까 같이 들어가서 뒤에 서 있기만 해도. 그럼 심리적으로 부담은 덜 할 거 같다”


나는 그래도 단호하다.


“내가 같이 들어가면 어쩔 수 없이 나한테 의지하게 되있어. 이거만 통과하면 영어 자신감 넘칠걸? 갔다와라”

풀이 죽어서 기선이는 은행 안으로 들어 간다.


담배를 한 3개는 폈나. 30분이 지나도 40분이 지나도 안 나온다. 이거 전화를 해봐야 하나 한번 들어가봐야 하나 생각하는데 기선이가 입구에서 걸어나온다. 얼굴에는 미소가 한가득이다.


“야 이거 별 거 아이네. 그냥 뭐 앉아가지고 보여 달라는 거 보여주고 적으라는거 적어주고. 말도 윽수 천천히 해주대”


“잘했다 임마. 거봐 가면 다 된다니깐”


기선이는 기분이 많이 좋아보인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앞으로 뭐 영어로 할 거 있으면 내가 다 할께. 니는 옆에 있다가 정 아니다 싶으면 도와도”


그 이후로 식당 주문도 하고 길 물어보기도 다 기선이가 했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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