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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r 17. 2020

평화로운 일상

마가렛리버

마가렛리버에서 또 다른 만남도 있었다. 같이 방을 쓰게 된 일본인 여자 하나, 이탈리아 남자 미켈 그리고 옆방을 쓰고 있는 일본인 커플 호리와 히카루다. 


처음 기선이와 큰방에서 4인실 방으로 옮겨서 새로운 방으로 들어가니 동양인 여자와 서양인 남자가 영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서양인 남자는 영어를 들어도 정확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동양인 여자의 영어 발음은 누가 들어도 일본 발음이었다. (그래도 하나는 영어를 잘 하는 편이었다.)


기선이와 내가 방에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하이”


미켈은 여기 농장에서 일을 하며 세컨드 비자를 받으려고 왔다가 비자를 받고도 여기가 좋아서 조금 더 있는 중이라고 한다. (호주에서 농장이나 공장, 광산 등 사람들이 잘 안하는 직종에서 3개월 이상 일을 하면 1년 더 체류할 세컨드 비자를 준다.) 그리고 일이 끝난 저녁이나 주말에는 항상 기타 연습을 하며 지낸다. 이렇게 조용하고 순수한 이탈리아 친구는 처음 본다.


하나는 일본의 추운 지방 삿포로 출신이다. 시끄러운 도시가 싫어서 세컨드 비자 때문이 아니라 그냥 마가렛리버에서만 1년 이상 지내고 있다고 한다. 호주에 있을 수 있는 비자가 끝나면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또 하고 세계 일주를 하고 일본으로 돌아갈 거란다. (지금 하나는 캐나다 워킹 홀리데이까지 끝내고 태국에서 일을 하며 살고 있다. 너무 부럽다.)


옆 방 일본인 커플 호리와 히카루. 일본에서 같이 출발해 동남아를 여행하고 세계일주를 하려면 돈이 필요해서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하러 왔단다. 여기서 세컨드 비자를 따고 돈을 조금 더 모으면 다시 세계일주를 하고 일본으로 돌아간단다. (지금은 세계일주를 마치고 둘이 결혼해서 목공소를 차리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기선이는 내가 영어하는 건 매일 들어서 알지만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실제로 하는 건 본적이 없었다. 미켈 빼고 우리 동양인 다섯은 모두 흡연자였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다같이 일본어로 얘기하고 있었다. (기선이에게는 통역을 해줬다) 기선이는 연신 감탄한다.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넬리 쟤 일본어 어때? 잘해?” (영어)


기선이가 하나에게 묻는다. (호리와 히카루는 영어를 거의 못한다.)


“넬리? 일본인 아니야? 한국말 잘하는 거 보니까 재일교포인가?”


기선이는 나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낸다. 그렇게 앞으로 내가 영어와 한국어 그리고 일본어 통역까지 하게 되었다. 


기선이와 호리는 서로 말이 거의 통하지 않는데 둘은 항상 즐겁고 신나있다. 손짓발짓을 하고 폰으로 단어를 찾아서 보여주기도 하고 서로 못 알아들었지만 그것도 즐거운지 서로 못 알아들었다고 손가락질하며 서로 웃는다. 기선이도 일본 친구가 처음이고 호리도 한국인 친구가 처음인 것이다. 그리고 이 둘에게는 특별한 대화 주제가 없다. 그냥 서로 신기한 것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알지? 일본 게임?”


기선이가 먼저 묻는다. 


“스트리트 파이터? 그게 뭐야?”


호리가 눈을 작게 찌푸리며 전혀 모르겠다는 듯 묻는다. 호리에게는 기선이의 한국식 영어발음이. 기선이에게는 호리의 일본식 영어 발음이 낯설어 서로 못알아 듣는다.


“스트리트 파이터 있자나. 류랑 켄. 아도겐! 오류겐! 아따따뚜겐! 이거 몰라?

하며 손바닥을 앞으로 모아 내밀어 장풍을 쓰고 팔을 위로 쭈욱 뻗어 올리고 일어나 한쪽 다리를 들고 뱅글뱅글 돈다. 그러자 호리는 드디어 알겠다는 표정으로 


“아아 알지 하도겐! 쇼류우겐! 타쿠마치셴푸가쿠!”


앞에 두 기술 이름은 일본어랑 비슷한데 마지막 기술 이름이 전혀 다르다. 


“타쿠 뭐라고?”


“타쿠마치셴푸가쿠!”


기선이가 묻는다.


“넬리 니도 이거 알고 있었나?”


당연히 나도 몰랐다. 


기선이는 가만히 있어도 시끄럽다. 항상 무언가 말을 한다. 그리고 크게 웃는다. 잘 때도 조용하지 않다. 코는 골지 않지만 이빨을 갈고 잠꼬대를 자주 한다. 그날 밤도 그랬다.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2시쯤.


“타쿠마치셴푸가쿠!”


한밤중 기선이가 잠꼬대로 크게 소리친다. 너무 놀랜 나와 하나와 미켈이 다 잠에서 깨서 두리번거리다 다시 잠들었다. 


마가렛리버의 평화로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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