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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lly park Mar 18. 2020

마가렛리버를 떠나자

마가렛리버 

포도농장에서 마음에 안 드는 가지를 싹 다 뜯어버리는 쉽고도 스트레스 풀리는 일을 하고 있지만 포도 수확의 끝물이라 점점 일이 줄어 들기 시작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일을 해도 돈이 안 되는데 이제는 주 3일만 오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비싼 방값을 내고 밥 해먹고 하면 전혀 저축이 안 된다. 주 3일만 오다가 나중엔 일 없으니까 이제 안 와도 된다고 하겠지.


마가렛리버에 온지는 일주일이 지나고 2주차가 되고 있다. 이제 결심을 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름 친구도 생기고 조용하고 심플한 농장 생활이 너무 좋지만 돈을 모으기 위해 다른 도시로 떠나기로 했다. 세컨드 비자도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야 다윈이라고 들어봤나? 거기가면 악어 농장 이런 데서 일할 수 있다던데?”


기선이가 말한다. 다윈이라고는 들어본 적도 없다. 그제야 한시간 동안만 와이파이를 사서 노트북으로 이것저것 찾아보기 시작했다. 호주 북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다. 그래도 나름 노던테리토리주(Northern Territory)의 주도다. (호주에는 6개의 주가 있는데 주마다 주도가 있다.)



“내가 호주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이것저것 일을 찾아봤었거든. 보니까 뭐 팽귄 부화하는 거 돕는 일도 있고 악어 농장에서 일하는 거랑 두 개 보고 왔거든. 나는 악어 농장이 제일 땡긴다 우예 생각하노?”

나도 처음 들어 보는 악어 농장이지만 왠지 땡긴다. 호주에 와서 한국에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온 거라서 더 땡긴다. 악어라니. 여기로 가야겠다. 


마지막으로 포도 가지를 뜯으러 갔다. 항상 하던 대로 각자 맡은 라인의 나무 앞에 일자로 주욱 서서 뜯어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기선이 보다 조금 더 손이 빨라 한 라인을 더 했다. 


“오케이 넬리 굿잡! 오늘 라인 세 개 끝냈네요. 계산해서 페이 할께요. 그리고 썬. 오늘 라인 총 두 개 했네요”


기선이는 고개를 갸웃뚱하더니 


“이상하다 오늘 세 개 한 것 같은데”


알고보니 기선이가 끝낸 라인의 기둥에 어떤 사람이 실수인지 고의인지 모르겠지만 한문으로 王자를 크게 매직으로 써놨다. 여기 포도 농장에 중국계 워홀러도 있나보다. 오늘이 마지막 일이라 싸우기도 싫고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다시 카풀한 차를 타고 바인파워 사무실 앞으로 가서 대여한 가위와 가위넣는 가방 그리고 조끼까지 다 반납하고 보증금을 받았다. 기선이는 고무부츠를 반납하지 않고 그냥 다윈까지 가져가기로 하고 보증금을 포기했다. 


‘악어 농장에서 혹시 쓸지도 모르자나’


나중에 다윈에 도착해서 지금까지 일한 돈이 들어왔는데 분명히 내가 라인 한 개를 더 하고 고무부츠도 안 샀는데 기선이에게 나보다 100불 넘게 더 들어왔다. 멍청한 호주놈들이라며 어이가 없어서 기선이랑 한참 웃었다.

마지막으로 잭 커플과 페드로랑 데니얼 그리고 또 다른 몇몇 친구들과 한잔하면서 이것저것 한참을 얘기하고 있었다. 기선이가 샤워를 하고 오더니


“야 샤워장 배수구에 뭐가 막혔는지 물이 아예 안 빠지길래 봤더니 콘돔이 두 개 껴있더라. 아 씨바. 만지기 더러운데 빼서 버렸다. 누고?”


나는 누군지 알 것도 같다. 한참을 얘기하다 잭 커플이 한동안 사라져서 안보였었다. 그리고 내가 알기론 여기 백패커에 커플은 잭 커플밖에 없다. 젊은 남녀가 시골에 있는 도미토리 방 밖에 없는 곳에 있으니 샤워장 밖에 없었나보다. 으이구.


마음을 먹은 김에 바로 방을 빼기로 했다. 일주일치 먼저 돈을 내서 아직 3일치가 남았지만 가자. 여기 3일 동안 일없이 딩굴딩굴 거리는거 보다 3일 먼저 다윈으로 가서 일을 3일동안 더 알아보는 게 낫다.


다음 날 아침 일찍 8시 버스로 다시 퍼스로 가기로 했다. 마가렛리버는 시골이라서 공항이 없다. 비행기표는 퍼스에 도착해서 퍼스 시내에 자주 보이는 여행사에 들어가서 대충 문의해서 사기로 했다. 정들었던 친구들에게 하나하나 인사를 하고 배낭을 매고 밖으로 나와 항상 걷던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바인파워 앞에 가니 항상 우리를 카풀 해주던 한국인 여자둘이 배낭을 맨 우리를 발견하고 인사한다.


“어디로 가세요?”


다윈으로 간다고 그랬더니


“아 저희도 여기 오기 직전에 다윈에 있다가 왔어요. 우기가 온다고 해서 일자리가 없어서 여기 온 거 거든요”


피식 웃으면서 말해줬다.


“괜찮아요”


설마 굶어 죽겠어. 새로운 삶을 찾아 또 떠나보자. 악어야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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