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일단 새로운 도시로 왔으니 길도 익힐 겸 며칠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숙소 앞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주욱 걸어봤다. 걸으면 걸을수록 골드코스트와도 퍼스와도 너무 다른 느낌이다. 일단은 아주 덥다.
마가렛리버에서 일을 하다 돈이 안되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래서 다윈으로 온지 벌써 6일째다. 여기서도 아직은 뚜렷한 일자리는 없다. 여기서 악어 농장을 다시 알아보니 최악이다.
일단 신체조건 키 180이상의 건강한 신체, 1주일 이상 할 수 있는 분. 이라고 적혀있다. 이 말은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거기다 여기에 한인 에이전시가 중간에 수수료를 받아서 시급이 19.85불이다. 나쁜 놈들이다.
악어 농장에는 세 가지 일이 있다. 첫번째, 관리자가 악어들을 마취총으로 재운 사이에 악어 우리 청소하기. 두번째, 재운 악어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악어는 100키로가 넘는 대형 악어가 많다. 두 명이서 머리와 꼬리를 잡고 옮기는데 30분 넘게 악어를 내려 놓을 수 없다. 가죽 상하니까. 세번째, 악어 부화장에서 관찰하고 기록하기. 이건 영어 잘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란다.
모든 것을 종합해본 결과 악어농장은 안들어 가고 다윈에서 일을 구해보기로 했다.
다윈은 덥다. 많이 덥다. 햇빛이 따가울 정도로 덥고 습도도 높다. 지금은 우기로 들어가는 시즌이란다. 그래도
나는 개인적으로 다윈이 마음에 든다.
퍼스보다 조용하지만 나름 타운도 있고 동양인, 서양인, 에보리진 (호주 원주민) 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는 마을이다.
잡 에이전시에 등록하고 이것저것 일을 찾으러 아침부터 타운을 돌아다니는데 같은 숙소에서 몇 번 마주치며 인사했던 일본인 아주머니를 만나서 또 인사를 했다.
“어디 가는 길이에요?
“여기 저기 일 할 거 있나 찾아 다니고 있어요”
그랬더니
“시간당 얼마 정도 받는 일 찾아요?”
“뭐 20불에서 22불 정도 받는 일이겠죠?”
그러자 아주머니는 잠깐 망설이시더니
“혹시 아르바이트 하지 않을래요? 사기를 당해서 경찰서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해서요. 시간당 22불 드릴 테니까 통역 좀 부탁해도 될까요?”
어차피 딱히 할 것도 없는데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1시에 다시 만나서 커피 마시면서 사정을 종합적으로 다시 듣고 경찰서에 가서 통역을 해드리고 어떤 회사에 같이 따라 가달라고 부탁하셔서 갔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덧 3시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돈은 안받을 생각이었는데 한사코 50불이나 주신다. 그래서 이건 너무 많다고 10불은 돌려 드렸다.
그리고 저녁 시간이 되어 밥을 먹고 있는데 라면이랑 빵이랑 맥주를 주신다. 너무 고마웠다. 내가 한 일은 정말 별 거 아닌거 였는데 너무 많이 베풀어 주셔서 감동받았다.
그저께부터 새로운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쉘비라는 오지친구다. 식당 앞에서 혼자 맥주 마시면서 담배피고 앉아 있길래 앞에 앉아서 이야기 했다. 기선이랑 같이 셋이서 살비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덩치 크고 목소리부터 이미 터프한 오지 아저씨까지 조인되어 숙소 뒤에 있는 테이블로 옮겨 다 같이 맥주 한잔 했다.
이 두명의 오지 친구들은 성격이 정반대였다. 쉘비는 굉장히 섬세한 성격에 부드럽고 크리스터라는 이 아저씨는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유머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정반대는 크리스터 아저씨는 여자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반면 쉘비는 게이였다.
나는 처음부터 게이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이제 안 기선이는 기겁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우리 둘다 일을 찾고 있는데 생각처럼 잘 안풀린다고 그러니 쿠누나라쪽 농장에 아는 사람이 있는데 연락해 보겠단다. 아저씨는 앞으로 1,2주면 여기 다윈에 우기가 올거라서 사람들이 다 떠날꺼라 곧 일자리는 많을 거라고 말해줬다.
오랜만에 맥주 많이 마셨다. 기선이는 끝까지 쉘비를 경계한다.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