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
다윈 타운 중심에 위치한 Wisdom Bar에서 일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기도 하고 재밌었다.
처음 면접보러 간 날이다. 이력서를 뽑아서 조금은 긴장을 하면서 가게에 들어갔다. 면접 약속 시간은 아침 10시. 이제 막 가게를 오픈 하려고 하는데 동양인 남자가 가게를 서성거리고 있으니 직원으로 보이는 어떤 서양 여자애가 말을 걸어준다.
“안녕. 뭐 도와줄까?”
“아 여기 Kitchen hand 일 때문에 면접왔는데..”
그러자 여자분이 싱긋 웃으며
“아 이쪽으로 와”
식당 뒤에 있는 곳에 조그만 오피스가 있다. 거기에서 머리를 뾰족뾰족 세우고 안경을 낀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서양 남자가 웃으며 반겨준다.
“아 너구나. 나는 케빈이야. 여기 메니저야. 이름이 뭐야?”
그렇게 몇 마디 주고 받았다. 대화를 조금 하다 영어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니 따라 오란다. 키친으로 들어가 정수리쪽에 원형 탈모가 살짝 온 덩치는 내 1.5배쯤 되는 서양인 남자가 검은 쉐프옷을 입고 나를 반긴다.
“이쪽은 여기 헤드쉐프. 이 친구랑 얘기 좀 나눠봐”
헤드쉐프는 악수를 청하며 인사한다.
“나는 트렌트. 이름이 뭐야?”
“나는 넬리. 반가워”
그리고 식당용 식기세척기를 가리키며
“이거 써본적 있어?”
당연하다. 골드코스트에 Saks에 있었을 때 천 번은 넘게 돌린거 같다. 그리고 옛날에 하던거 대로 능숙하게 싱크대에 있는 접시에 작은 호스로 물을 뿌려서 음식물을 대충 제거하고 차례대로 식기세척기 트레이에 착착착 놓고 레버를 잡아 뚜껑을 내렸다.
“오! 잘하네. 오늘부터 일해”
벌써 합격인가. 오늘은 일 안 할 줄 알았는데. 바로 일을 해서 3시간 정도 대충 어떤식으로 일이 돌아가는지 배웠다.
그리고 계속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은 많이 안준다. 많아봤자 하루에 4시간 정도다. 그만큼 식당이 안 바쁘다는 증거다. 정말 숨쉴 틈이 없던 saks에서 일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나에게는 정말 일이 쉬웠다. 한번씩 지겨울 정도였다.
하루는 4시간 동안 일을 하는데 2시간 만에 다 끝내고 할 게 없어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너 왜 일 안하고 멍하게 서 있어?”
“나 할일 다 했는데?”
여기 저기 보더니 흠 잡을 곳이 없다. 헤드쉐프인 트렌트 말고도 같이 일하는 쉐프 두 명이 더 있었는데 브렌트와 브록이다. 브렌트가 오더니
“넬리. 할 일 없으면 걸레 가지고 와서 문틈도 닦고 뭔가 하는 척이라도 해야해. 아니면 먼저 퇴근 시키는 수 밖에 없어”
한국에서는 일찍 퇴근하면 좋은 거지만 여기는 일하는 시간만큼 돈을 받는 곳이라 뭐라고 하는 척을 해야 돈을 더 받아간다. 그리고
“넬리 너는 손이 너무 빨라. 코리안 닌자야”
그렇게 나는 코리안 닌자로 불리게 되었다. 한번씩 오후 출근해서 접시가 쌓여 있으면
“코리안 닌자 왔어. 금방 끝낼꺼야”
하고 엄지손가락을 다들 펴 보였다. 그래도 나는 4시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을 더 해야 돈을 더 벌 수 있다. 그래서 시간 날 때마다 트렌트에게 얘기했다.
“나 더 일하고 싶어. 더 할 일 없을까?”
그리고 일주일 후 메니져 케빈이 오더니
“넬리. 일 더 구하고 있다며? 저녁에 바에서 바쁜데 금요일 저녁에 3시간만 더 일할래?”
Wisdom bar는 10시부터 6시까지는 식당 손님이 많고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다윈에서 제일 핫한 클럽 중에 하나로 변하는 곳이다.
그렇게 나는 일에 조금씩 재미를 느끼며 인정 받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