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쯤. 간밤에 자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옆옆 침대다. 침대가 삐걱삐걱 하는 소리도 난다. 12명이 함께 쓰는 공간에서 누군가 사랑을 나누고 있다. 심지어 소리가 나는 곳은 기선이 가방에 오줌싼 놈이 있는 곳이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아무리 귀를 막고 다시 잠을 자려고 해도 잠이 안온다. 그 와중에 코 골고 자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일부러 신발을 거칠게 탁하고 신으니 소리가 잦아든다. 안자고 있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겠지. 문을 열고 나가서 담배를 피고 있으니 어떤 여자가 후다닥 나간다. 여기는 남자 도미토리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잠이 들고 아침이 밝았다.
“야 밤에 소리 들었어?”
기선이는 세상 모르게 자느라 못 들었단다.
“너 가방에 오줌 싼 놈 걔가 자기 침대에 커튼 쳐놓고 어제 밤에 어떤 여자 데려와서 섹스했어. 나 시끄러워서 깼자나”
기선이는 기가 막히다는 표정이다.
“와 금마 진짜 가지가지하네. 또라이 아이가?”
그리고 나는 일을 갔다 왔다. 갔다오니 기선이가 말한다.
“야 여기 청소 일하는 대만 여자애 둘 있자나. 오늘 니 일 가고 심심해서 말 걸어서 이것저것 얘기했거든. 얘네들 셰어하우스 산다네? 그래서 혹시 우리 두 명 들어갈 자리도 있는지 한번 주인한테 물어보라 했다.”
도미토리에 사니 비싸기도 하고 별의별 일도 다 일어나서 셰어하우스로 가야하기는 해야 하는데 온지 얼마 안되서 커뮤니티 사이트도 모르고 정보도 없어서 못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기선이는 아직 직업을 못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이 없어도 딱히 필사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지금까지는 내가 벌어 놓은 돈을 빌려줘서 어떻게든 둘이서 아끼면서 생활하고 있는데 조금씩 한계가 보인다. 이제 곧 500불 밖에 안 남는다.
“너 일 안 구할꺼냐? 이제 우리 생활비 거의 안남았어”
“야 일이 있어야 구하지 연락이 안오는데 우짜노? 나도 일하고 싶다”
“잡 에이전시에 등록만 하고 가만 있으면 연락이 오는 게 아니야. 나야 골드코스트에서 일한 경험도 있고 영어도 하니까 운 좋게 일을 빨리 구했는데 좀 더 필사적이어야 해. 이력서 프린트해서 가게마다 돌려도 될까 말까야. 우리 외국인 노동자야 여기서”
너무 천하태평인 기선이한테 사태의 심각성을 얘기해줬다.
“다음주까지 일 못 구하면 여기에는 일이 없는 거니까 전에 말했던 나는 악어농장으로 들어가던가 할게”
그리고 기선이는 필사적으로 변했다. 그리고 내가 일을 간 사이에 이력서를 뽑아서 이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게마다 뿌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도 기선이도 기선이가 악어농장으로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3일 후.
“우리 3일 있다가 셰어하우스 자리 나서 들어와도 된대. 그리고 거기 집주인이 하우스키퍼 일을 하는데 나도 내일부터 거기서 일하기로 했어”
이제 조금씩 뭔가 풀리려나 보다. 집도 찾았고 일도 찾았다. 이제 같은 방에서 가방에 오줌 싸는 사람도 없고 사랑을 나누는 사람도 없겠지.
다시 3일이 지나고 짐을 싸서 셰어하우스로 들어가게 됐다. 짐이라고 해봤자 둘 다 배낭 하나씩이다. 그동안 정들었던 친구들한테 인사를 하고 대만인 여자들 레이첼과 제이미를 따라 갔다. 셰어하우스는 백패커스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워낙 작은 도시라 걸어서 어디든 다 갈 수 있긴 하다.
도착한 셰어하우스는 외관부터 깔끔한 8층짜리 건물이었다. 건물 이름은 시티하이트. 높은 건물이 많이 없는 다윈에서는 꽤 높은 건물이었다. 6층 방에 들어가니 중국계 주인 아주머니 수잔이 우리를 맞아준다. 방은 총 세 개에 꽤 넓은 거실과 다윈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베란다도 있다. 방 하나에 2층 침대 2개해서 총 12명이 사는 집이다.
한국인 딱 우리 둘. 그리고 대부분이 대만인이고 홍콩인 두 명. 일본인 한 명이 있다. 그래서 여기 주 언어는 중국어인듯 하다. 그리고 다들 우리를 반갑게 환영해준다. 이제 직장도 있고 보금자리도 있다. 다윈 라이프 제 2막의 시작이다.